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이전의 것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by 김편지

애초에 나는 개그맨을 살짝 못 미칠 만큼의 개그감각을 갖춘 자를 좋아했다.

지금도 내 옆에 있는 사람의 별명을 밝히자면. '용각산'

'이 소리도 아닙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이 카피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소리 안나는 대표 주자가 내 옆에 있다.

신혼시절을 떠올리면 15평도 안 되는 작은집에서 건넌방에 있거나 화장실에 있는 남편에게 줄곧 그의 생사를 확인하려고 했었다.

'어디야?'

"뭐 해?"

소리 나지 않는 용각산이라는 별명은 그때 생겨났다.

무슨 의견을 말하라고 하면 내 생각이나 말속에 정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집중해서 들어주는 점이 그의 큰 장점이다. '정답을 맞추려고 하지 말고, 그냥 생각나는 걸 말해.'라고 하지만 힘들어하는 남편이다.




이 같은 자가 있지만, 어쨌든 사람은 '말'하는 존재다.

생각을 표현하고, 마음을 전하며, 사회를 이루어가는 데 있어 말은 그야말로 필수적인 도구인 것은 틀림이 없다.

아이가 태어나고 옹알이를 하기도 전부터 끊임없이 말하는 법을 배우고, 말을 잘하는 사람을 똑똑하다고 여긴다. 말로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이기기도 한다.

그래서 말 잘하는 사람을 동경하기도 한다.




자신이 없으니 나는 말보다는 글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렇게 커서를 움직여 지울 보너스 기회가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하기는 분명 능력이지만, 때로는 말이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감정을 왜곡하며, 오히려 상처를 남긴다. 말은 정확한 것 같지만, 그 속에는 늘 오해와 해석의 여지가 존재한다. 표현된 말과 받아들여진 말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이 때로는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은 이성적인 존재이기 이전에 감정의 동물이다. 그래서 말보다 더 먼저 작용하는 것은 눈빛, 표정, 몸짓, 그때의 기류, 분위기 같은 것들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는 순간도, 왠지 불편함을 감지하는 순간도 대부분 말 이전의 것이다.

상대방의 말이 채 도착도 하기 전에, 우리의 감정은 이미 판단을 끝내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점점 말 이전의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예를 들어, 섣불리 사랑한다는 말보다 누군가의 손을 조용히 잡아주는 행동이 더 깊게 와닿는 것이다.

"괜찮아?"라는 말보다, 묵묵히 곁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등을 토닥여주는 사람이 더 크게 다가오는 때도 있다. 말은 순간의 위로일 수 있지만, 그 사람의 태도와 존재는 오래 남는다.

특히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것’은 말보다 훨씬 더 어렵고 더 강한 의지와 감정이 필요하다. 그것은 어떤 의무감이나 상황 때문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선택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무너지고 있을 때,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 그건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말은 상황을 바꿀 수 없지만, 존재는 마음을 붙잡을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말실수를 두려워하고, 말의 기술을 배우고, 타이밍과 단어 선택을 고민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이 말을 꼭 해야 할까?’ 일지도 모른다. 말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때때로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솔직함이라는 이름 아래 무례함이 오가고,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 아래 타인의 감정을 짓밟는 경우도 있다. 상대를 위한 말이 사실은 나를 위한 말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나는 요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말하는 연습’이 아니라 ‘침묵하는 연습’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용기, 말의 빈자리를 견디는 인내,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줄 여유,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을 믿는 태도. 그런 것들이 먼저 쌓여야, 진짜 말이 시작될 수 있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깊은 공감에 도달할 수 있다.


진심은 결국 말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말은 진심을 담기에는 너무 작고, 너무 제한된 그릇일지도 모른다. 말 이전의 것들을 존중하고 존중받을 때, 우리는 더 깊이 연결될 수 있다.

능숙하지 못한 말, 아이의 미숙한 말이 존중받은 때를 생각해 보자.


침묵은 비어 있지 않다. 때로는 침묵이야말로 마음이 가장 크게 울리는 방식이다.

'나는 너를 기다려.'

'나는 너를 응원해.'라는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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