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우울증이 완쾌되진 않았지만 나는 복직을 서둘렀다. 몇 번의 우울증을 겪으며 우리 부부는 한 가지 패턴을 발견했다. 칼날 같은 바람이 창문을 때리고, 잿빛 하늘이 온종일 드리운 겨울이면 어김없이 우울증이 찾아온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살랑이는 봄바람에 목련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따스한 햇살이 대지를 데우기 시작하면, 마치 눈 녹듯이 아내의 우울증도 자연스레 녹아내린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번에도 그럴 거란 희망으로 나는 서둘러 회사로 돌아갔다. 다행히 예상대로 아내의 우울증은 봄을 맞이하듯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회사로 복직한 해, 나는 과장 진급 대상이었다. 아니, 이미 과장이 되고도 남았을 나이였다. 그러나 세 번의 육아휴직은 진급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되었다. 국가에서 권장하는 육아휴직인데 왜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팀장은 "회사도 어쩔 수 없다"라며 말끝을 흐렸고, 파트장은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예상했던 결과였음에도 직접적인 진급 불가 통보를 받자 가슴 한편이 무거워졌다. 육아휴직 기간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회사였다. 그해 나보다 한참 어린 후배가 과장 계급장을 달았다. 회식자리에서 축하를 건넸지만, 속으로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때부터 퇴근 후면 항상 이직을 준비했다. 마치 첫 직장을 찾는 신입사원처럼 수십 군데 이력서를 제출했다. 낮에는 회사 일에 충실했고, 밤이면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준비했다. 아내는 내 옆에서 묵묵히 힘이 되어주었다. 그러다 운 좋게도 지금의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다. 새로운 회사는 더 나은 처우와 함께 과장 직급을 제안했다. 아내도 기뻐했다. 우울증을 세 번이나 겪은 곳이라 그랬는지, 이곳을 떠난다는 것에 아내는 슬퍼하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반기는 듯했다.
단풍이 절정을 이루던 11월, 우리는 거제도를 떠나 청주시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이사 날, 창밖으로 보이는 붉게 물든 산자락이 마치 우리 가족의 새로운 출발을 축복해 주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은 새로운 동네가 신기한지 들떠있었고, 아내의 얼굴에도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위도상 더 추운 곳이었기에 우리는 많은 걱정을 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우울증도 함께 찾아올까 두려웠다. 이사 온 첫 달, 우리는 서로를 더 많이 살피며 조심스레 겨울을 맞이했다. 아내는 매일 아침 아이들을 배웅하며 햇살을 마주했고, 나는 가능한 한 일찍 퇴근하여 집으로 향했다. 작은 일상의 따뜻함으로 추위를 이겨내려 했다.
그해 겨울, 다행히도 우리 가족에게 우울증의 그림자는 드리우지 않았다. 더 이상의 겨울도 우리는 두렵지 않았다. 아내는 새로운 환경에 의외로 잘 적응했고, 아이들도 새 친구들과 즐겁게 지냈다. 이전과 달리 우리는 겨울이 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새로운 회사에서 안정을 찾아갔고, 아내는 동네 아이 엄마들과 교류를 시작하며 지극히 평범하게 하루를 보냈다.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또다시 가을이 찾아왔다. 우리의 일상은 평화로웠다. 더 이상 계절의 변화가 두렵지 않았고, 우리는 우울증과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항상 예측불가능한 법. 어느 날 아침, 창밖에 다시 매서운 겨울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하자 아내의 표정이 조금씩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