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겨운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창밖을 바라본다. 늦은 밤이다. 밤만 되면 예외 없이 슬퍼지는 나는 건물 사이 빛나는 간판들을 괜히 탓해본다. "너 때문에 내가 슬퍼지는 거야." 그것들이 있어 그나마 내가 살고 있음에도. 버스 안 소음들을 괜히 탓해본다. "너희들 때문에 슬퍼지잖아." 그것들이 있어 그나마 살아있음에도. 밤이 깊어질수록 자아는 견딜 수 없이 희미해진다. 내가 밤과 바다를 동일시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한쪽이 고장난 이어폰을 끼고 노이즈 캔슬링을 켠다. 캔슬되는 것은 왼쪽의 세상인가 오른쪽의 망상인가. 두 개의 세상이 공존하는 이도 저도 아닌 세상. 누군가 나를 데려가 줬으면 좋겠다. 편안한 이불 속으로. 따뜻한 이불 속으로. 더 이상 빨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이불 속으로. 버스에서 내리고 횡단보도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처량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