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전공한 사람도 꾸준히 써오던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글과는 오래전에 멀어진 사람이었다.
십 대 시절 속마음을 끄적이던 일기장조차
결혼과 생계라는 이름 아래 덮어둔 지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났다.
일상은 그런대로 평온했다. 그러나 때로 평온은 지루함이라는 그림자를 달고 온다.
별 탈 없이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도
문득문득 내 안이 비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시간의 여유와는 다른 결의 허기였다.
아마도 스스로 ‘인정받고 싶다’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직장에 다닐 때는 그런 갈증이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시험, 자격증, 승진—노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졌고 나는 그 성과로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혼 후 남편의 회사에서 함께 일하게 되면서부터 내 이름 앞에 붙는 말은 ‘누구의 아내’, ‘회사 실장님’이 되었다.
삶은 편안했지만 나 자신을 증명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아무 도전도 하지 않으니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나날이었다.
그래서 마음 한편에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생각을 꺼내 들었다.
글을 써보자.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문득 중학생 시절 국어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이 떠올랐다.
“너 [좋은 생각]에 글 한번 보내봐.”
그 말을 23년 만에 실행해 보기로 했다.
나는 집에 대한 짧은 수필을 써서 좋은 생각에 투고했다.
반쯤은 용기, 반쯤은 호기심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전화를 받았다.
“채택되었습니다.”
심장이 콩닥거렸다.
오래 잠들어 있던 내 안의 도전정신이 다시 깨어나는 듯했다.
자신감을 얻은 나는 공모전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브런치스토리’라는 글쓰기 플랫폼을 알게 되었고,
또다시 무모하게 작가 신청을 했다.
그리고 믿기 어렵게도 승인되었다.
‘채택’이라는 말 한마디가 내 글쓰기에 얼마나 큰 용기와 응원이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책이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내 이름 석 자와 함께 실린 내 글 한 편을 마주하고 싶었다.
그런데 책을 받아 들고는 잠시 멈칫했다.
분명 내가 쓴 글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쓰지 않은 글 같았다.
이야기의 절반은 사라져 있었고, 그러다 보니 남은 절반도 어쩔 수 없이 다듬어져 있었다.
그제야 ‘채택’이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았다.
편집 가능성에 동의했던 한 줄의 문장이
이 뜻이었구나- 그제야 실감했다.
그들은 ‘내 글’보다는 ‘내 사연’을 실어준 것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누군가의 공감만을 바란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써낸 문장 하나하나가 나를 설명해 주길 바랐다는 것을.
내 이야기가 ‘내 문장’으로 전해지길 바랐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화 한 통은 내게 분명한 전환점이 되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무언가를 글로 남기는 감각이 되살아났고 그 뒤로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처음 받아본 ‘채택’이라는 단어.
그 속에는 작지만 확실한 기쁨이 있었고,
동시에 내 글이 가진 힘과 한계를 돌아보게 하는 깨달음도 함께 담겨 있었다.
그날의 콩닥거림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한 편의 글이 실렸다는 의미를 넘어 다시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첫 문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