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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소년 Apr 28. 2018

살아야 하는 이유

화초가 죽어가고 있다. 화초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라



화초가 죽어가고 있다.
화초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라.



누군가의 선물로 회사 업무 책상 위에 놓은 화분은 일주일을 못 버티더군요. 실내가 건조해서라고 핑계를 찾아보지만, 그걸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집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집안 화분 관리는 아내가 도맡아 하게 된 것도 아주 자연스러웠습니다. 화초를 잘 죽이는 ‘똥 손?’을 갖고 있던 필자에겐 화초에게 회계할 기회가 오기를 늘 기다렸습니다.  



봄은 시나브로 짙은 녹색으로 물들지만, 제 손이 닿은 화분은 병색이 짙어 보입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가까운 약국을 찾아 ‘진드기 세균 방제제’를 사서 회녹색 이파리 앞뒤로 골고루 뿌려줍니다. 물이 부족했는지, 물이 너무 과했는지, 아니면 병에 걸린 건지, 정말 아니면 사랑이 고팠던 것인지, 저는 정말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한두 번도 아닌데 화분을 비울 때마다 일종의 좌절감 같은 게 들어 마음이 늘 무거웠습니다.



햇살이 눈부신 거실 창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쭈그리고 앉습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것처럼 화초에게 말을 겁니다. 이번만은 진심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기도까지 했으니 들어주었으면 합니다. “죽어가는 화초야, 네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줄게. 들어주렴.”



"너의 생명력이 우리 가족을 살린단다."
"네가 왕성하게 호흡할 때마다 정화된 공기는 우리 가족의 허파를 지켜준다는 걸 잊지 말아다오." 
"자리가 맘에 들지 않니? 햇살이 고팠구나. 너의 싱그러움은 거실에 축복이란다. 믿어다오."





어느 정도 키가 자라고 잎이 퍼진 식물이 가분수처럼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뿌리 쪽은 좁고 가지와 잎은 풍성한 모양새입니다. 화분갈이가 절실한 타이밍이었던 것이죠. 누군가의 조언으로 화분을 갈아주기 위해 조심스레 식물을 화분에서 빼낸 적이 있습니다. 큰 뿌리와 잔뿌리가 뒤엉켜 마치 한 덩어리처럼 뭉쳐 있었습니다. 공간은 집에만 필요한 건 아니라는 걸 깨닫습니다. 우리 몸에도 식물에게도 적당한 공간은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였던 겁니다.



“답답했겠구나!”



네가 채워준 공간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



콘크리트 건물은 본디 회색입니다. 그 옛날 진흙으로 지었던 초가집은 기억도 없겠죠? 요즘 대부분 그렇듯 시멘트와 벽돌로 지어지는 건물들은 무채색일 수밖에 없습니다. 건조하고 밋밋하고 삭막하며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집짓기 마무리 단계에서 어떤 ‘마감재’를 쓰느냐는 중요합니다. 눈이 편안하고 좋아하는 색을 입히고, 따뜻한 질감을 표현하는데 ‘마감재’는 말 그대로 마무리 작업에서 정말 중요합니다. 



그. 리. 고.
우리는 화초를 키웁니다. 



많은 이의 한 때 꿈처럼 마당 넓은 전원주택을 짓고 살 수 있다면 다행입니다. 농촌이 아닌 도시에 사는 우리는 대부분 한 뼘의 텃밭도 허용되지 않는 공동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화초를 키우고 정성을 담습니다.” 초록, 다홍, 아이보리, 갈색, 회녹색, 노랑... 이런 변화무쌍한 색으로 인간의 쉼터를 풍족하게 채워주는 존재, 바로 ‘화초’였습니다. 이런 생각의 끝에 죽어가는 화초를 다시 떠올립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또 생각합니다. 



-중략-

여기서 '중략'은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설득할 수 없음에 대한 변명입니다. 





살아야 하는 이유는...



'살아야 하는 이유'가 누구를 위해, 무언가를 위해,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제의 나쁜 기억과 오늘의 좌절, 내일의 불안함이 이어지더라도 결국 살아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니까요. 죽어가는 화초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아무리 설명한들 결국 살려는 스스로의 '의지'가 자신을 살린다는 것을 '화초'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제가 화초에게 말을 건네고, 마음을 전하는 이유입니다. 



사람도 '화초'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려울 때는 도움이 필요하고 힘들 때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의 풍성함과 생명의 에너지가 사그라드는 걸 하루하루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진정 '나' 스스로를 살리고 싶다면 일종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 '의지'는 화초도 살리고 '나 자신'도 살립니다. 



*오늘은 마음이 복잡한 날이었습니다. 글도 마음따라 어지럽습니다. 그저 언제가 찾아올지도 모를 절망적인 순간을 대비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본 것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 주말작가 씀 -




#시도하지_않으면_확률은_0% 이다

#나만의_이유를_찾아서

#나만의_가치를_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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