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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공장

선물을 받았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by 오분레터

출장 중 만난 선물


중국 남경 법인에 출장 중 있었던 일이다. 현지에는 조선족 직원들이 꽤 많다. 그중 한 분과는 평소에도 자주 연락하고 지냈다. 일 얘기뿐 아니라,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나눴다.


그분이 불쑥 선물을 건넸다. 스타벅스 텀블러였다. 며칠 전, 그분이 뜬금없이 내게 물어본 것이 생각났다. "어떤 색 좋아하세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녹색이요. 편안해서요."


그분이 전해준 텀블러는 녹색이었다. 그 순간이 떠올랐다. 예상치 못한 선물은 늘 사람을 감동시킨다. 그분은 말했다. "항상 이것저것 여쭤볼 때 잘 알려주셔서 감사했어요."


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그분의 월급이 그리 많지는 않을 텐데.' 스타벅스 텀블러는 나조차도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혹시나 무리를 한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고마움보다 부담이 앞섰다.




또 하나의 부탁


출장 전날, 딸아이가 말했다. "아빠, 카피바라 인형 꼭 사 와야 해!" 딸의 기대는 컸지만, 정작 남경에 도착한 뒤 시간이 없었다. 일에 쫓기다 보니 인형을 살 틈이 없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분이 말했다. "제가 대신 주문해 드릴까요?" 순간 멈칫했다. 부탁을 하고 싶었지만, 돈을 드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금도 없고, 계좌 이체도 복잡했다. 결국 정중히 사양했다.


그분은 다시 말했다. "그냥 선물로 해드릴게요. 별로 안 비싸요. 나중에 기회 되면 밥 한 번 사주세요."


또다시 나는 머뭇거렸다. 이번엔 진짜 부담스러웠다. 작은 선물이라고는 했지만, 나는 받은 것이 두 개였다. 텀블러와 인형. 그 무게가 마음에 쌓였다.




아내의 말


그날 밤,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다. 아내는 조용히 듣더니 말했다. "그분은 아마 자기에게 부담되지 않는 만큼의 선의를 보인 거야. 그 마음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게 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풀렸다. 나는 그동안 "받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계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주는 것"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는데, 나는 그 진심을 의심처럼 여겼다.


받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믿어야 한다. 상대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내가 그 마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가까워진다.




작지만 오래 남는 마음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지만, 그분은 마음을 준비했다. 선물을 고르고, 색을 물어보고, 미소와 함께 건넸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다음에 나는 그분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그때처럼 부담스럽지 않게, 그저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작고 조용한 선의 하나를.


선물은 물건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말. 그 말이 이번 출장에서 참 실감 났다. 받은 것보다 더 오래 남는 건, 받는 순간의 감정이었다.


나는 다음에 잊지 않고 건네기로 했다. 고마움을, 마음을, 따뜻함을.

받는다는 건, 마음을 믿는다는 것. 그게 선물을 주는 사람에게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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