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따뜻하더라
그해 겨울은 내 생의 가장 혹독한 계절이었다. 매서운 추위는 살을 에고, 바람은 마음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엄마의 젖을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된 아이에게 분유가 대신 그의 작은 배를 채웠다. 다행히도, 아이는 순순히 적응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이를 향한 손길조차 주저하는 아내를 보며, 나는 깨달았다. 우울이라는 어둠이 얼마나 깊고 무서운 병인지, 그것이 사람의 본능마저 잠재울 수 있는 괴물임을.
육아휴직의 하루는 단조로웠다. 때가 되면 분유를 타고, 때가 되면 기저귀를 갈고, 때가 되면 아이를 재우고, 때가 되면 작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목욕을 시켰다. 규칙적인 일상이었지만, 그 속에서 나는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는 내 품에서 익숙함을 찾았고, 그럴수록 아내와의 거리는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여전히 엄마를 찾았다. 본능일까, 아니면 자연의 섭리일까. 그러나 아내는 끝내 아이를 안아주지 못했다. 우리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깊은 지침과 슬픔이 고여 있었다.
아내는 바깥세상을 지나치게 두려워했다. 나가는 것조차 힘겨워했고,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이상하게 볼까 봐 망설였다. (훗날 그녀가 직접 들려준 이야기였다.) 우울증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몸을 움직이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되건만, 그녀는 점점 더 움츠러들었다.
결국 집 밖의 모든 일은 내 몫이 되었다.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데려갔고, 장을 보러 갈 때도 아이를 품에 안고 마트로 향했다. 그런 나를 볼 때면 사람들은 말했다.
"아이고, 아빠가 아이를 참 잘 돌보시네요."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덕담이라며 던진 말이었다. 나는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짓고, 대화를 피하며 자리를 떠났다.
긴긴 하루들이 지나가고, 마침내 봄이 찾아왔다. 따스한 햇살이 거실 창을 넘어 방 안까지 스며들었고, 바람에는 겨우내 감춰져 있던 생명의 기운이 실려 왔다. 집 뒤편 산자락에도, 길가의 작은 틈새에도, 푸른 싹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무렵 아내도 서서히 눈을 떴다.
"여보, 오늘은 기분이 좀 괜찮은 것 같아."
아내가 그렇게 말할 때, 우리는 좋아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달라진 것은 단 하나, 겨울이 끝났다는 사실 뿐이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기대를 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아내는 처음으로 내 손을 잡고 문밖을 나섰다. 한참 만의 바깥바람이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여전히 어색하고 조심스러웠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그렇게 조금씩, 아내는 아이를 다시 품에 안기 시작했다. 작은 손을 어루만지고, 분유를 타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아이는 엄마의 품속에서 더없이 편안한 얼굴을 지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안도했다. 엄마는 역시 엄마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병원 방문을 멈추지 않았다. 2주에 한 번, 한 시간 넘는 거리를 달려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그렇게 약을 받아와야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봄이 끝나갈 무렵, 아내는 어느 날 내게 말없이 약을 끊었다.
"여보, 이제 약은 안 먹어도 될 것 같아. 나, 다 나은 것 같아."
"그래도 계속 먹는 게 좋지 않을까? 의사 선생님도 적어도 1년은 필요하다고 하셨잖아."
나는 조심스럽게 만류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말로 괜찮아 보였다. 우울이라는 그림자는 사라지고, 그녀의 눈빛도 한결 맑아졌다.
나는 6개월간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회사로 복직했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우리는 이제 다시 평온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계절은 돌고 돌아, 다시 겨울이 온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다음 이야기: 다시 겨울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