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많은 저희 집 가구들을 소개합니다.
저희 집에는 나무가 많습니다.
화분으로 키우는 나무는 실내에서 사람 키보다 크면 안 좋다는 통념을 보란 듯이 깨고 무럭무럭 잘도 자랍니다. 한국의 집이 대부분 그렇듯이 남향의 큰 거실 창이 나무의 9할을 키웁니다. 가끔 주는 물 보충은 거들뿐이죠.
그리고, 나무로 만든 가구가 많습니다. 요즘 가구는 집성목 등을 깔끔한 마감재로 덮어 사무용 가구처럼 잘 만들어 내지만, 저희 집에는 뒤틀리고 이가 안 맞는 오래된 나무들로 만들어진 허름하지만 단단한 나무가구가 많습니다.
매끈하게 잘 빠진 목재 가구를 들일 수도 있지만, 취향 탓인지 이사할 때마다 집안의 온도와 습도따라 모양을 바꾸는 오래된 나무로 만든 가구가 제 마음을 더 끕니다.
지금부터 하나하나 소개해 드릴게요
먼저, 쓰러져 가는 어느 한옥집 부엌문의 기둥이었다가
키 낮은 거실 테이블이 된 사연입니다.
어느 식솔 많은 집 찬장이었다가
거실 수납장이 된 사연도 있습니다.
폐교된 어느 산골 오지 시골 초등학교가 헐리면서
유산처럼 남겨준 파라핀 머금은 복도 마루가 안방 베란다 바닥이 되어 햇살을 반사하기도 하고,
허무러 질 듯 아슬아슬하게 견뎌 온 한옥이 해체되면서 뱉어낸
단단한 나무 조각을 모아, 누군가의 고관절을 챙겨줄 작은 스툴 Stool이 된 사연도 있습니다.
어느 시골 한약방에서 감초나 당귀 같은 한약재를 담아 보관하던 약장이
한약 냄새를 걷어내고 칠을 다시 해 어느 집 수납장이 된 사연을 들어본다면,
지금부터는 오래된 나무 조각이나 허름한 목재가 허투루 보이지 않으실 겁니다.
시골학교 개구쟁이 꼬마의 몸부림을 이겨낸 작은 걸상(의자)이
연애시절 수줍은 사랑의 고백을 담은 화분받침으로 바뀐 사연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연 있는 가구가 또 다른 사연을 담기까지 나무는 비틀리고 깎여 나가고 때가 묻지만, 더 깊어지고 더 단단해지고 더 자연스러운 가구로 몸값을 조금씩 올립니다.
얼마면 되겠니?
이런 가구는 얼마면 살 수 있을까? 따로 책정된 가격은 없습니다. 그날 그날 <부도> 이재경 사장님의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야 할까요?
‘바가지’ 쓰면 어쩌나?
그런 걱정은 가구가 거래되는 과정을 알게 되면 부질없다는 걸 알게 되실 겁니다. 제 경험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몇 차례 <두보>를 방문하면서 마음에 들어온 고재 가구를 두고 들었다 놨다를 반복합니다. 가격이 고민도 되지만, 우리 집에 꼭 필요한가? 몇 번을 생각해 보는 거죠. 그렇게 <두보>를 들락날락하는 사이, 제가 찜한 가구는 몸값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저와 ‘밀당’을 합니다. 정해진 가격은 없습니다. 이재경 사장님이 고재를 찾기까지의 수고로움에, 리폼의 과정이 있었다면 공임이 더 얹어지겠죠. 거기에 약간의 시세가 반영되는 것 같습니다.
가구 바꿔 주세요!
<두보>에서 가구를 살 때 특이한 점은 이전에 이곳에서 산 가구를 돌려주고 다른 가구로 교환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금액이 넘치면 그만큼 돈을 더 내거나, 남는 금액은 다른 고재 소품으로 가져오면 됩니다. 나중에 이사를 하거나 해서 집에 가구가 안 맞으면 다른 가구로 교환하면 그만입니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니 ‘바가지’ 같은 건 있을 수가 없는 것이죠.
I LOVE '창살'
오래전부터 집안에 들이고 싶은 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 전통의 수수한 문살에 창호지가 발린 눈높이 정도의 접이식 파티션이죠. 휑한 공간을 이 녀석만 잘 활용하면 다양한 공간으로 변신시킬 수 있습니다. 없으면 모르지만 있으면 그 진가를 알게 되는 기특한 가구입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 같네요.
어린 시절 시골 주택에 살았던 저는 일 년에 한 번씩 아버지를 도와 안방 창호문을 새 단장해야 했습니다. 개구쟁이 아이의 극성스러운 장난으로 성할 날이 없었던 창호지 바른 문은 구멍이 숭숭 나기 일쑤였습니다. 누렇게 빛바랜 창호지가 발린 미닫이 문은 볕 좋은 가을 날을 하루 골라 마당으로 잠시 탈출합니다.
창호문을 문틀에서 떼어 내 어린 제 키보다 훨씬 큰 두 쪽의 문을 마당으로 옮깁니다. 빨간색 바가지로 한 가득 물을 담아 창호문에 흠뻑 젓도록 촤아~ 촤아~ 뿌려주면, 뻣뻣한 창호지는 견고한 문살에서 불려지며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30분 정도 밖으로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놀다 들어오면, 창호문은 잔뜩 불려져 때 밀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준비물이 필요합니다.
날이 무뎌진 과일칼로 나무 문살 위를 문지르기 시작하면, 세월의 때를 벗겨내듯 낡은 창호지가 슬금슬금 굵은 때를 토해내기 시작합니다. 일종의 쾌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오랜만에 찾은 목욕탕에서 느꼈던 시원한 쾌감! 문살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제 마당 한편 볕 좋은 곳으로 창호문을 옮깁니다.
그 사이 아버지는 마루에서 마치 재단사처럼 창호지를 문틀에 꼭 맞게 잘라내고, 창호지에 바를 풀을 준비합니다. 그 날의 기억은 문틀에서 팽팽하게 다시 젊어지는 창호문의 깨끗함과 따뜻한 가을볕으로 남아있습니다.
한 번은 꼭 쓰고 싶었던 글감이었습니다. 저는 나무 냄새와 자연스레 뒤틀리는 모양, 만질수록 짙어지는 색감, 사람과 함께 늙어가는 오래된 가구가 참 좋습니다. 이사할 때마다 부서지는 가구에는 마음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인스턴트 사랑을 주었다가 금세 거두는 냉정함이 싫었습니다. 앞으로도 고재 가구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 집니다. 또 다른 가구들이 저희 집을 드나들 때면 이렇게 '가구 입출부'를 글로 남겨볼 생각입니다.
- 주말작가 씀 -
#시도하지_않으면_확률은_0% 이다
#나만의_이유를_찾아서
#나만의_가치를_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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