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잘 살아! 볼 수는 없었다
2017년 한 해의 끝이 다가오니 조바심이 났습니다. 벌써 연말이야? 한 살 더 나이를 먹는 게 훈장처럼 여겨지는 연륜을 살고 있지만, 그만큼 곡절도 많았던 일 년이었습니다. 두 달 넘는 ‘풍찬노숙’과 딸아이와 ‘첫 여행’을 함께 하며 푹~ 정이 들어버린 ‘아이폰 7+’의 사진앨범 앱을 꾸욱 눌러 엽니다.
애정 하는 ‘아이폰 7+’가 저와 함께 2017년 올 한 해를 기록했고, 사건 현장에 함께 해왔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1월부터 차곡차곡 저장된 열두 달의 사진을 꺼내어 각 달을 대표하는 사진을 선정해 <2017 '락'어워드>를 정해보고 싶어 졌습니다. 심사위원으로는 사진이 찍힌 ‘현장의 나’와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현재의 나'가 맡아 주었고요. 제 행동이나 삶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었다면 가산점을 후하게 쳐주었습니다.
"지금부터 2017'락'어워드를 발표하겠습니다."
두구 두구 두구~
1월
자출사(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들)로 간간히 직장생활의 든든한 ‘로시난테’였던 자전거를 2년 만에 정비하고 일부 부품을 업그레이드했습니다.
쉽게 물건을 들였다가 ‘효용’을 못 찾고 처분했던 수차례의 경험을 통해, ‘쓸모 있음’의 가치를 깨달은 뒤로는 물건을 구매할 때는 꼭 3번의 ‘구매 결정 보류’ 과정을 거칩니다. 그 힘겨운 관문을 통과하고 내게 온 ‘로시난테’는 Yeti라는 이름의 자전거입니다.
운전병으로 복무하던 군생활 시절, 정비고에 걸려있던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를 떠올립니다.
매일같이 어루만지며 보살피면, 사람이나 사물이나 더 잘 알게 되는 건 당연한 이치.
12월, 다시 현관 인테리어로 든든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제 애정은 결코 식지 않을 겁니다.
2월
딸아이의 길게 기른 머리를 싹둑 단발로 잘랐습니다. 처음으로 밝은 갈색으로 염색했던 지푸라기 같은 머리카락이 한 움큼 '싹둑!' 잘려나갑니다.
장성한 아들이 군대에 간다고 머리를 깎는 것도 아닌데, 아빠 마음이 심란하네요. 아빠만 마냥 좋아하던 딸아이가 성큼 어디로 가려는 것 같습니다. 그때는 꼭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이후 아이는 사춘기의 터널 안으로 질주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삶을 응원하고, 지켜줄 각오로 아빠도 마음속으로 헤어스타일을 바꿨습니다.
3월
대통령 후보 선거 토론을 진행해 본 적은 없지만, 실제 대통령이 될 후보를 고르는 자리(민주당 당내 경선토론)였으니 많이 긴장되더군요. 긴장하는 모습은 절대 금물이죠. 팬심도 조심스러운 자리입니다. 충남북을 아우르는 당내 경선토론이라 후보 사이에, 특히 안희정 충남지사와 현. 문재인 대통령의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던 생방송 토론자리였습니다.
기억을 돌이켜 보니, 문재인 대통령(당시 민주당 당내 경선후보)은 어울려 함께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생방송 토론을 마치고 부리나케 자리를 떠나는 안희정 충남지사를 세워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습니다. 포토라인은 중앙 언론매체에서 온 카메라들로 빈틈이 없었죠.
이 사진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하나. 둘. 셋. 사진을 찍기 직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상황에 찍힌 사진입니다. 약간은 방심한 표정과 자연스러운 동작이 재미있기도 하고요. 국민 모두가 역사의 한 장면에 서 있었던 2017년이었습니다.
4월
올해는 유난히 김대웅 기자와 함께 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그 시작점은 4월에 함께 했던 한국언론재단 뉴미디어 관련 교육이었죠. 커피를 좋아하고, 성격도 조금 급하며,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면모가 저와 닮아서였을까요? 회사 흡연실에서 커피 ‘수망로스팅’을 했고요. 가능한 모든 뉴미디어교육에 함께 동행했습니다.
‘72일 MBC 파업’ 중에는 ‘마봉춘세탁소 충북점’을 에디터로 함께 운영했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일들을 함께 도모해 보고 싶은 후배입니다. ‘브로맨스’라고 핀잔을 줄지 모르겠지만, 좋은 걸 어쩝니까? ㅎㅎ
5월
딸아이와 떠난 첫 여행은 ‘사이다’ 같았죠. 톡톡 튀면서 힘들 때마다 자꾸 생각나는 ‘기억의 청량제’
아내로부터 결혼 후 처음으로 ‘솔로 여행’을 허락받아 놓고, 바쁜 일상으로 잊고 지내다가 급하게 행선지를 정해 떠났던 여행이었습니다. 딸아이는 절대 아빠 혼자 보낼 수 없다며 기어코 따라가겠다는 겁니다. 무엇이 못 미더웠던 건지, 아니면 여행가방 속 나침반처럼 늘 함께 했던 여행이 익숙했던 것인지, 그렇게 ‘부녀여행’이 난생처음 성사되었습니다.
