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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적응 중

by 김편지


"사랑합니다."

전에 일하던 곳은 인사말이 "사랑합니다."였다.

무조건 '사랑합니다.' 인사를 하고 마주하는 것이었다.

손님이 오거나 갈 때, 전화를 받거나, 직원들에게도 무조건 "사랑합니다." 하고 인사하고 본론을 시작했다.

처음에 적응이 안 돼서 난감하고, 민망함에 소리가 작게 나오던 게 1년, 2년 적응되면서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직원 중에는 버스를 올라타고 기사님한테 "사랑합니다." 인사하고 타자 승객들이 다 쳐다봤다며 민망했었다고 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나도 두 번째 요양원에서 그 버릇이 나와서 마치 구호 같은 "안녕하세요."가 나온달까.

"사랑합니다." 억양에 "안녕하세요."로 얼른 바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직원과는 톤이 조금 달라서 직원들은

생경한 표정을 짓긴 하지만 어르신들은 아침인사를 씩씩하게 하고 들어오니 오히려 좋아해 주시는 것 같기도 하다.



식사를 잘 못하시고 아프시던 분이 병원으로 가셨다가 소천하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다.

매번 막걸리 한 잔 하고 싶다고도 하시고, 어떻게든 바깥 구경을 나가고 싶어 하시던 분이었다.

시간이 나는 대로 데리고 나가드리려고 마음먹지만 이분의 경우에는 내가 직접 나들이해 준 것은 한 번뿐이었다.

", 택시만 잡아주면 안 돼?"

"택시요? 어디가 시려 고요. 할머니도 지금 편찮으시다고 하던데요. "

"송도에 있는 아들네로 가지."

"지금 낮인데 며느리도 직장 가고 문도 닫히고 아무도 없을 텐데 무작정가시면 안되죠."

속으로는 큰일 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다시는 모시고 나오지 말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며느리도 찾고 할머니도 찾고 막걸리도 찾고 이것저것 찾으셨었는데 원하는 건 해드릴 수가 없으니 거절하는 답만 드리기가 죄송해서 은근히 피하게 되던 어르신이었다.



반면에 자기 자리를 제대로 잡으시는 분들도 계신다.

원하는 때 병원에도 가족들 불편하게 하지 않고 다니시고 원할 때 물리치료받으시고, 눈이 오면 눈꽃 보고 감격하시고 꽃필 때면 초록 잎에도 감격하며, 매일 있는 프로그램시간도 즐겁게, 그야말로 슬기롭게 노년의 하루하루를 보내는 어르신도 계신다. 이성과 꽁냥 거리시기도 하고, TV리모컨도 차지하시고 말이다. 핸드폰 유튜브로 이미자. 심수봉 듣고 싶은 노래 듣는 낙으로, 장기 두는 낙으로, 나름의 낙을 찾아서 정말이지 야무지게 요양원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천국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천국을 그리워하는 이도 있다.



노인들에게는 '죽어야 나오는 곳'이라는 요양원의 악명을 조금이나마 지워드리는 것이 그곳의 문지기로서 내가 할 일 같아 이렇게 몇 자 적음으로 나름의 악명을 덜어내보고자 한다.



아침 출근 할 때 크고 밝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인사를 드리고, 저녁에는 "어르신, 저 이제 밥 하러 가요. 관모산에 얼른 올라가서 나무해다가 집에 가서 아궁이에 불 떼서, 가마솥에 쌀 씻어서 안치고... 부지런히 가서 애 밥해 먹이고, 내일 아침에 또 만나요."

너스레를 떨며 인사드리면 어르신들이 눈이 똥그래지다가 껄껄 웃으신다.


뭔가 모르게 소리가 쭈그러들어지는 날들도 많지만,

그래도 이제 나에게 먼저 양손을 들어주며 반갑게 양손을 맞잡아 인사해주는 할머니들을 보면

얄팍한 생각들은 사라진다. 이것으로도 충분한 위로와 응원이 된다.



과거의 영광이 클수록 적응은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왕관의 무게 지려고 너무 애들 쓰지 마시라.

그저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생의 마지막 적응력은 남겨두기를 추천드린다. 그것이 사교성이든, 인성이 됐든, 영성이든, 마지막 한 번의 적응력은 사는 동안 악착같이 만들어 내겠다는 각오를 하며 살아야겠다.




요즘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바로 나의 "숙제장" 같다.

감사하게 나에게 잠들기 전까지의 하루. 연습장

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직은 답을 못하겠다. 다시 내일 아침의 해가 떠 또 하나의 숙제가 다가온다는 크나큰 감사를 결론으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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