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함께
시간은 한 장의 달력처럼 덧없이 흘러갔다. 분홍빛 벚꽃이 흩날리던 봄이 가고, 매미 소리로 가득했던 더운 여름이 스쳐 지나갔다. 단풍으로 물들었던 시원한 가을이 저물고, 하얀 눈송이를 동반한 차가운 겨울이 다시 찾아왔다. 하지만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얼마 전 우리 가족과 이별했던 불청객이 다시 찾아왔다. 우울증이라는 이름의 그림자가.
아내의 모습은 조금씩, 하지만 확연하게 바뀌어갔다. 활기찼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졌고, 맑던 눈빛은 점차 흐려졌다. 한때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입가는 다시 무거운 침묵을 머금고 있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아내는 이불속 깊숙이 몸을 숨겼다. 마치 동면을 준비하는 작은 동물처럼,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려 했다. 때로는 그 작은 공간이 아내에게 유일한 안식처처럼 보였다.
"여보..." 어느 날 아침, 아내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나... 왠지 이상해... 뭔가 달라..."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내의 생기가 하루하루 말라가는 것을, 그녀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져 가는 것을.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감기 기운인가? 좀 쉬어."
감기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약 며칠이면 나을 텐데. 하지만 우울증은 달랐다. 서서히 스며들어 영혼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병이었다. 약으로도, 의지로도 쉽게 이겨낼 수 없는 긴 싸움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아내의 우울증은 서서히, 하지만 확연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단순한 피로감으로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조금씩 늦어졌고, 이불을 걷어내는 동작은 한없이 무거워졌다. 한동안 아침 식사 준비를 즐겁게 하던 그녀였지만 주방 앞에 서는 것조차 큰 결심이 필요해 보였다.
낮에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이가 울어도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마치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어 보였다. 식사량도 줄어들었다. 반공기도 겨우 비웠고, 때로는 숟가락을 든 채로 한참을 멈춰있곤 했다.
밤에는 더 심했다. 잠들지 못하고 천장만 바라보았다. 가끔은 이유 없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왜 우는 거야?"라고 물으면 "나도 모르겠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너무 피곤해..."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신체적 피로가 아니었다. 영혼이 지쳐 있는 듯했다. 머리를 감는 것도, 옷을 갈아입는 것도 큰일이 되어버렸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피했다.
특히 마음 아픈 건 아이를 대하는 모습이었다. 아이가 안아달라고 할 때면 잠시 안다가 이내 내려놓았다. "팔이 너무 아파..."라고 했지만, 실은 마음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것도 피했다. 혹시나 자신의 우울한 감정이 아이에게 전해질까 봐 두려워하는 듯했다.
이제 갓 돌이 지난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다. 매 순간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였다. 첫걸음마를 준비하고, 옹알이를 하며, 세상을 향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모든 것을 탐험하고 싶어 했다.
나는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런 나에게 또다시 육아휴직을 하는 건 부담이었다. 아내 곁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책임 사이에서, 선택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건 도우미였다. 나이 지긋한 이모님이 우리 집을 찾아오셨다. 하지만 아내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타인의 시선이 두려웠던 걸까. 아니면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결국 육아휴직을 다시 신청했다. 상사는 만류했다. 진급은 멀어질 것이 뻔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아내의 미소, 아이의 웃음소리, 우리 가족의 평범한 일상이 더 소중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었다. 결국 두 번째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다시 찾은 정신의학과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던가. 희망을 찾아 헤매던 그 시간들이 다시 반복되고 있었다. 하얀 벽과 약 냄새, 차가운 의자와 묵직한 침묵. 아내는 멍하니 앉아있고, 나는 아이를 안은 채 기다렸다. 익숙한 풍경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의사 선생님의 얼굴도 그대로였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얼굴이지만, 우리에게 희망이 되어줄 유일한 사람이었다. 처방전을 내밀며 건네는 위로의 말들이 공허하게 들리지만, 그래도 믿을 수 있는 거라곤 의사 선생님과 처방전뿐이었다.
아이는 계속 엄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작은 손으로 엄마의 얼굴을 만지려 하고, 품에 안기려 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아이조차 힘겨워했다. 울음소리가 병원 복도를 울렸다. 나는 아이를 달래며 생각했다. '이 차가운 겨울이 지나야 우리 가족에게 따뜻한 봄이 다시 찾아올까?'
매 순간이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우리 가족의 봄을 기다리며 버틸 뿐이었다. 아내의 미소가 돌아올 때까지.
(다음 이야기 : 매일 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