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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왕국의 아이들

빨리빨리 살다가 빨리 죽어!

by 오공부

아침에 빨리 일어나서, 빨리 씻고 옷 입고, 빨리 아침 먹고, 빨리 학교에 가고, 빨리 집에 와서 씻고 저녁 먹고, 빨리 잠옷 입고 양치하고 빨리 잠들기를 강요하는 여기는 빨리빨리 왕국이다. 너희들의 집이다.



너희와 함께 사는 어른들 역시 빨리빨리 소리를 자라는 내내 들었다. 지금은 너희들이 왜 옷을 입는데 십 분 이상 걸리는지, 밥을 먹는데 삼십 분 이상 걸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들이지만 그들도 어릴 때는 너희들 못지않게 천천히 했다.



천천히 했을 때 무슨 재앙이 닥치길래 다들 이렇게 서두르나, 빨리 살아봤자 결국 빨리 죽는 거 아닌가. 너희들은 묻고 싶겠지만 그냥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한다. 빨리 하라고 재촉하는 어른들에게 설명을 요구하면 보통은 초조함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빨리빨리 한다. 그러다 어떤 날은 힘들어서 울기도 한다.



너희들을 빨리빨리 왕국으로 데려 온 장본인으로서 정말 미안하다. 대한민국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빨리빨리' 문화는 오랜 세월 대를 이어온 슬픈 유산 같다. 분명 그 시작은 생존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빨리 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빨리빨리에 집중한 나머지 천천히를 견디지 못한다. 모든 일을 천천히 해서도 안 되겠지만 반드시 천천히 해야 하는 일들도 빨리 해치워버린다.



빨리 해야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빨리빨리로 인해 놓치는 것들이 더 많다. 매일 너희들의 발견을 함께 놀라워하고 기뻐해야 마땅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는 핑계로 무미건조하게 반응하고 다른 일을 하러 가버리기 일쑤다. 잘못된 행동이란 걸 알고 있지만 그런 불편한 마음을 들여다보기보단 빨리 잊기를 선택한다.



이렇게 구구절절 떠드는 이유는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려는 게 아니다. 아마 지키지 못할 약속일 것이다. 대신 그런 일이 일어났고 내가 그걸 깨달았다면, 즉시 사과할 것이다. '또 빨리빨리를 부르짖어서 미안해. 빨리빨리보다 중요한 것들이 너희에게 많다는 걸 또 잊어서 미안해.'



만약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빨리빨리 타령을 하고 있다면 너희들도 따끔히 지적해 주길 바란다. '빨리빨리 살다가 빨리 죽어!'라고.


멋진 작품을 만드는 중인데 그만하고 빨리 가자고 했던 지난 주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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