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이른 새벽. 10km 러닝만 하겠다고 나선 발걸음이 18km가 되어 돌아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앞을 달리던 러닝 크루의 깔끔한 단체복 때문이었다. 마치 국가대표 팀처럼 멋진 모습에 괜한 승부욕이 솟구쳤다. 쓸데없는 경쟁심이 아침 체력을 다 써버리게 만든 셈이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양평에 볼일을 보러 가고, 아들은 친구들과 PC방에 가 있다. 매일 느려터진 컴퓨터로 게임을 하던 녀석인데, 오늘 최신 사양의 신문물을 경험하고 돌아오면 ‘게이밍 PC’ 이야기를 얼마나 할까. 벌써부터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집엔 딸과 나, 둘만 남았다.
솔직히, 딸이 엄마를 따라갔다면 완벽한 토요일이었을 텐데, 아쉽다.
“아빠, 자전거 타러 나가자!”
“딸, 지금 나가면 더워서 죽을지도 몰라. 진짜로.”
아침에 뛴 이유도, 바로 그 무더위 때문이었다. 그런데 딸은 아무 근거 없는 자신감을 발산한다.
“아빠! 안 죽어~”
우린 결국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땀이 비 오듯 쏟아져 우리는 바로 돌아왔다. 그렇게 집에서 라면으로 허기를 달랬다. 딸은 짜장범벅, 나는 신라면. 짜장범벅 국물이 왜 이리 많냐며 투덜대는 딸을 위해 국물까지 내가 처리했다.
신라면을 허겁지겁 먹고, “아 배부르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때, 딸이 한마디 툭 던졌다.
“아빠는 진짜 이상하다. 맨날 배부르다면서 또 과자 먹잖아.”
정확한 지적이었다. 난 항상 배부르다고 말하고도 뭔가를 집어먹는다. 심지어 5년째 다이어트를 진행 중인데 살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나는 늘 착각 속에 사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어른이 이렇게 힘든 건가요』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자신이 실제로 운동한 것보다 두 배 더 많은 칼로리를 소모했다고 착각하고, 반대로 자신이 실제로 먹은 것보다 절반 수준만 섭취했다고 착각한다.”
그 문장을 읽었을 땐 웃으며 넘겼다. 그런데 오늘 딸의 말 앞에서는 웃음이 안 나왔다. 그동안 나이 탓하며 슬쩍 피해왔던 진실이 딸의 뼈 때리는 한마디에 와장창 무너졌다. 아이다운 솔직함이 때로는 세상 누구보다 정확하다.
고맙다, 딸.
오늘 저녁은 고기다.
조금만 먹는 거다.
물론, 배부르다 해놓고 또 먹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