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인척
우리의 소식은 마른 겨울바람처럼 친인척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아내의 전화기에서 공중을 타고 이어졌고, 응원의 메시지는 끊임없이 울렸다. 특히 아내의 처가 쪽 친인척들의 걱정은 깊어만 갔다. 수년 전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아내였기에, 어르신들의 안타까운 마음은 더욱 애틋했다.
나는 그들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실은 나아지는 게 아니라 조금씩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지만, 그들을 더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답답한 집 안의 공기가 아내의 숨통을 조이는 것 같아, 바깥공기라도 마시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날이면 아내는 차 안에서부터 불안해했다. 땀에 젖은 손바닥, 창백한 얼굴, 잦아드는 호흡... 나는 그저 그녀의 손을 잡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차가운 손을 잡고 있노라면, 내 마음도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부산에는 아내의 작은 아버지와 고모님이 한 아파트에 살고 계신다. 우리는 그 집을 찾아 자주 문을 두드렸다.
아내의 고모님과 숙모는 마치 자신의 딸처럼 아내를 걱정하셨다.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힘을 내야 한다", "많이 먹어라, 그래야 힘이 난다", "혼자 계신 아빠가 얼마나 걱정하시겠니, 빨리 힘을 내라"...
그러나 그 어떤 말들도 아내의 꽁꽁 얼어붙은 마음에는 닿지 못했다. 오히려 그런 말들이 아내를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밤이면 이불속에서 "나는 왜 이렇게 약한 걸까..."라며 흐느끼는 아내의 모습에 나는 가슴이 찢어지면서도 어느 순간 무뎌지기 시작했다.
초점 없는 눈동자는 마치 안갯속을 헤매는 것 같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움직임은 깊은 바닷속을 떠도는 듯했다. 식사 시간이면 그저 숟가락만 든 채 멍하니 앉아있었고, 옷을 고르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나는 때론 화가 났다. 왜 조금만 더 노력하지 않는 걸까, 왜 이렇게 자신을 방치하는 걸까...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챈 듯 더욱 움츠러드는 아내를 보며, 나는 내 마음의 분노를 삼켜야만 했다.
그 속에서도 아이는 봄날의 꽃처럼 순수하게 피어났다.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울며 잘 자랐다. "엄마 안아줘"라며 달려드는 아이를 보며 아내는 더욱 괴로워했다. 제대로 된 엄마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밤마다 흐느꼈다. 나는 그저 아내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언젠가는 지나갈 거라고, 우리가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다고 속삭였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처남댁의 친정 식구들이 우리 가족을 초대했다. 엄청난 대가족이었다. 위로 오빠 한 명과 언니 넷,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와 아이들까지... 처남댁의 언니가 우울증을 겪은 경험이 있다는 말에 한줄기 희망을 품고 찾아갔지만, 집에 들어가는 그 순간 아내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너무 많은 시선과 걱정, 위로의 말들이 오히려 아내를 옥죄었다. 우울증이 만든 보이지 않는 벽은 사람들의 온기조차 차갑게 막아섰다. 그날 밤, 차 안에서 돌아오는 내내 아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라디오 소리만 작게 틀어놓은 채, 그녀의 침묵을 지켜주었다.
마산의 큰 이모댁, 진주의 작은 이모님 댁까지... 우리는 마치 길 잃은 나그네처럼 아내의 친인척들을 찾아다녔다. 혹시나 하는 작은 희망을 안고서. 매번 빈손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지만, 어쩌면 그 모든 만남들이 보이지 않는 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걱정 어린 눈빛과 따뜻한 손길이, 비록 그 순간에는 닿지 못했더라도, 조금씩 아내의 마음을 덥혀주었을 테니까.
겨울이 끝나갈 무렵, 아내는 마치 얼음 속에 갇혔던 새싹처럼 조금씩 생명력을 되찾아갔다. 어느 날 문득, 창가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미소 짓는 아내를 발견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모여 그녀의 차가운 겨울을 녹였던 걸까. 그토록 기다리던 봄이 또다시 우리에게 찾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