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봄이 왔으면

진주로 가는 길

by 오분레터

주말이면 겨울 안개가 낀 고속도로를 달렸다. 거제에서 진주까지, 늘 처갓집으로 가는 길은 유난히 멀게만 느껴졌다. 달리는 차 안에서 아내의 숨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아내의 마음속에도 걷히지 않는 안개가 끼어있을 터.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움직이는 차 안의 소음을 자장가 삼아 곧 잠이 들었다.



처갓집으로 향하는 주말 여정은 우리의 변함없는 의식과도 같았다. 2주에 한 번씩, 우울증이 찾아오기 전이나 후나, 우리는 이 길을 항상 달렸다.



아내의 고향, 진주. 그곳에는 아내의 추억이 깃든 골목길과,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들이 살아 숨 쉰다. 어쩌면 이 친숙한 풍경들이 그녀의 잃어버린 미소를 되찾아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안고 꾸준히 우리는 진주로 향했다.



어느 날, 차 안에서 아내가 불현듯 말을 꺼냈다. "여보, 나... 죽고 싶어." 핸들을 잡은 내 손이 덜덜 떨렸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평소라면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할 거리가 그날따라 백 년은 걸리는 것만 같았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나오는 눈물을 훔치지 않으려 억지로 눈물을 참았다. 세상에 대한 원망이 하나도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순간 순간 달리는 차를 그대로 어딘가로 돌진하고 싶단 충동이 일기도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다시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아들 딸 모두 출가시킨 장인어른은 홀로 지내고 계셨다. 딸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실 때마다 안타까움에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하지만 아내는 그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곤 했다. 마치 깊은 우물 속에 잠겨있는 것처럼, 세상의 소리가 그녀에게는 아득하게만 들리는 듯했다.



저녁 식사 자리, 장인어른은 "딸..." 말씀하시다 목이 메어 더는 말을 잇지 못하셨다. 그 순간 식탁 위로 떨어지는 아버님의 눈물을 보며, 나는 가슴 한편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늘 꼿꼿하시던 아버님의 어깨가 처음으로 늙어 보였다.



처남네도 아들 둘과 함께 부산 명지에서 자주 올라왔다. 처가 가족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좋다는 병원 소개에, 각종 민간요법까지. 하지만 수많은 병원을 전전하며 우리의 희망은 이미 바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장인어른이 추천해 주신 병원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나이 지긋한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따뜻한 봄날 아침 햇살 같은 그분의 목소리에 아내의 굳게 닫혔던 마음이 살며시 열리는 것을 느꼈다. 새로운 처방전을 들고 나오는 길, 우리는 작은 희망의 씨앗을 심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밤하늘의 별들처럼 멀고도 까마득한 완쾌의 길.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물음 앞에서, 나는 그저 내일은 조금 더 따뜻한 날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마치 겨울 끝자락에서 봄을 기다리는 매화나무처럼, 우리는 그렇게 따뜻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아내의 마음속에도 다시 봄날이 찾아올 그날을.



(다음 이야기 : 기다리던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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