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에서 돌아온 후, 집 안의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부서진 물건들 사이로 우리의 깨진 관계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침묵만이 가득한 공간에서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다시 막막함을 느꼈다.
그날 밤, 아이들이 잠든 후 아내에게 말을 건네도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여전히 아내는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밤 아내의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비록 대화는 없었지만, 내 존재라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처가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특히 장인어른의 모습은 내게 큰 죄책감을 주었다. 장인어른은 아내의 상태를 보면서도 분노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손자 손녀와 사위를 감싸 안았다. 그 모습이 내게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집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둘째가 갑자기 열이 나서 응급실에 갔다. 의사는 별 이상 없다고 했지만, 아내는 그날 밤 내내 아이 곁을 지켰다. 무표정했던 얼굴에 걱정의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모성애는 우울증에도 꺼지지 않는 불빛 같았다.
그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짧지만 결연한 목소리였다. "노력해 볼게..."
이후 아내에게 변화는 서서히 찾아왔다. 아내는 포기하지 않았고 조용히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그리고 또다시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봄이 가까워질수록 아내에게 미세한 변화가 찾아왔다.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보는 모습을 발견했다. 햇살이 아내의 얼굴을 비췄고, 그 순간만큼은 아내의 얼굴에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아이들과의 시간도 달라졌다. 아이들의 존재 자체가 아내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첫째의 웃음소리, 둘째의 옹알이만으로도 집 안의 무거운 공기가 조금씩 가벼워졌다.
아내도 조금씩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처음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첫째의 머리를 빗겨주거나, 둘째에게 분유를 데워주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작은 행동들이 모여 아이들에게 따뜻함을 가져다주었다.
육아휴직 3개월째,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떠났다.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근처 바닷가로의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아내는 여전히 쉽게 지쳤지만, 그 작은 도전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바닷가에서 아이들은 모래를 만지며 놀았고, 아내는 모래사장에 앉아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말은 없었지만, 그녀의 눈빛에서 잠시나마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변화는 계속되었다. 아내의 약물 용량이 조절되고, 상담이 지속되면서 그녀의 상태는 안정되어 갔다. 여전히 나쁜 날들이 있었지만, 그 빈도는 줄어들었다.
육아휴직 3개월이 지나고, 나는 회사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아내의 상태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일상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되었다.
세 번째 육아휴직 마지막 날, 우리 가족은 집 근처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봄이 시작되었고, 공원은 새싹으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싱그러운 잔디밭 위를 기어 다녔고, 아내는 간간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앞에는 여전히 긴 여정이 남아있었다. 아내의 우울증은 완전히 치료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다시 한번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