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데이
한 번의 육아휴직과, 두 번째 육아휴직으로 나의 마음 또한 많이 지쳐있었다. 아내의 우울증은 마치 짙은 안개처럼 서서히 나를 감싸 안았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 '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룰 자격이 없는 사람인 걸까?' 사실 현실적인 비관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현실을 거부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깊어가는 우울증의 늪에서 아내를 건져내야 했고, 여린 아이의 손을 잡아주어야 했다.
그런 나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술이었다.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 한잔이 반 병이 되고 반 병이 한 병이 되었다. 때로는 그 이상이 되는 경우도 잦았다. 마치 깊은 우물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아가는 것 같았다.
내 인생 이렇게도 매일같이 술을 먹었던 적이 한번 더 있었다. 21살 4월 어느 날쯤이었다. 대학 신입생 시절 통기타 동아리에 들어갔고 공연 뒤풀이가 있었다. 술을 과하게 마신 탓에 그날 잠든 사이 20통이 넘게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했다.
늦은 아침에서야 겨우 전화벨 소리에 깨어났다. "야! 너 지금 어디야 이놈아!" 유일하게 나에게 쓴소리를 하시는 숙모였다. "니 엄마 지금 돌아가셨어 이놈아, 빨리 와" "뭐...라...고...요 숙모?" 그 순간부터 시작된 1년은 끝없는 어둠 속을 헤매는 시간이었다.
매일매일이 술이었다. 매일매일이 울음이었고 세상에 대한 원망이었다. 술자리는 아침 동이 터서야 끝이 났고, 저녁이면 다시 술과 함께였다. 술은 나를 끝없는 터널로 끌고 들어갔다.
그랬던 내가 또 매일 같이 술을 마셨다. 역시나 술은 또다시 나를 그 깊은 터널 속으로 끌고 가려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터널 끝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두 개의 별이 있었다. 바로 아내와 아이였다.
술을 마시면서도 늘 정신을 부여잡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지친 몸과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나도 그저 그런 나약한,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에 불과했다.
술은 그 순간의 아픔을 잠시 마취시켜 주는 진통제 같았다. 그래서 더 술과 가까워졌다. 하지만 때로는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폭풍우처럼 몰아치게 했다. 그럴 때면 나도 나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다.
제동장치가 고장 난 폭주하는 기관차였다. 그런 내 모습을 보는 아내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니, 그런 감정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그저 더 깊은 우울의 심연으로 가라앉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의 눈동자에는 어떤 두려움이 서려있었을까? 때로는 그 맑은 눈동자와 마주칠 때마다 죄책감에 숨이 막혀왔다. 나는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만들고 있었다.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더 큰 아픔을 주고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무겁게 저린다. 우리 모두가 치유받아야 할 시간이었다.
어느 날 문득, 사진 속 우리 가족을 보게 되었다. 사진 속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세 사람이 있었다. 내가 그토록 꿈꾸던 가족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맞서 싸워야 할 상대는 아내의 우울증이 아니라, 도망치기 바빴던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천천히, 하지만 단단하게 나를 다잡아갔다. 매일 아침 거울 속 내 모습과 마주하며 다짐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남편이, 아버지가 되겠노라고.
(다음이야기 : 처남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