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사랑 한박스

by 오마롱



시어머니 댁을 나서는 길 현관 앞에 고구마 한 박스가 놓여 있었다.
"가져가 네 거야. 너 주려고 산 거야."
어머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셨지만

상자 안 고구마는 크고 반들반들했다. 흙 한 톨 없이 말끔히 손질된 그것들엔 누군가의 손길이 오래 머물렀다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눠 드세요."
말씀을 드리자 어머님은 손을 내저으셨다.
"내 것도 따로 샀어. 이건 네 거야. 다 가져가서 먹어."

그날 밤 몇 알을 에어프라이어에 넣었다.
군고구마 특유의 달큰한 냄새가 부엌에 퍼졌다. 한입 베어 물자 포슬포슬한 식감에 은은한 단맛이 번졌다.
엄청나게 달지는 않았지만 먹을 만했다.
'나쁘지 않네.' 속으로 생각하며 두어 알을 더 집어 먹었다.

며칠 뒤 어머님을 다시 뵈었다.
기다렸다는 듯 물으셨다.
"고구마 먹어봤어? 어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네~ 엄청 달진 않아도 크고 먹을 만 하더라고요. 잘 먹고 있어요."

그 순간 어머님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마트에서 고구마를 파는데 상태가 너무 좋은 거야. 너 좀 사다주고 싶어서 이모한테 같이 가자고 했지. 내가 혼자 들고 올 수는 없으니까. 세일하길래 샀어. 내 건 만사천 원, 네 건 만오천 원짜리야.
살 땐 몰랐는데 나란히 차에 싣고 보니까 확실히 만오천 원짜리가 더 크고 좋더라. 이모도 그러더라고.
'제일 좋은 건 지은이 거다~' 내가 그랬지."

그 말을 듣는데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나는 그저 맛 평가나 하고 있었는데 어머님은 고구마 한 상자에도 마음을 담고 계셨다.
고작 천 원 차이.
그 사소한 금액 차이 속에도 어머님은 본인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고 계셨다.

그날 고구마 한 상자를 통해 나는 오래 잊고 살았던 마음 하나를 떠올렸다.
어머님은 반찬 하나, 과일 한 봉지, 고기 몇 점, 고구마 한 박스에도 '누구보다 너에게 좋은 걸 주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보내셨다.
나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고 맛이 어쩌니 저쩌니 따지며 살아왔던 것이다.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나는 매일같이 이런 사랑을 받고 살아간다.
그러니 나도 더 사랑하며 살아야겠다고,
받은 만큼 돌려주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나는 고구마를 먹을 때마다
그날 어머님의 말투와 웃음,
그리고 나를 위해 더 좋은 걸 고르고 또 고르셨을

그 마음이 떠오를 것이다.

고구마 한 박스에는
그런 사랑이 소복히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