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마주했다.
햇볕이 따뜻하다. 봄이 가까이 왔구나 느낀다. 거울을 마주하고 선다. 살을 빼야겠다. 흠.. 헤어스타일을 바꿔볼까? 거지 존 단발에 왼쪽 오른쪽 4:6 가르마로 몇 달째 유지 중이다. 그래! 3월이 되기 전에 똑 단발로 바꿔야겠다. 마음먹는다. 이마 쪽으로 5손가락을 넣어 가르마 방향을 바꿔본다. 여배우가 된 것 마냥 예쁜 표정도 지어보다가 이내 깜짝 놀란다. 12가닥의 흰머리가 온기 종기 모여있다. 어? 8개였는데 4개가 생겼어? 8개였을 때 바로 뽑아버리고 싶었지만 흰머리를 뽑으면 2배로 생긴다는 속설에 흰머리가 길어지면 한 가닥만 잡아서 최대한 아래쪽에서 자르려고 기다렸다. 여기서 더 생기는 건 아직 용납할 수 없었다. 예상치 못하게 펀치를 한 대 맞은 느낌이다. 마음이 요동 친다. 뽑을까 말까 고민했다. 보이지 않으면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검은 머리 풀숲에서 오른손 엄지 검지가 요리조리 헤쳐가며 흰머리 주변으로 간다. 왼손은 흰머리가 더 눈에 띄도록 검은머리카락을 누른다. 멋진 팀워크다. 흰머리 끝을 잡은 오른손은 조심조심 아래로 내려가 뿌리째 훅 뽑는다. 시원하다~ 며칠 사이에 흰머리가 이렇게 늘다니 내 손에 들려있지만 안 본 눈을 사고 싶다. 돌연변이라 믿고 싶다.
중학교 2학년 때.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친 엄마는 내 무릎을 베고 누워 드라마를 봤다. 30분쯤 지났을까? 다리가 저려왔다. 코에 침을 여러 번 발랐지만 소용이 없다. "엄마 발 저려요" 얘기했지만 대답이 없다." 엄마 자요?" "아니 아니" 엄마는 아니라고 했지만 눈 감고 드라마 내용 다 아는 특별한 특기를 가진 우리 엄마였다. "엄마 잠시만" 하며 엄마 고개를 살포시 들어 다리를 쭉 폈다. 쭉 펴진 내 다리 위에 엄마 고개를 아까와 같은 방향으로 내려놓았다. 엄마 옆모습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검게 그을렸지만 뽀도 독한 피부, 거뭇거뭇 한 반점들, 작고 귀여운 코, 중간 길이 속눈썹. 딱 적당한 이마 볼륨, 그리고 이마와 머리카락의 경계 사이 수많은 흰머리카락 38살. 엄마 나이였다. 지금 나보다 어린 엄마 나이다.
"엄마 흰머리 봐 좀 뽑을까?"
"납둬"( 납둬이말은 나둬 의 전라도 지방의 말입니다)
흰머리 뽑으면 더 생겨. 속에 안 보이는 흰머리는 내 훈장이야 살아온 증거들!"
"훈장이 뭐 그래 우리 훈장 다른 거로 바꾸자"
"그럼 딸이 염색 좀 해주련?"
"뭐 그까이것! 해줄게"
김애란 단편소설 칼자국을 필사하면서 엄마의 흰머리 모습만 많이 떠올랐다. 다른 예쁜 모습도 많은데 왜 흰머리였을까? 김애란 작가는 돌아가신 엄마를 회상하며 엄마의 언어를 요리로 표현했다. 그리고 "칼자국"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책을 읽고 필사하면서 나도 엄마의 언어를 만들고 싶었다. [38세 엄마의 흰머리 그리고 사춘기였던 나] 옥신각신 티격태격했지만 물리적 정서적으로 가장 가까웠던 엄마와 나 사이였다.
'가장 속도가 느린 독서법' 필사를 하면서 흐릿했던 기억이 쨍하게 선명해짐을 느꼈다. 엄마를 떠올리면 엄마의 모습만 났었다면. 필사하면서 엄마 냄새 그리고 엄마의 촉감이 몸에 감지가 되었다. 1차원적인 눈으로만 읽고 생각만 하던 독서가 5감이 활개 치며 입체적인 영화를 본 느낌이다.
함께 했던 문우들의 필사 후기를 맛보여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