여행 중, 제가 정말 좋아하는 아이의 ‘웃음소리’를 원 없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내년 봄, 일본 도야마 여행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온 가족이 출동할 겁니다. 그때도 절정의 사춘기 소녀의 웃음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6월
초여름 같은 늦봄의 날씨가 예사롭지 않았던 6월의 어느 날, ‘주말작가’로 첫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매주 한 편의 글을 발행해 보겠다고 야무진 포부를 담아 시작했었죠. 인생의 어떤 ‘헛헛함’ 같은 것을 채워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첫 글은 5월에 딸아이와 함께 다녀온 일본 오부세 여행 에세이였습니다.
어떤 ‘톤&매너’로 무엇을 쓸까 고민을 했죠.
운동을 좋아하니 ‘몸’, 여행을 늘 꿈꾸니 ‘여행’, 빛과 건축을 좋아하니 ‘공간’, 그리고 ‘글’, 이렇게 4개의 매거진을 만들었고, 제 인생 처음 시작하는 정기적인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제 삶의 모든 것들이 글감이 될 수 있었고요. 더 섬세한 감각으로 스스로를 살필 수 있었습니다. 올해 제 자신에게 '대견'하면서 ‘선물’ 같았던 글쓰기는 새해에도 계속 이어갈 겁니다. 필명은 물론 ‘주말작가’입니다.
7월
‘Dirty is Sexy’ ‘더러운 건 섹시하다’ ㅎㅎ
제가 ‘조기운동회’에서 운친(운동친구)들과 운동하며 하는 얘기입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목표를 향해 남은 힘을 쥐어짜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면, 어떤 의미인지 금세 아실 겁니다. 남자든 여자든 땀 흘려 운동하는 모습은 매력적입니다. 머리카락이 헝클어지면 질수록 더 예뻐 보입니다. 운동복이 흙과 땀으로 더럽혀져야 운동은 더 잘 됩니다.
2016년 여름 처음 시작했던 ‘조기운동회’(매주 토요일 아침 7시에 동네에서 만나 함께 운동을 합니다.)가 곧 3년 차가 됩니다. 날이 추워지니 자주 모여 운동하는 게 어렵기는 하지만, 여전히 가까이 사는 운친들과 즐겁게 운동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더불어 해부학과 모빌리티에 대한 관심도 생겨 공부도 하고 있지요.
새해에는 더 큰 근육이 아니라, 더 균형 잡힌 운동능력과 모빌리티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조기운동회’를 꾸려나갈 생각입니다. 관심이 생겼다면, 언제나 환영합니다. 함께 Just Move!
8월
인생을 방송에 빗대면 '생방송'이고, 영화로 생각하면 '주인공'을 떠올리겠죠. 하지만, '나' 자신이 '주인공'처럼 여겨질 때가 많지 않다는 것이 함정일 겁니다. 8월 햇살 뜨거운 어느 날, 충북선 제천행 기차를 타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구름은 육감적이었고, 하늘은 남태평양 어느 섬 같은 빛깔을 띄었던 그 날. 영화배우를 만났습니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PRESS'좌석을 못 받아, 직접 표를 구매해, 어두컴컴한 극장 안 제자리를 더듬거리며 찾아 앉았습니다. 4편의 독립영화가 옴니버스로 상영되고 막 이어지는 '관객과 제작진'의 Q&A. 상영관에 불이 켜지고 객석 구석구석에 앉아서 함께 영화를 지켜봤던 배우들이 소개를 받아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바로 옆자리에 우뚝 일어서는 남자와 여자. 조금 전 스크린 안에서 봤던 그 주연과 조연이었습니다. 인생은 참 놀라운 경험을 여울처럼 숨겨 놓나 봅니다. 잘 계시죠? 배우님들. 그 후로 영화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극장 옆자리에 앉았다는 인연만으로도 충분히 '팬'이 되었답니다.
9월
9월은 뜨거웠고, MBC의 심장도 타들어갔습니다. 9월 4일은 '72일간의 파업'의 시작이었으며, '114일의 보도 제작거부'의 첫날이었습니다. 지난 10년 가까운 시간, 바닥까지 주저앉은 MBC에 심폐소생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마이크와 카메라를 내려놓게 했습니다. 2012년 '170일 파업'의 쓴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자꾸 떠올랐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은 무사히 방송 현업으로 돌아와 엄중한 국민의 질책을 떠올리며 '공정하고 진실된 지역 언론'을 향해 다시 뚜벅뚜벅 걷고 있습니다. 10년 전과 상황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촛불'로 역사를 다시 쓴 대한민국 국민은 MBC를 더욱 냉철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압니다. 언론노동자로 살아온 17년이 '함정'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가능성'과 '리더십'으로 표현될 수 있게 많이 고민하고 행동하며 살아갈 생각입니다. 지금은 '지켜봐 달라'는 말씀밖에 드릴 수가 없네요.
