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중정(中庭)

10년 전 아파트 리모델링 이야기

by 동네소년

*위에 보이는 벽은 서울역 옆에 있던 창고를 허물면서 나온 고재를 사용해 조심스레 쌓아 올린 것입니다.



내 스타일로 꾸민 집은?



사람들은 이사하면서 새로 들어가 살 집을 꾸밉니다.

'한옥 스타일', '북유럽 스타일', '젠 스타일', '그냥 내 스타일'

저마다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습니다.


도배, 장판 정도에서 그치기도 하지만,

천장을 뜯어내고 벽을 허물기도 하며, 마감재를 공들여 선택하기도 합니다.


거주자가 쉬는 공간으로써 집은 편안하고 본인 취향에 맞게 가꾸고 싶은 건

모두에게 통하는 진리인 것도 같습니다.



'과감함'과 '디테일'은 최고의 스타일~




예전에 현대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 작품전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의 놀라움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노후에 아내와 살았던 4평짜리 작은 오두막 카바농(Cabanon)은 ‘4평(13제곱미터)의 기적’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몸에 꼭 맞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군더더기 없음이 주는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저처럼 지금이라도 덩치 큰 아파트를 벗어날 수 있다는 꿈을 꾸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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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Google



공간 스타일이 과감하다는 것은 필요 이상 크지 않고 파격적?으로 적당하다는 것도 포함시켜야 합니다.

‘카바농’처럼 극단적으로 공간이 작아지면, 그 공간에 담기는 것들도 함께 담백해져야 합니다. 꼭 필요한 의자, 필요 이상 크지 않은 테이블, 정형화된 모양에서 벗어나 좁은 공간을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도록 가구의 디자인도 달라집니다.


가구 하나에도 둘 이상의 역할이 주어집니다. 스툴 Stool(등받이가 없는 작은 의자)이기도 했다가 작은 테이블이어야 합니다. 환기를 고려해 크고 작은 창문이 달리고, 고밀도의 수납이 가능하도록 활용도가 낮은 공간(데드 스페이스)은 최소화됩니다.



공간은 이렇게 '생략'되고 '중첩'될 때 비로소 '친 인간적'으로 바뀌죠.

'르 크로뷔지에' 선생님을 통해 저는 배웁니다.

"아! 스타일은 ‘과감함’과 ‘디테일’로 완성되는구나!"



그냥 새것 말고



처음엔 골동품이나 고재 같은 걸 수집해 팔다가 나중엔 오래된 전통한옥을 해체하고 옮겨 다시 짓는 일까지 하게 되신 분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두보>라는 고재 숍을 운영하는 분이었습니다.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면 약간은 쾌쾌한 나무 냄새가 풍기는 공간이었죠. 쓰면 쓸수록 멋스러워지는 유럽의 '앤티크'처럼, 오랜 세월 비바람을 이겨내고 수십 년의 손길을 거쳐, 비로소 쉽게 변하지 않는 '단단한 멋스러움'을 아는 분이었습니다.



어느 식구 많은 집 부엌에서 한 가족의 식기를 보관하던 '찬장'입니다. <두보>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2~3번의 화재로 장소를 옮겨 다시 문을 열 때마다 찾아가 이야기도 나누고 맘에 드는 고재가구도 하나 둘 과하지 않게 모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두보> 이재경 사장님은 자연스럽게 저희 집의 공간 디자이너가 되셨습니다.


살면서 여유가 생길 때마다 고재 가구로 공간을 채워나가기 시작했고, 지금 살고 있는 '오송'으로 이사 오면서는 아파트 부분 리모델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은 가구 하나부터 공간 연출까지 한 분의 손길을 거쳐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희 부부의 취향과 결을 같이 할 수 있는 디자이너를 찾았다는 건 '복'입니다.


저희 집 가구 이야기는 이어지는 <공간을 쓰다> 매거진에서 차차 풀어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주인공 '중정(中庭)'을 소개할게요.



지금 살고 있는 ‘오송’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자연스럽게 부분 리모델링을 계획했습니다. 미분양 아파트를 구매해 이사 오는 상황이었기에 베란다 확장이나 천장 붙박이 에어컨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에어컨은 신혼 때부터 쓰던 스탠드형을 계속 사용하기로 했고, 대신 지나치게 심심한 마감재를 일부 바꾸는 것에 아내와 생각을 함께 했습니다.


