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분주했다. 아내와 나는 나름의 단정함을 장착하고 초등학교로 향했다. 이유는 단 하나, 참관수업 날이었다.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어깨에 얹히는 날, 아이들의 일상을 공식적으로 엿보는 날.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삼 분, 초품아의 진가를 실감한다.
나는 아들의 체육수업이 열리는 운동장으로, 아내는 딸의 교실로 향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해는 그 틈을 비집고 내려와 사정없이 우리를 데웠다. 운동장은 모래판, 그늘은 교단 하나, 의자는 없었다. 몇몇 학부모들이 조용히, 묵묵히 서 있었다. 나도 그들 사이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이럴 땐 말보다 눈치가 힘이다.
아들은 반 친구들과 발야구 수업 중이었다. 룰이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지켜지는 건 거의 없었다. 공이 하늘로 뜨고, 잡혔는데도 아이들은 여전히 베이스를 향해 달렸다. 전진밖에 모르는 아이들. 순간 그들이 외치는 듯했다. “인생에 후진은 없어요!” 아이들이란 참 묘하다. 세상의 복잡한 언어 없이도 본질을 꿰뚫는다. 뛰고, 웃고, 지고, 또 다시 일어나는 모습에서 그들의 철학을 엿본다.
그러던 중, 한 여자아이가 공을 차다 그만 넘어졌다. 아이들은 일제히 그 아이에게 달려갔다. 누구는 괜찮냐고 묻고, 누구는 흙을 털어주고, 또 다른 누구는 그냥 걱정 어린 눈빛으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 아이가 다쳤을 때, 다른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장면은 묘하게 울컥하게 만들었다. 아직 순수하구나.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 속에서 아들을 찾지 못했다. 시선을 돌리니, 멀찍이 서 있는 아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들이다. ‘왜 안 갔지?’ 작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답은 저녁에 들을 수 있었다.
“아들, 오늘 발야구 잘하더라. 근데, 친구가 넘어졌을 때 너는 안 가던데?”
“응. 다 몰려가서 들어갈 틈이 없었어.”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공감도, 타이밍이구나. 아이의 말은 어설펐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그래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다음엔 조금 늦어도 괜찮아. 친구가 다치면, 그냥 다가가서 괜찮냐고 물어봐줘.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니까.”
아들은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공감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아이에게만큼은 그 능력을 가르쳐주고 싶다. 사람은 함께 아파하고 함께 웃을 줄 알아야 한다고. 그게 살아가는 힘이 된다고. 아들이 그런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그렇게 잘 커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