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친구와 함께 집으로 들어섰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오늘은 딸과 가까워 보이는 친구 한 명이다. 문 앞에서 나를 보며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우리 집의 구조는 조금 특별하다. 거실에서 바라보는 첫 번째 방 안으로 들어가면 미닫이 문을 통해 다시 다른 방으로 연결된다. 문이라기보다 가림막 정도의 역할을 하는 이 미닫이는 늘 열려 있어 소리가 잘 통한다. 덕분에 아이들이 작게 속삭이는 이야기까지도 거실에 앉아 있다 보면 또렷하게 들려온다.
"그거 내 허락 없이는 만지면 안 돼!" 딸의 목소리에는 특유의 단호함이 있었다. 아이의 친구가 무언가를 만진 모양이었다.
조금 뒤에 다시 친구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 방으로 들어가도 돼?" "아니, 안 돼!"
딸의 짧고 단호한 말에 괜히 내 마음이 움찔했다. 나는 물건에 대해 별로 민감하지 않은 편이다.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오면 냉장고부터 옷장까지 마음대로 뒤지곤 했는데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니 딸의 그 섬세하고도 강한 영역표시에 쉽게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딸과 친구의 모습이 궁금해져 슬쩍 몸을 숙여 방 안을 바라봤다. 틈새로 보이는 딸의 방은 참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딸의 영역은 분명했고, 딸이 만든 그 질서가 흐트러지는 것이 싫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생긴다. 혹시 친구가 서운한 마음을 갖지는 않을까. 그 사소한 서운함이 두 아이의 우정 사이에 작은 금이 가지는 않을까 하는, 사소하지만 자꾸만 드는 걱정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아내에게 하면 뻔히 돌아올 답이 있다. "애들은 자기들끼리 해결하게 둬요. 별 걱정을 다 하네." 사실 맞는 말이다. 어쩌면 나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가득 찬 아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빠의 마음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딸이 조금 더 편안하고 여유롭게,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부드럽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오늘도 내 안에 조용히 머문다.
나는 미닫이 틈으로 흘러나오는 아이들의 작고 밝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살짝 미소 지었다. 딸이 앞으로도 친구들과 자주 이 집을 찾아주기를, 그 따뜻한 순간들을 많이 만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