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샴푸를 들고 서 있었다. “며칠 전에 꺼낸 거 맞지? 왜 벌써 바닥이 보여?”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하루에 두세 번 감아서 그런가..” 아내는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말없이 방을 나갔다. 그 정적은 익숙했다. 고요는 언제나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 6km를 뛰고 샤워를 하고 있었다. 샤워 커튼이 갑자기 열리더니 아내의 얼굴이 나타났다. “샴푸 얼마나 써?” 나는 평소처럼 듬뿍 짜서 보여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 정도는 써야 씻었다는 기분이 든다.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러니까 샴푸가 빨리 닳지. 나보다 더 많이 쓰네.” 나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하잖아.” 정확히 말하자면 얼굴, 몸, 발까지. 언젠가는 양치도 되는 샴푸가 나왔으면 좋겠다.
아내는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비누 써.” 그리고 정말로, 새 비누 하나를 내 손에 쥐여줬다. 그날 이후, 나는 샴푸 금지령을 선고받았다. 욕실 선반 위, 아내와 아이들의 샴푸는 그대로였고, 내 자리엔 하얀 비누 하나만 남았다.
나는 방을 나갈 때마다 불을 끈다. 거실에 잠깐 나가도 끈다. 습관이자 철학이다. “불 좀 끄고 다녀.” 아이들과 아내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아내는 말한다. “전기세 얼마나 한다고 그래. 자꾸 껐다 켰다 하면 더 나간대.” 여전히 우리는 불 끄기를 두고 가끔 논쟁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젠 자동으로 끈다. 잔소리의 결과물이다.
내 절약 방식 중 또 하나는 ‘휴지 한 칸 철학’이다. 누가 휴지를 달라고 하면 딱 한 칸만 준다. “아빠, 이걸로 어떻게 닦아?” “일단 해 봐. 된다니까.” 억지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해 보면 된다. 그게 ‘한 칸의 힘’이다. 아내는 또 말한다. “휴지 그거 얼마나 한다고…” 나는 아이들에게 묻는다.
“휴지는 뭐로 만들지?”
“나무.”
“그럼 낭비하면 어떻게 될까?”
“나무가 사라져.”
“그럼 지구는?”
“아파.”
딸아이는 진지하게 대답하고, 머리가 조금 더 큰 아들은 능청스럽게 말한다.
“아프니까 지구지.”
아내도 절약형 인간이다. 종량제 봉투 하나에 10리터짜리라 적혀 있어도, 20리터는 들어간다. 입구는 늘 찢어질 듯 팽팽하고, 테이프를 감아가며 마무리한다. 일회용 물티슈를 빨아 다시 쓰는 것도 아내의 절약 방식이다. 우리는 절약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 다른 철학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는 불을 끄고, 한 칸을 지키고, 비누로 머리를 감는다. 아내는 봉투를 채우고, 물티슈를 살린다.
절약은 돈을 아끼는 일이 아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 철학은 샴푸 한 통, 불 하나, 휴지 한 칸에 담긴다. 아내는 그걸 고집이라 하고, 나는 그것이야말로 지구를 위한 작은 약속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작은 약속들이 모여, 우리 가족의 일상이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