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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Sep 09. 2018

꿈에 대한 미숙한 고민

꿈이 꼭 직업이어야 하나요?

# 본 글은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1993년 7월 24일에 태어난 최미선(26, 가명) 씨는 현재 서울대학교 대학원생이다. 그는 도시지역학을 공부하고 있다.
"재밌게도 신흥 성장국의 사례를 봤을 때는 독재가 다 있어. 그래서 너무 슬퍼. 그 과정에서 죽어나간 사람들, 그게 필연적인가?" 요즘 그의 머리를 자꾸만 떠도는 궁금증이다.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를 위해 멋들어진 정책을 하나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그의 바람이다. 그런 그는 한국을 비롯해 선진국 반열에 오른 국가들의 역사를 한참 들추고 있는 중이다. 



# 꿈이 꼭 직업이어야 하나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위해 정책을 만드는 것이 바람이라는 미선 씨의 말을 들었을 때, 필자는 그럼 연구원이 꿈이냐는 질문을 했다. 그의 대답은 'NO'였다.


미선 씨는 꿈이 꼭 직업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꿈을 물었을 때, 얻은 답은 꽤나 추상적이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꿈인 직업을 꿈을 위한 과정으로 보았다.


"직업?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데, 계속 살아봐야 알 것 같아. 이제 조금씩 시작해보고 있을 뿐... 아마 평생을 못 찾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의 말을 들으며, 하긴 정말 꿈이 꼭 직업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히려 직업으로 꿈을 정의하는 게 우리의 가능성을 가두는 것이 아닐까?  장래희망, 꿈의 란에 늘 직업을 적어오던 나의 진짜 꿈은 무엇일까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언젠가 TV 쇼에서 한 스무 살 청년이 사회자에게 고민을 이야기하던 것이 생각난다. 그 청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청년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자신을 '죄인'에 비유했다.


우리 사회는 꿈을 가질 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회는 꿈을 가질 기회도, 방법도 딱히 알려주지 않는다. 사회는 대게 숫자로 모든 것을 판가름하며, 그 울타리에 우리를 가둔다. 


'공부 잘하면 나중에 네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어'

중고등학교. 성적과 등수란 숫자가 학생을 대변하는 모든 것이 되어버린다. 나란히 줄지어진 대학들 중 상위권에 들어가는 것이 꿈이 되어버린다.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간들 새롭지 않다. 대학 순위에 자신의 성적순위를 빗댄 결과는 낯선 학과와의 마주침일 뿐이다. 낯선 배움 속에서 확신을 얻는 방법과, 다른 새로운 것을 찾는 방법을 모른 채 '취준생'이란 타이틀이 붙어버린다. 그땐 이미 선택지는 많지 않다. 뜬금없이 공무원을 준비한다던가. 돈을 벌기 위해 취업시장에 뛰어든다. 다시 연봉, 근무 일수 등의 숫자가 기준이 되어 버린다. 




# '그' 역시도 그랬다.

최미선(26, 가명) 씨는 경상북도 청도 출신이다. "물 맑고 공기 좋고 인심 좋은 청도"가 본인의 고향에 대한 미선 씨의 설명이다. 하지만, 청도에서 사는 동안 그의 목표는 '서울로 가기'였다. 책이든 TV든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모두 '서울 이야기' 였기 때문이다. 어린 그에게 서울은 성공의 의미로 다가왔나보다.


고등학교 3학년 당시, 미선 씨의 대입 원서에는 서울 소재 대학교뿐이 없었다. "서울 떨어지면 재수해야지"라는 마음가짐이었다. 학과는 상관이 없었다. 서울이어야만 했다.


그는 소망하던 대로 서울 소재 대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그러나 그의 학과인 '주거환경학과'는 바랐던 바가 아니었다. 미선 씨는 개의치 않았다. 꿈을 이뤘으니까.


꿈을 이룬 미선 씨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면 부산, 전주 친구와 서울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축제도 남부럽지 않게 즐겼고, 선배 동기들과 술 마시는 것이 즐거웠다. 성취감에 도취된 채 대학교 1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2학년이 되자, 그는 조급함에 빠지기 시작했다. 1년이란 시간 동안 그가 얻은 것은 '보통을 웃도는 학점'외에 다른 무엇도 없었다. "너 지금처럼 계속 가면 백수 돼"라며 헤어지자는 남자 친구의 몫은 괘씸하지만 한 몫했다.




