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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는 것도 좋지만, 달릴 때 더 선명해진다

by 오분레터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멈춘다’는 행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삶이란 항상 무언가를 향해 달려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멈춘다는 것은 곧 도태되는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 책은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가끔은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그 문장을 마음속에 품은 채 많은 해가 지났고, 나는 지금 오히려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야 진정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러닝화를 신고 무심코 동네를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서였다. 헬스장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땅 위를 직접 딛는 느낌, 이따금 들려오는 새소리와 자동차 소리, 그리고 낯익지만 낯설게 다가오는 동네 풍경들. 그렇게 나는 주말 아침, 하루의 문을 달리기로 열기 시작했다.


10킬로미터를 달리던 어느 날이었다. 늘 다니던 길이었지만, 그날따라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동네 한쪽에 새 다리를 놓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내가 사는 마을에 축사가 이렇게나 많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한적한 하천 옆에는 민물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동차로는 수없이 스쳐 지나갔던 풍경들이었지만, 달리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달리기를 통해 사유하는 인간의 고독과 몰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문장들이 이제는 이해되었다. 자동차는 너무 빠르고, 걷는 것은 너무 느리다. 달리기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나에게 딱 맞는 삶의 속도를 찾아주었다. 빠르지 않되 분명한 속도, 그 속에서 나는 세상을 바라보았고, 나 자신을 마주했다.


달리기를 하며 내 안의 무거운 것들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짧은 숨 사이로 고였던 감정들이 날숨과 함께 흘러갔다. 아침 햇살 속에서, 혹은 흐린 저녁 하늘 아래에서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살아 있음은 결국 감각하는 것이며, 그 감각은 멈추거나, 혹은 달릴 때 비로소 또렷해지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나는 많은 곳을 달린다.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도, 첫 일정을 달리기로 시작했다. 골목의 소리, 나무의 흔들림, 사람들의 표정, 아침 공기의 밀도. 그런 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걷는 것도, 차를 타는 것도 아닌, 달릴 때였다.




그래서 지금의 난 지인들에게 조심스럽게 권한다. 달리기를 해보라고. 속도를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속도를 찾기 위해서. 삶이 버겁거나, 마음이 지치거나, 생각이 너무 많을 때. 짧은 거리라도 괜찮다. 천천히 달려보면, 어쩌면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감각이 되살아나고, 흐려진 마음이 맑아질지도 모른다.


삶은 매일같이 바쁘게 흘러간다. 멈추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달리는 것이 더 나를 살게 했다. 달리면서 나는 나를 되찾았고,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달렸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나만의 속도를 찾아, 묵묵히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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