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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ame Byun Mar 23. 2022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세상만사 천하태평인 우리 집 청소년도 땅으로 꺼질 듯 쪼그라드는 특정시기가 있는데 그건 바로,

시험기간이다.

학기 별 2회 치러지는 지필고사는 자유학기제인 1학년은 건너뛰고 2학년부터 시작된다.

니나노~ 하는 일 년이 지나 어느덧 2학년 되면 쏟아지는 수행 폭탄으로 아이들은 혼돈의 3월을 보낸다. 간략한 지필, 구술 테스트, 조별과제 등 다양한 형태의 평가가 지나면 바야흐로 중간고사가 도래한다. 아이들은 이미 긴장이 바짝 올라간 상태인 데다 중등 입학 후 공식 첫 시험이라는 무게감까지 더 해 학교생활 첫 고비를 맞는다. 나의 능력이 점수로 환산되어 소수점 한 자리까지 순서대로 줄 세우는 일은 고삐 풀린 중2도 한없이 쭈그러들 수밖에.


우리 집 청소년의 굽은 등은 더 굽어 꼬부라지고 짧아서 슬픈 거북목은 한껏 움츠러들어 희귀한 모양의 해양생물체가 된다. 거기다 몸집의 두 배쯤 되는 가방을 힘겹게 이고 나가는 뒷모습은 금세 나동그라질 듯 위태롭기 그지없다!  


공부를 시키다 보면 아이의 실제 능력과 부모가 기대하는 능력치 사이에 갭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이 온다. 내 아이를 ‘특별한 아이’로 생각하던 부모의 환상은 초등 고학년 즈음, 긴가민가하는 불길한 조짐으로 찾아오고, 중등 첫 시험을 치르며 제대로 박살이 난다. 중 2 엄마들 사이에서는 첫 시험 결과가 나오는 날 안방에 이불 깔고 아이를 맞아야 한단 얘기가 불문율처럼 떠도는 것은 그래서다.  ‘뒷목 잡고 쓰러질’ 준비를 단단히 해놔야 한단 얘기다.


겉보기와 달리 소심한 일면이 있는 아이는, 시험이 가까워 올수록 '망치면 어떡하지?'라는 말을 수없이 했다.  긴장이 극에 달아 신체적 증상까지 호소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불안해하는 아이가 시험보다 더 위태로워 보였다. 

망하면 안 돼... zzzz....

“괜찮아. 이번 결과가 으면 다음 기회가 있어. 너인생에 지금 일어나는 일은 전부 연습이야. 망하면 안 되는 일이란 건 없어.”


나는 아이를 다독이 스스로에게도 되뇌었다.

'욕심을 내려놓기.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의연하게 받아들이기. '

하지만 조바심이 나고 불안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마치, 아이의 시험 이기전에 나의 엄마 됨을 검증해보는 테스트인 것도 같았다.


불면의 여러 밤들이 지나고 드디어 운명의 디데이가 밝았다.    

아이는 반쯤 사색이 된 얼굴로 학교를 나섰다. 

사실 이 대목 즈음에선, '멘탈에 발목 잡힌 첫 시험 실패담', 아니면 '위기의식 속 첫 시험 성공스토리'로 마무리 지어야 훨씬 극적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혹시나' 기대한 것만큼도 아니고, 뒷목 잡고 이불로 슬라이딩하지 않을 수준으로...  

아이는 슬금슬금 눈치부터 살펴보았다. 첫 참전한 전쟁터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오고도 나의 기대와 만족을 먼저 걱정하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의 눈빛을 읽어내려 애쓰는 아이의 눈에 고단함이 하나 가득 내려앉아 있었다.

'만점은 몇 명이나 되니'라고 물으려던 입을 닫아 버렸다.


“힘들었지? 너무 수고했어. 첫 시험에 이 정도면 성공이야.”

아이를 끌어안고 엉덩이를 팡팡 토닥여 주었다.

 

어쨌든 우리는 그럭저럭 잘 해냈다.

첫 성적표를 받아 들고 아이와 함께 엉엉 우는 엄마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만하면 제법 괜찮았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가 훈하게 마무리된 우리의 첫 시험이다. 나는 첫 단추를 잘 꿰었고 다음은 엄마답게 더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측은 빗나가기 마련이며 내 아이는 안타깝게도 첫 시험의 강자였다.

첫 시험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시험에서 얼토당토않은 실수를 연발하며 점수는 미끄러졌고, 자존감은 함께 급락했다. 그 사이 내 너그러운 엄마 가면은 벗겨져 내동댕이쳐지고 고성과 눈물바람이 집안에 휘몰아쳤다!

결과적으로, 나의 엄마 됨은 시험 결과에 따라 매번 달라졌다. 때론 아이보다 내가 더 욕망하고 있었고 말과 행동은 경우에 따라 달라졌으며 과정보다 결과에 휘둘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 깨달음은 늘 엄마로서의 자괴감과 패배감을 불러왔다.


얼마 전, 내 글을 읽고 깔깔 웃으며 재밌어하는 아이를 보 문득 머쓱해져 물었다.

  "글만 보면..  사춘기 딸에게 엄청난 이해심과 공감능력을 가진  엄마 같지? 실체는 안 그런데. "


 "응...  뭐 다들 그렇지."


아이가 보는 나의 모습이 어떤지 나는 아이의 인생에 좋은 영향력을 가진 엄마인 건지 글을 쓸 때 늘 생각하게 된다. 아이가 독립적인 성인으로 훌륭히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야 어느 부모나 같겠지만 거기에 아이의 것이 아닌 나의 만족이나 성취감이 한 톨도 섞여 있지 않느냐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4월.. 또다시 다가온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할 그 빌어먹을 시험이.

이번은 진짜 엄마답게 잘해 보리라 또 다짐한다.

매번 다짐하고 또 실패하지만, 수히 많은 시험이 남았다는 것은 절망인 동시에 희망인 거라며 아무도 해주지 않는 격려로 나를 북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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