By Edvard Munch (1863-1944)




# 그는 어떻게 꿈을 찾았을까?


1) 아이스크림 쇼케이스 뒤지듯, 내가 '즐거워하는 순간'을 찾자.

미선 씨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이었다. 내가 즐거워하는 순간은 언제인가를 말이다. 적어왔던 일기도 다시 봤다. 무심하게 지나쳤을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의 키워드를 하나둘 뽑아봤다. 


특히 눈에 띄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스스로도 인정할 만큼 흥청망청 놀았던 1학년 때에도, 꾸준히 했던 것이었다. 바로 '봉사'였다. 그 전에도 쭉 그래 왔다. 봉사활동은 미선 씨의 어린 시절과 늘 함께 있던, 그런 것이었다.  


미선 씨는 '봉사'라는 키워드를 과거에서 되짚어내자마자 무작정 베트남 단기 봉사단에 지원했다. 조금의 확신이라도 얻기 위함이었다. 베트남에서 짧은 봉사활동 시간을 가지며 느낀 것은 단순했다. "나는 누군가를 도울 때 즐겁구나" 단순한 한 문장이지만, 미선 씨를 이끌기 충분했다. 미선 씨는 그렇게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란 꿈을 좇게 됐다.


미선 씨가 과거를 되돌아보고, 조금의 가능성에 무작정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며꿈은 아이스크림 쇼케이스 뒤지듯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살 때, '혹시나'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있을까 싶어, 바닥까지 뒤져보곤 한다. 바닥까지 가본 들, 간절히 찾던 아이스크림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바닥까지 가보지 않은 채 그저 보이는 것들 중 집지 않는다. 꿈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 오히려 더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꿈을 확인하기 위해 바닥까지 가야 하는 건 온전히 '우리' 몫이라는 점은 안타깝다.


그리고 미선 씨의 꿈에 대한 인식도 도드라졌다. 보통 우리는 막연하게 '직업'이란 틀 속에서 꿈을 찾는다. 하지만 미선 씨는 자신의 '즐거운 순간'을 고민했고, 다소 우리가 보기엔 추상적인 꿈을 찾았다. 하지만 그의 꿈은 추상적이지만 확실했다. 어떤 직업이 내포한 불투명한 사명감보다야 훨씬 투명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꿈은 미선 씨를 인간다워 보이도록 했다.




2)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즐거운 순간'을 확인한 이후의 단계는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었다. 꿈을 향해 거칠 과정(직업)을 찾는 일, 미선 씨는 이 과정을 나름의 '타협'으로 정의했다. 꿈을 찾는 것에 비해서 덜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인 자신의 꿈이 자전거라면, 그 과정인 '직업'은 페달을 밟는 일로 봤다. 자전거(꿈)는 존재로서 완벽하지만, 페달을 밟지 않으면(직업을 통해 노력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이번엔 몽골로 떠났다. 봉사단에서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교육봉사를 담당한 미선 씨는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것은 같이 온 전문가들과 비전문가인 자신의 차이였다.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앞섰지만 교육전문가들의 효율성을 따라갈 수 없었다. 미선 씨는 자신만의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도울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미선 씨의 뇌리를 스친 것은 전공으로 배우고 있던 '주거환경'이었다. 주거는 인간의 기본 생활이기에 이를 깊게 공부하면, 사람들에게 전문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는 긴 시간을 돌아 대학에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성적에 맞춰 대학에 들어왔을 때와는 달랐다. 같은 전공과목이지만 그것은 꿈의 일부가 돼있었다. 



다시 방송으로 돌아가 보자. 죄인에 비유했던 20살 청년의 물음에, 사회자는 "직업이 있든 없든 자기가 앞으로 뭘 할지 모르겠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라고 청중에게 말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손을 들어 올렸다. 

사회자 또한 자신의 손을 들으며 "지금 진행을 하고 있는 저도 앞으로 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했다. 

그렇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고, 거기에 사는 인간 또한 단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삶의 가치와 방향을 하나의 직업에 단정하는 것은 우리를  '불확실'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란 꿈을 가진 최미선 씨는 미래에 대해 조금은 더 확신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약 미선 씨가 방송 녹화 현장에 있었다면 손을 안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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