아내는 부엌을, 저는 중문(아파트 현관을 지나 맞이하는 단열용 문)과 중간 베란다(지금의 중정 中庭)를 손보기로 하고 생각을 하나하나 모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20년 된 아파트를 리모델링 해 본 경험이 있어 그 당시 구현해 보지 못한 아이디어들과 새로 이사 갈 집의 구조를 생각해 가며 어렵지 않게 '우리 집 스타일'의 체계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상부장을 떼어내고 바닥용 회색 타일을 시공했더니 때도 잘 안타고 스타일리쉬한 주방이 되었습니다.



'부엌'은 오히려 간단했습니다. 답답해 보이는 상부장을 철거하고 시멘트 같기도 하고 대리석 같기도 한 느낌의 바닥용 타일을 벽에 붙여 나름 시크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문제는 아파트 중간에 세로로 들어온 특이한 구조의 베란다였습니다. 대부분 이 공간으로 확장해 거실을 넓게 쓰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죠.



사진출처: 부동산114_붉은색 원으로 표시된 중간 베란다는 리모델링 이후 '중정'으로 모습을 바꿉니다.



오송으로 이사올 즈음 저는 산악자전거를 즐겨 탔습니다. 자전거로 인근 야산 라이딩을 다녀오면 자전거에 묻은 흙을 씻어 내는 게 늘 고민이었습니다. 집 안에 보관해야 하는 자전거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은 가족들로부터 오는 민원을 줄이는 필수 사항이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확장 안된 중간 베란다가 있다는 것은 마침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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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최애 자전거 'Yeti'가 현관에서 울고 있네요. 날 풀리면 함께 자주 나가야겠습니다.



10년을 살면서 '중정 中庭'은 그때의 제 바람대로 자전거 물청소나 어린 딸아이 '해먹 Hammock'을 거는 공간으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고, 소중한 '포토제닉 핫스폿'이 되어 주었습니다. 잠시 방심한 탓일까요? 지금은 애매한 공간이 되어 버렸네요. 다가오는 봄, 다시 정리해서 가족들이 자주 찾는 '중정 中庭'으로 돌아가려고 계획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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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는 쓰는 데서 나온다. ㅎㅎ



서울역 창고가 헐린대요!



서울역 옆 창고 건물이 헐린다는 소식을 들은 <두보> 이재경 사장님은 서둘러 서울로 향했고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적벽돌 상당량을 확보하셨답니다. 지금의 적벽돌보다 더 크고 무거운 서울역 고재 적벽돌은 세월의 부대낌을 통해 더 무겁고 단단해져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멋졌으니까요.



고재 적벽돌이 덧입혀질 뒷면은 단단한 옹벽이었습니다. 아파트의 구조적 안정감을 담보하는 기둥 역할을 하는 벽이었죠. 기존에 시공된 타일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적벽돌을 넘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쌓아 올렸습니다. 무게가 상당했기에 조심스러운 작업이었습니다. 공간이 20cm 정도 좁아지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멋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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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적돌 벽채 앞에 접이식 선반을 달아 책이나 액자 등을 놓을 수 있게 해 '쓸모'를 높였습니다.



묵직한 고재 적벽돌 벽이 세워지고 벽돌 사이를 어떤 색으로 마감해야 하나 결정해야 했습니다. <두보> 이재경 사장님은 하얀색으로 카페 같은 분위기를 낼 수도 있고, 어두운 회색으로 적벽돌의 묵직함을 돋보이게 할 수 있다고 하시며 고르라고 하시더군요. 저희 부부는 '묵직함'을 선택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중정 中庭' 공간을 거실 쪽에서 바라보면, 실내에서 또 다른 건물의 외벽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특이한 취향일 수 있지만, 10년째 질리지 않는 공간으로 저희 집의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있는 '중정 中庭'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할 수 있어 반갑고 뿌듯합니다.



'오래된 생각'은 '고재'와 닮았습니다.



'고재'의 매력은 자꾸 새로운 '쓸모'를 찾아간다는 것일 겁니다. 문득 생각이 '올드 Old'하다는 말을 떠올립니다. '오래된 생각'은 '고재'와 닮았습니다. 새로운 쓰임을 못 찾으면 그냥 '올드 Old'해지는 것이죠. '오래된 생각', '그때는 빛을 못 본 생각'이라도 잘 간직하고 들여다보고 있으면 '귀인'을 만나 새롭게 다시 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롭다는 건 새롭다는 것이죠!



* 앞으로 <공간을 쓰다>를 통해, 저희 집 인테리어 이야기, 가구 이야기를 2 ~ 3편 이어갈 생각입니다. 저와 스타일일 비슷하시다면 재미있는 공감의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 주말작가 씀 -




#시도하지_않으면_확률은_0% 이다

#나만의_이유를_찾아서

#나만의_가치를_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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