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없지만...
출산 후 양가 부모님의 육아 도움을 받는 경우를 자주 봐왔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쉽지 않기에, 부모의 도움은 새내기 부모에게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 된다.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그런 축복이 허락되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었기에,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때 처남이 손을 내밀어주었다. 당시 부산 명지에 살던 처남의 집은 우리가 사는 거제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였다. 처남의 제안은 간단했다. "우리 집에서 당분간 지내는 게 어때?" 전업주부인 처남댁도 아내를 돌봐주겠다며 흔쾌히 동의했다.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고민이 된 건 사실이었다. 처남네도 세 살, 한 살배기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 집에 우리 가족까지 들어가 살면 너무 큰 부담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당시 나는 회사를 다니고 있는 상황이었고,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아내와 아이를 혼자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최소한의 옷가지와 짐만 챙겨 처남네 집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회사 출퇴근 버스가 처남네 아파트 앞까지 다녀서, 나 역시 그곳에서 출퇴근이 가능했다. 세 개의 방이 있는 평범한 국평 규모의 아파트, 그중에서 옷방으로 쓰던 작은 방 하나를 우리 가족에게 내어주었다.
매일 저녁, 퇴근 후 처남네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어김없이 작은 방에 누워있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아이는 또래인 사촌들과 잘 어울려 놀았다. 그 모습을 보며 작은 위안을 얻었다.
"오늘 밥은 좀 먹던가요? 좀 어땠어요?"
매일 저녁 처남댁에게 건네는 첫마디였다.
"잠깐 같이 바깥 산책도 하고 그랬어요."
누군가 곁에서 챙겨주니 산책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게 그저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쉽지 않았다. 며칠째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던 처남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져만 갔다. 이해했다. 나 역시 그런 시기를 겪었으니까.
하지만 우울증이란 게 그렇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당사자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마치 철벽을 마주하는 것처럼, 공자 맹자가 와도 문전박대당할 지경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처남과 처남댁에게 너무나 고맙다. 본인들 아이 둘도 버거웠을 텐데, 우리 가족까지 돌봐준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그렇게 처남네 집 작은 방에서 삶의 한 장을 써 내려갔다. 그것은 우리 가족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주었고, 힘겨운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따뜻한 버팀목이었다.
가족의 의미는 때로 이렇게 예기치 않은 순간에 더욱 깊이 다가왔다. 우리의 고단한 시간을 함께 나눠준 처남네 가족이 있었기에, 그 힘겨운 날들을 버텨내는데 힘을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