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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Jun 30. 2018

익숙해질 수 없는 것

어느 스무살의 이야기

# 본 글은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김상혁(20, 가명) 씨는 1999년 5월 21일, 인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현재 경희대학교 대학생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것이 있다. "20살... 인터뷰하고 싶다!" 갓 성인이 된 이들의 세상을 마주하는 방법과 바라보는 관점이 궁금했다. 명확한 표적을 가지고 있던 내게 같은 교양수업을 듣는 한 1학년 학생이 눈에 띄었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친구였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대뜸 다가가 인터뷰를 부탁했다. 


여느 때보다 활기찬 대화가 될 것 같았다. 나는 평소 해왔던 질문을 했다.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그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어머니는 인천에서 미용사 일을 하고 계시고, 아버지는 제가 어릴 때 돌아가셨어요."


덤덤했던 그의 어투와는 상반되게 나는 곧바로 찬 커피를 들이켰다.

그는 그 모습을 봤는지 곧바로 말을 이었다. 


"벌써 10년이나 되어서 아무렇지 않아요. 괜찮아요."



그는 아버지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주말이면 동네 공원에 나가 함께 공을 찼던 기억과 여름 때면 항상 갔던 계곡. 


하지만 그의 아버지에 대한 즐거운 회상은 늘 1분을 채우지 못한다.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을 당시 그는 초등학생이었다. 추억을 나눌 시간이 부족했고, 추억들을 온전히 기억하기에도 어렸다. 





# 위로를 해야 하는 것은


문득 수없이 많았을, 반복됐을 질문에 대답을 했을 그가, 그 과정 속에서 무뎌졌을 그가 안쓰러웠다.  


대다수 동년배와는 다소 다른 대변 이후의 행동은 항상 일관됐다. 흔히 말하는 갑분싸하는 분위기를 책임져야 하는 건 그였다. "괜찮다"는 말을 해야 했고, 분위기를 풀어야 했다. 위로를 받았어야 할 그는 오히려 분위기를 위로했어만 했다. 



다른 누군가에게 아버지에 대한 슬픔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는 괜찮음의 탈을 쓴 것은 아닐까?


혹여나 슬픔을 나눠 볼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이야기를 대수롭게 넘기질 못했다.


놀랍게도 그는 다른 누군가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는 어머니와도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구도 시작해본 적 없지만 마치 암묵적으로 금기시되어 온 것 같았다고 했다.


Starry Night over the Rhone, Vincent van Gogh, 1888


그는 분명히 자라면서 아버지의 빈자리는 크게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어머니의 사랑은 컸다. 그러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그는 하나하나 기억을 곱씹었고, 어쩌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만은 애써 못 본 척하며 억눌러온 것 같다고 말했다. 




# 익숙해질 수 없는 것


사실 그는 순간순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휩싸일 때가 있었다. 그런 순간들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수업시간이었다. '사랑은 영원한가'란 주제로 자유롭게 의견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많은 친구들이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과의 시작과 끝, 그리고 과정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 학생은 자신이 생각하는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했다.


"저는 사랑이 연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영원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도 한 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대부분의 학생들과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을 막아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상혁 씨는 강의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빵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였다. 일이 고됐는지 지친 기색이 역력한 아저씨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더니 그 아저씨는 그에게 물었다.


"요즘 애들은 어떤 빵을 좋아해요?"




아버지의 죽음에 익숙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는 울음은 갑작스레 찾아왔고, 그는 매 순간,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한 채 눈물샘이 마를 때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곤 다시 그 순간을 부정하듯 묻어버렸다. 

 



그와의 만남은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나는 혹시나 누군가의 감정을 억압하는 일부 이지는 않았는가.

또 나는 끄집어내야 할 것을 억누르며 속에서 썩어가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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