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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소년 Feb 19. 2018

핑계

주말작가의 핑계를 빙자한 글쓰기

부끄럽게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물론 가져다 붙일 핑계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약속을 깨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주말작가'의 이름값



나름 멋진 '필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만 글을 쓰겠다는 여유 있는 포석이 깔려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발행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해 5월부터 매주 글을 쓰고 발행하는 지난한 과정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일주일에 한 편을 발행 못해, 밀린 글쓰기를 하고 몰아서 발행했던 적도 있습니다. 



어떤 글쓰기?



기왕에 시작한 글쓰기이니 공도 많이 들이고 폼나는 '콘. 텐. 츠.'로 보이고 싶었을 겁니다. 뼈대를 세우고, 자료를 조사하고, 씨앗 문장을 배열하고, 3~4일 살을 붙이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되도록 사진은 직접 찍었고, 가능하다면 영상도 공들여 편집해 담았습니다. 역시 공들여 지은 글은 눈으로 보기에도 훌륭한 조각품 같았습니다. 



기획서를 쓰다 보니 못쓴 글



3주째 주말작가 노릇을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전파진흥협회(RAPA)에 제출할 지역중소방송사를 위한 제작지원 프로그램 기획서에 매달려, 글쓰기 좋은 아침과 밤 시간을 '기획서'라는 전쟁 같은 글쓰기를 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 주가 마감이니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만, 오늘은 잠시만이라도 꼭 나만의 글쓰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기획서로 돌아갑니다. 누군가(독자)에게 읽히고 평가받는 것은 '브런치글'이나 '기획서'나 마찬가지이지만, '기획서'에는 보다 분명한 목적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 담겨야 합니다. 



좋은 기획서는 '영감'에서 시작해 '엉덩이'로 나온다



하루에 서너 시간, 2주 넘게 기획서를 만지고 있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 건가? 싶어 집니다. 씨앗 아이디어를 심고, 관련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면서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기획서를 들여다보고 있다 보면, 마치 논리 구조의 거대한 산맥 사이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파일명 끝에 글의 '버전'을 표시하는 시간표시는 10분 단위로 고쳐지고 있습니다. 생각이 넓어져야 하는데 '엉덩이'가 넓어지는 기분은 어찌 된 일일까요?



'로그라인'으로 잡아라!



기획서 요약본을 제작부장에게 건네고 돌아온 답변은 '책임감으로 읽었다'였습니다.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만 주욱 써 내려간 기획서를 보면서 20페이지 기획서를 읽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고 합니다. 후배를 위한 선배의 노하우 전수의 뼈대는 '로그라인'으로 시작합니다. '로그라인'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프로그램 전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 3,4줄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수 십 편의 기획서를 살펴야 하는 심사위원 입장에서, 혹은 기획서를 빠른 시간 안에 검토해야 하는 직장상사 입장에서, '로그라인'은 '생명줄'과 같을 겁니다. '로그라인'이 생명줄이라면 '잡고 싶게' 튼튼하고 매력적으로 써야 합니다.



처음 '로그라인'은 찾아보다가 읽었던 글을 공유합니다.



'핑계'라는 말을 입으로 발음할 때는 못 느꼈던 생소함이 글자로 본 '핑계'에서 느껴집니다. 'ㅍ'과 'ㄱ', 'ㅣ'와 'ㅖ'가 어딘지 부자연스럽게 놓여 있습니다(물론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아무튼 썩 맘에 안 드는 단어입니다.



핑계 = 자기합리화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핑계'를 찾고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지 않나 돌이켜 봅니다. 제가 주말작가 노릇을 게을리한 '핑계'를 이렇게 한 편의 글로 발행하는 것 또한 '자기합리화'일 겁니다. 결국 깊이 있는 글쓰기는 시작부터 잘못되었네요. 이번 글은 주말작가의 개인적 '자족'을 위한 글쓰기로 남겨야겠습니다. 





에필로그


설 연휴를 보내고 회사 출근하는 길에 잠시 (얼마 전 새로 생긴) 오송'스타벅스'에 들러 이 글을 썼습니다. 기획서 쓸 때 참조하려고 사놓은 책을 '프롤로그'만 읽고 시작도 못했습니다. 목차를 휙 훑어보니 책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습니다. '백우진 작가'가 쓴 책 <일하는 문장들>의 로그라인은 "퇴짜 맞은 문서를 쌈박하게 살리는 일하는 문장들"입니다. 사실 이 '로그라인'때문에 읽어보지도 않은 책을 사기 위해 결재를 하게 된 것이겠죠?!




- 주말작가 씀 -




#시도하지_않으면_확률은_0% 이다

#나만의_이유를_찾아서

#나만의_가치를_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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