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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금요일엔 돌아오렴》)

,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창비

by 오공부

고통은 훌륭한 스승이라는 말에 동의하지만 안 겪을 수 있다면 그러는 편이 무조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살다 보면 속수무책으로 고통을 만나게 된다. 고통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이다.


예를 들면, 어린 자식이 어이없이 죽어서 따라 죽고 싶은데 남은 가족도 챙겨야 하고 사건의 진실도 밝혀야 하는 처지이다.

실종자 가족을 보면 시신이라도 찾아 장례 치를 수 있음에 감사하다가, 순간 정신이 들면서 '살릴 수 있었던 생때같은 아이가 죽어 돌아왔는데 감사는 무슨 얼어 죽을 감사'라는 분노에 휩싸이는 순간이다.

'이제 그만하라', '죽은 자식으로 장사한다'는 말에 사람이 싫어지다가도 직접 만든 식혜를 가져와 자식 찾으려면 먹어야 한다고 울며 권하는 진도 할머니들과 유가족의 속옷 빨래까지 해주는 자원봉사자들을 보며 살아갈 용기를 내보는 마음이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창비, 2015

P. 19

우리 식구가 다 그래. '나한테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 건우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요. 교통사고라거나 병이라면 운명이라고 하겠는데, 이건 사고라지만 국가가 죽인 거죠. 그리고 어떻게 한 학교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한날한시에 죽는 운명이 있을 수 있겠어요. 말이 안 되죠. 이번 사고에 김건우만도 세명이에요. 세명의 김건우가 같은 운명이라고요? 그걸 받아들이라고요? 말도 안 되지요.



P. 29

"하느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돌아와줘서, 아들, 고마워." 옆에서 다들 부러워하더라구요. 이게 부러워할 일인지. 그런데 그게 부러워요, 거기에선. 그리고 서로 축하를 해요. 이게 말이 돼요? 그런데 그래요. 그러니 내가 미치겠는 거예요. 내가 이게 왜 감사해요? 도대체 왜? 그런데 감사하다고 하고, 아, 미쳤구나. 뭐가 감사해. 애가 죽어서 나오는데 뭐가 감사할 일이야. 이게 미친 세상이지.



P. 84

내가 승희 찾으려고 거기 있을 때 자원봉사자들이 먹을 걸 챙겨줬는데 아무것도 못 먹었죠. 새끼가 물속에 있는데 그걸 먹으면 네가 엄마냐 그런 자책도 들고, 물도 잘 못 삼키겠고, 근데 오일 짼가 육일 짼가. 진도 할머니들이 집에서 만든 식혜를 가져와 돌아다니면서 주는데, 처음에는 안 먹는다고 했어요. 그런데 할머니들이 막 우시는 거예요. 애 찾아가려면 먹으라고, 그래야 산다고. 잘못되면 안 되니 한 모금이라도 먹으라고. 할머니들이 이제 우리 걱정하면서 막 우시니까 한 모금 넘겼는데 그게 사고 나고 처음 먹은 음식이에요. 한 모금 넘기면서 나도 울고, 할머니들도 울고.



P. 129

그래도 여기가 우리 애들 시험 끝나면 조잘대면서 걸어 다니고, PC방 가고, 노래방 가고, 떡볶이 사 먹던 동네잖아요. 그럼 하다못해 단골집도 많았을 텐데, 우리가 이렇게 소리를 쳐도 그분들은 안 나오시더라고요. 그분들 나오면 손 잡고 '우리 애들 어땠어요?'라고 물어보고 싶은데. 그분들도 다른 지역 사람들처럼 이 일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걸까요? 지금도 그 아이들이 혼이 되어 바글바글 돌아다닐 것 같은데, 여기는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빠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안산이 너무 아파요. 안쓰러워요.



P. 184

어떻게 보면 일반 시민들이 이런 데서 서명작업을 하고 저희 유가족들에게 서명해 달라고, 함께해 달라고 요청하는 게 맞는 겁니다. 저희는 이미 죽은 자식들 돌아오지 못합니다. 산 자식들이 있는 일반 시민들이 '이런 사고 다시는 안 나게 해 달라'라고 서명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P. 213

제일 힘든 게 주말이에요. 식구들이 다 함께 있으면 사람이 하나 빠진 상황을 어쩌질 못하겠는 거예요. 어디다 화를 내야 하는지 모르겠고, 이번 추석 때도 죽는 줄 알았어요. 식구들 셋이 아무 데도 못 가고 우리끼리 있는데 정말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거예요. 그때 폭발할 것 같더라고요. 아직도 실감 안 나요. 우리 애가 어떻게 됐다는 게. 채원이랑 많이 다니던 동네를 다시 가게 되거나 예전엔 넷이 타던 차를 걔 없이 탔을 때나 뭐든지 그 생경한 첫 느낌. 그 아이랑 함께했던 공간과 시간을, 아이 없이 모두 다 새로 시작해야 하는 거더라고요.



P. 221

아이들 시신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할 때는 우리 애가 나오면 어떡하나, 나오면 어떡하나.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안 나오면 어떡하나, 안 나오면 어떡하나. 마지막 남은 사람이 내가 되면 어떡하나. 그런 불안감이 점점 더 커졌어요. 보름 지나고부터는 애들 시신이 부패된다는데 그렇게 나오면 어떡하나. 찾아봐야 시신인데, 시신조차 못 찾을까 봐 겁을 먹는 거죠. 얼마 전 실종자 가족분이 유가족 되는 게 소원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어찌나 슬프던지...



P. 335

아이가 죽어 돌아왔는데, 주검을 찾은 것만으로도 축하를 받아야 하는 시간을 어찌해야 하는가.



P. 342

피할 수 있고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인데 미안해하는 책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허락도 구하지 않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언론과,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가족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정보경찰은 있었으나, 아무도 상황에 대한 신중하고 신속한 정보를 가족들에게 전하지 않았다. 침몰의 원인을 되짚기 위한 항적도도 완성되지 않았고, 교묘하게도 침몰 시점에 즈음해 멎은 각종 기록장치들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이제 밝혀야 할 진실도 물어야 할 책임도 더는 없는 듯 세상이 굴러간다. 그러나 4월 16일은 떠나온 과거가 아니다. 시간은 흘러가다가도 다시 그날로 붙들려간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창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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