10월
인생의 '시름'과 '씨름'하다가, '씨름 중계방송'과 '씨름'할 기회가 왔습니다. 선수를 소개하고, 모래판 위에서 어깨를 맞대고 팽팽하게 샅바를 움켜쥐면, 사방으로 모래가 튀고, 선수가 모래판에 뒹굴기까지 짧게는 '5초'도 안 걸립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짧은 시간, 밭다리, 들배지기, 오금당기기 3가지 기술이 거의 동시에 복합적으로 작동한다는 겁니다. "이런!", "어! 어! 어!" 하다가 "아~!"로 중계를 해버리기 일쑤였습니다.
대한민국 씨름의 원로이신 '이중근'선생님을 해설위원으로 모시고 했기에 그나마 '씨름 중계방송' 비슷한 걸 해냈던 것 같습니다. 씨름이 인생이었던 대선배님은 씨름을 통해 '인생'을 알려주신 것도 같습니다. "힘줄 때와 힘 뺄 때를 알고, 중심을 잘 잡아라" 하십니다. 일주일을 밤낮으로 '나는 씨름인이다.'를 되뇌며 살았습니다. 최대한 집중하고 몰입해야 했습니다. 몰입의 즐거움과 스트레스를 동시에 경험했던 10월입니다.
11월
"김장겸 MBC사장 해임안 가결!" 눈물 나도록 벅찼습니다. 그러고 보니 파업기간 동안 누군가의 연대사를 들으며, 동료들의 힘겨운 투쟁을 담은 영상을 보면서 눈물이 많아졌나 봅니다.
끝마치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걱정합니다. 긴 얘기를 담을 수가 없네요. 결국 '행동'으로 내놓아야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사진이 선뜻 골라지지 않네요. 이런 게 '미련'일까요?
2018년을 하루 앞두고도 고민이 깊습니다.
일 년만에 라디오 특집을 어렵게 성사시켰습니다. 구본상 아나운서 후배의 꼼꼼함이 빛을 발한 기획.
음악FM의 '정오의 희망곡'과 '가요응접실'이 이 날의 놀이터였습니다. 라디오는 TV와 다릅니다. 지역민과 만나는 접점이 다르고 방식도 호흡도 다릅니다. 진행자 입장에서 라디오는 더 친근하고 애정을 더 많이 느끼는 매체입니다. 해보면 압니다. ㅎㅎ
2018년에는 지상파 라디오 콘텐츠를 '팟캐스트'로 확장시키고, '출산율'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해 보려고 합니다. 아직까지 아이디어도 넘치고, 방송일 하는 게 재미있게 느껴지는 건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연말정산 같은 보너스
인생요가를 시작했습니다. 열한번 수업의 '인생요가 시즌1'을 끝내고, 지금은 '시즌2'.
2017년 큰 변곡점이 '파업'이었다면, 개인적으로는 '요가'였습니다. 저는 '인생요가'라고 부릅니다.
앞으로 늙어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운동이자 수련이 될 겁니다.
'박완봉' 요가마스터를 스승으로 모시고 좋은 영향을 받으면서 '요가'를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습니다.
싸움 중에 가장 힘든 싸움이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했던가요?
배움 중에 가장 얻기 어려운 배움 또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배움인 것 같습니다.
새해부터는 가족 모두가 '요가'를 시작합니다.
이른 아침 가족이 다 함께 매트를 펼치고, '수리야 나마스카라'(태양숭배) 아사나(자세)를 하게 될 날이 곧 오겠죠? 무척 기대됩니다.
ㅎㅎㅎ
[에필로그]
당연한 거였을 겁니다. 한 해를 돌아보니 ‘혼자’ 이뤄낸 것은 아무것도 없네요.
지난 6월부터 시작한 브런치 글쓰기가 반년을 넘기며, 모두 32편의 글로 발행됐습니다. 혼자 무얼 해보고 써본 글은 없습니다. 누군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니, 누군가와 무엇을 함께 해보니 결국 ‘글쓰기’로 이어졌습니다.
가능하면 일상의 가벼운 글쓰기보다는 생각을 모으고 자료를 정리해서 다양한 사진과 영상을 담아내는 '양질?'의 글쓰기가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일요일 오후 브런치 글을 발행하면, 동시에 다음 글감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글감을 찾으면, 월요일부터 글의 뼈대를 잡고, 아이디어로 살을 붙여나갔습니다. 목요일쯤이면 부드러운 살결이 입혀진 글의 모양새가 나옵니다. 일상이 바빠 잠시 놓친 글쓰기는 주말 하루를 온전히 내어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원래 규칙적인 삶을 좋아합니다. 그 속에 화려한 변주가 가능한 리듬을 담아내는 걸 더욱 좋아합니다. 그러고 보면, 2017년은 삶의 리듬이 올려진 오선지 위에서 ‘툭툭’ 튀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찾아낸 ‘또 다른 리듬’과 ‘새로운 변주법’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올 한 해 '주말작가'의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새해는 복도 많이 지어 나누고, 좋은 글도 함께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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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_이유를_찾아서
#나만의_가치를_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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