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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는 맹독(《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사람은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나를 죽일 수 있는 맹독처럼 느껴진다

by 오공부

지난주에 한 친구가 나에게 '사람이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나 역시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나에게 사람은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나를 죽일 수도 있는 맹독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잘 쓰는 방법은 너무나 어려워서 가능한 쓰지 않거나 쓰더라도 최소량으로, 너무 의존하지 않을 만큼만 쓰는 방식으로 그동안 살아왔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받고 치유되는 인간들이다. 너무나 두려워서 자신의 고장 난 마음을 바라볼 엄두를 내지 못한 사람은 타인을 도우면서 자신의 마음도 수리할 용기를 얻는다. 곤줄박이에겐 영두가, 박새에겐 산아가 있어서 더욱 용감해진다. 영두가 상처를 들여다보고 보듬고 봉합하기까지 섬도 온실도 한몫을 했지만, 역시 사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래서 나도 언제나 약간의 맹독을 필요로 한다. 혼자 있는 게 분명히 더 좋지만 가끔은 사람들과 어울린다. 사회성이 부족한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금방 지치곤 하지만 또 혼자서 천천히 기력을 채우고 사람을 만난다. 나를 위해 그리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창비, 2024

P. 156

나는 좋은 부분을 오려내 남기지 못하고 어떤 시절을 통째로 버리고 싶어 하는 마음들을 이해한다. 소중한 시절을 불행에게 다 내주고 그 시절을 연상시키는 그리움과 죽도록 싸워야 하는 사람들을.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 무거운 무력감과 섀도복싱해야 하는 이들을. 마치 생명이 있는 어떤 것의 목을 조르듯 내 마음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을 천천히 죽이며 진행되는 상실을, 걔를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이 가르쳐주었다.



P. 278

그 겨울 교실 창밖으로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할머니를 발견했을 때 나는 조용히 다가오는 빛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머니가 다가오는 이유를 나는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나를 구해주고 싶어 한다는 걸. 텅 빈 내 눈 안으로 들어와 정신을 차갑게 깨우는 사랑이라는 걸. 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 사람을 믿을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P. 335

속이 울렁댔다. 슬픔은 차고 분노는 뜨거워서 언제나 나를 몽롱한 상태로 몰아넣고는 했다. 그런 극단의 마음과 싸우다보면 아주 간단한 일상의 일도 할 수 없었다. 길을 못 찾거나 버스 번호를 잊어버리거나, 걸어다니거나 물건을 사는 평범한 동작에도 서툴러졌다. 그게 상처로 부스러진 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일상이었다. 트라우마는 그렇게 기본적인 행위부터 부수며 사람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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