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모른다.

효과가 시원찮은 동아줄이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되뇌었다.

by 오공부

어제 했던 바보짓과 바보짓이 알려준 깨달음을 기록해 본다.



막내가 자기 전까지는 멀쩡하다가 새벽에 갑자기 열이 오르고 컹컹대는 기침을 했다. 중이염이 나은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다시 열이 오르니 겁이 났다. 결국 오전에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 진료를 본 후 출근하기로 했다.



병원 문이 열리자마자 진료를 보고 약을 지어서 아이를 집에 데려다준 뒤 회사로 출발했다. 필요할 듯해서 장우산을 하나 챙겼는데, 조수석에 던져 넣다가 창문에 부딪혀 선팅을 살짝 벗겨지게 만들었다. (바보짓 1)

쓰라린 가슴을 안고 (남편한테는 일단 비밀로 하고) 황급히 출발했다. 본격적인 장마 첫날답게 비가 시원하게 쏟아졌다. 운전만 아니었다면 이 날씨를 기꺼이 즐겼을 테지만, 운전 미숙자의 신경은 곤두섰다. 와이퍼를 빠르게 움직이도록 설정하고 평소보다 천천히 차를 몰았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도착시각은 10시 21분. 그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10시 35분으로 늘어났을 때까지만 해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이 정도야 뭐 괜찮아, 비도 많이 오니까 안전이 최고지. 천천히 가자.'



회사 근처 익숙한 거리가 나타나자 방심을 했는지, 나는 이상한 방향으로 차를 몰았고(바보짓 2) 도착시간이 10시 45분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살짝 짜증이 밀려왔다.

'아니, 가라는 대로 갔는데 왜 이래? 다 와서 이게 무슨 일이야! 아오 짜증 나...'

나는 부글거리는 속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며 다시 집중해서 차를 몰았다. 그런데 나는 또 한 번 방향을 잘못 틀었고, 회사 코앞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하고 말았다. (바보짓 3) 도착시간은 11시 15분으로 바뀌었고,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바보 같은 나 자신에게 화가 났고, 왜 하필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냐며 피해자 마인드가 작동했다.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지도 못하고, 퍼붓는 비 때문에 속도를 내지도 못한 채 입을 꾹 다물고 운전을 했다. 드디어 고속도로 출구가 나왔고, 나는 당당히 통행료를 직접 지불하는 곳으로 갔다.(바보짓 4)



줄을 서고, 내 차례가 되어 삼성페이는 통행료지불이 안된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하고, 룸미러의 하이패스 카드를 빼서 결제하느라 또 시간을 잡아먹었다. 울고 싶었다. 차라리 아픈 아이를 한 번 더 안아주고, 약이라도 내 손으로 먹여주고 나오느라 늦은 거면 덜 억울할 텐데. 어이없는 바보짓 릴레이로 시간을 잡아먹었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어쩌지? 어떻게 하지? 이미 바보짓은 일어났고, 되돌릴 수 없는데... 일어난 일에 분노해 봤자 나만 손해인데. 바보짓만 추가될 뿐인데..!!

그렇지만 나에 대한 비난과 후회, 자책이 뭉쳐서 탄생한 분노를 없앨 재간이 없었다. 분명히 아이의 병원진료를 잘 마쳤고, 출근길에 길을 잘못 들긴 했지만 부산까지 온 것도 아닌데, 교통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에고는 자꾸 내가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때 에고 사이를 비집고 어떤 문장 하나가 가만히 떠올랐다. 나를 구해줄 동아줄이었다.



'나는 나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모른다.'



그치. 나는 모르지. 최선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결국은 더 안 좋게 흘러간 적도 있었잖아. 그마저도 더 길게 보면 별 일 아니었지만. 내가 일희일비했던 많은 일들이 지금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내 인생에 영향력이 없었잖아.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었잖아?

그래도 에고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효과가 시원찮은 동아줄이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되뇌었다.



깜빡이 켜면서 '나는 나에게'
핸들을 돌리면서 '무엇이 최선인지'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모른다'



내비게이션을 확인하면서 '나는 나에게'
주행신호를 기다리면서 '무엇이 최선인지'
엑셀을 슬며시 밟으며 '모른다'



아주 느렸지만 마음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로서 아픈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고, 회사원으로서 출근하기 위해 착실히 운전하고 있는 내가 나름대로 괜찮은 인간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에고는 사무실에 늦게 도착할수록 동료들이 나를 안 좋게 생각할 거라고 지레짐작하여 두려움 때문에 목소리가 커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깨달음 자체도 소중했지만, 놀라운 것은 다음에 이어진 생각이었다.



'나의 바보짓으로 출근이 한 시간 정도 늦어졌다. 그 정도의 차이로 나에 대한 동료들의 평가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만에 하나 달라졌대도, 또는 아이 때문에 늦게 출근하는 것 자체로 안 좋게 본대도 상관없다. 동료들에게 잘 보이자고 아픈 아이를 모른 척했다면 나 자신을 더 미워했을지도 모른다. 몇 가지 실수가 있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앞으로 주의하면 될 일이다. 나를 '절대 실수해서는 안 되는 완벽한 인간'으로 볼 필요는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그제야 에고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회사 주차장에서 내 자리까지 가는 길에 작은 바보짓이 몇 가지 있었으나, 더 이상 에고가 지피는 분노의 불꽃에 땔감으로 쓰이지 않았다. 불꽃 자체가 전날 밤에 피워놓은 모닥불처럼 사그라져 흰 연기만 나고 있었다.


나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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