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꿈과 현실
히사코와 나츠코
와라와라와 펠리컨
앵무새와 할아버지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세계가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그대들은 ‘어떤 세계를’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주인공 마히토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만날 때마다 어김없이 저항을 맞는다.
할머니 키리코에게 다리를 잡히고 펠리컨들에게 먹힐 뻔 하고 큰 파도를 넘다가 탈진하고
부적들에 의해 정신을 잃기도 하고 잔해 더미에 묻히기도 한다.
마히토는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왜 굳이 소통도 제대로 안되는 세계들과 함께하는 걸까?
도대체 왜 굳이 거센 저항을 무릅쓰고 나츠코의 산실까지 들어가는 걸까?
그는 왜 굳이 망각이라는 축복을 거부하고 지난 세계의 조각을 품고 있는 걸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이 실존이라면 ‘어떻게’는 부차적일 것이다. ‘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마히토의 모든 선택에는 오직 마히토만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이미 저마다의 세계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와라와라들 사이에 있을 수도 있고 앵무새들 사이에 있을 수도 있다.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있든 그곳에 내가 있다면 무엇이든 좋다.
모든 왜가리는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다른 왜가리가 말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대들은 어렵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