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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배달부

'재밌었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내가 쓴 것도 아니면서 흐뭇했다.

by 오공부

나의 독서습관은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 30년도 더 된 기억 속 할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 동네에 '이동문고'라는 이름을 단 작은 트럭이 오면 잊지 않고 책을 빌렸다. 할머니의 방이자 서재는 부엌이었는데, 싱크대 앞에 서서 작업할 수 있는 길고 좁은 공간에 앉아 빌려온 책을 읽었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책 읽는 모습을 자주 바라보았다. 맛난 음식을 맛보듯이 책 읽는 모습을 보며 나도 침을 꼴깍 삼켰다. 할머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성실히 읽는 사람이었다.

그런 할머니를 위해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법정스님의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라는 책을 샀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에게 그 책을 건네지 못했다. 할머니가 이 책을 마음에 들어 할지 몰라서였다. 할머니가 혹시라도 안 좋아하면 너무 민망하고 부끄러울 것 같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할머니는 나에게 엄하고 무서운 존재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을 위해 책을 선물하는 손녀에게 화를 내지 않았을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혼 날일과 안 혼날 일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릴 적 일이었다. 나는 며칠을 망설이다가 슬그머니 집안 책장에 원래 있던 책인양 꽂아두었다. 그러고는 나도 잊어버려 할머니가 그 책을 꺼내 읽었는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지금 그 책은 내가 가지고 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학교 도서관에서 할머니에게 책을 빌려다 주었다. 할머니는 여행기나 에세이를 좋아했다. 나는 도서 검색용 pc에 김영희나 한비야를 검색하거나 불교 관련 에세이를 모아놓은 곳을 자주 서성였다. 그렇게 골라온 책에 대해 할머니로부터 '이 책은 정말 재밌었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내가 쓴 것도 아니면서 뿌듯했다. 할머니 책을 빌리며 내가 읽을 책도 한 두 권씩 골랐다. 왕복 세 시간 거리의 학교에 다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학시절이 가장 한가한 때이기도 했다. 그렇게 독서에 맛을 들였다.

​할머니는 독서 말고도 매일 명상하는 일상을 나에게 심어 주었다. 바쁜 아침시간을 보내고 화장실에 들어가 청소 겸 목욕을 공들여하고 난 뒤 고요한 시간이 되면 할머니는 깨끗해진 몸으로 예불을 드렸다. 염주를 손에 들고 닳고 닳아 반질반질해진 경전을 넘기며 집중해서 경을 외웠다. 손주들이 아무리 기웃거리고 귀찮게 해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저리 가라고 나무라지도 않았다. 그럴 때 할머니는 정말 보살 같았다. 그 모습을 일상처럼 보아온 나는 이제 아침에 요가매트를 깔고 매일 짧은 명상을 한다.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다. 눈은 어둡고 귀도 먹었기 때문이다. 예불도 드리지 못한다.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할머니 몫까지 내가 더 읽고 명상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새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아이들도 책을 좋아한다. 특히 만화책을 좋아하는데, '책은 재미로 읽어야 한다'고 믿는 나는 만화책 읽는 걸 굳이 막지 않는다. 할머니를 위해 책을 빌리던 나는 이제 아이들을 위해 책을 빌린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귀신 이야기도 빌리고 축구 이야기도 빌린다. 그리고 아이들이 순서를 다퉈가며 책을 읽으면 내가 쓴 것도 아니면서 흐뭇해한다.

나에게 주어진 책 배달부, 특히 가족을 위한 책 배달부라는 역할이 나는 마음에 든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들이 나를 위해 책을 빌려다 주거나 내 모습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심심한데 명상이나 해 볼까?'라고 생각해 준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할머니의 무언가가 나를 통해 아이들에게 이어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책 읽는 딸들과 나. 할머니가 책 읽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한 장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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