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포토 에세이
익숙한 날씨였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춥고 건조한 날씨는 비염을 유발했다. 얼마 전 썼던 ‘미국 동부 자동차 관통기’을 읽어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덥고 습한 날씨는 익숙하다. 어떤 이들은 공항 문을 나서며 덥고 습한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오면 깜짝 놀라 공항 안으로 뒷걸음질 치기도 한다. 나는 이런 날씨가 익숙하고 심지어 좋다.
갑작스럽게 정해진 여행이었다. 이미 10년 전 싱가포르를 회사 연수로 와본 적이 있었고, 연수팀 막내로 선배님들 챙기느라 정신없이 싱가포르 이곳저곳을 누볐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일까 별 다른 기대감 없이 시작한 여행이라 지친 머리를 식히고 올 생각뿐이었다.
2019년 1월의 싱가포르는 2008년 연수보고서 속에 담긴 그곳과는 많이 달랐다는 점을 꼭 얘기하고 싶다. 작은 도시 국가지만 생동감이 넘쳤고, 10년이 넘도록 여전히 건설경기는 활황이었다. 지난해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 장소가 되었던, 말레이어로 '평화와 고요함'을 상징하는 '센토사' Sentosa는 여전히 전 세계인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이번 싱가포르 여행은 포토에세이로 정리해 보았다. 우기였지만 그 비 덕분에 지친 다리를 쉴 수 있었고, 마음 급한 여행자를 한 박자 쉬어가게 했던 것 같다. 수 백장의 사진들 가운데, 에세이에 담을 사진은 딸아이와 함께 골랐다. 아이의 시선과 필자의 시선은 같은 듯 분명한 차이를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아이의 시선으로 찾아낸 '싱가포르 포토에세이'가 오래도록 내게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싱가포르는 태평양과 인도양 사이에 위치해 있다. 일출은 태평양에서 맞이 하지만, 일몰은 인도양에서 바라볼 수 있는 멋진 곳이다. 5대양 가운데 2개의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곳, 싱가포르. 옛날 해적들이 이곳을 본거지로 삼았던 이유를 지금의 싱가포르의 지정학적 역할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식수를 수입해 오는 도시국가는 노동력도 외국에서 받아들인다. 돈을 벌기 위해 싱가포르에 들어오기는 쉽지만, 엄격한 싱가포르의 법을 어기면 가차 없이 추방당할 수 있는 국가, 태형이 여전히 존재하는 안전 하지만 조금은 딱딱한 싱가포르이다.
'짠내투어'에 소개되면서 유명해진 27번 칠리크랩 가게는 우리가 앉아 있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여러 한국인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국어로 '제일 맛있는 집' '의리' 등등의 한글이 오히려 낯설었던 곳, 호커센터.
구글링을 통해 수없이 많은 멀라이언 Merlion을 찾을 수 있지만, 나만의 멀라이언을 담고 싶어 찍은 영상. 촬영 콘셉트는 '귀여움'이다. 은근히 귀여운 '인어 사자'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만 기억해 주길 바란다.
낯선 도시는 질감과 곡선으로 먼저 만나면 좋다. 나만의 여행 루틴이 되기도 한 여행 습관. 두 다리로 달리며 맞이하는 도시는 다리에 전해지는 보도블록의 마찰과 건물 외벽, 가로수 잎사귀의 질감으로 더 실감 난다. 지도를 펼쳐 방향을 잡고 낯선 도로를 따라 달리면, 도시의 속도감과 현지인 삶의 동선이 느껴지면서 더 깊이 도시와 교감할 수 있는 것이다.
낯선 도시를 처음 달릴 때는 종이지도와 '구글맵'을 함께 사용하면 좋다. 도시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구불구불한 도시 골목을 달릴 때는 종이지도의 자세한 길 표시가 도움이 되고, 구글맵은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데 좋다. 한결같이 받는 느낌이지만, 여행지에서 달리면 낯선 곳에서 낯선 나와 만나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하는 이유를 달림에서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5일 동안 싱가포르에 머물면서, 두 번의 아침 달림 기회를 가졌고, 두 번째 달림은 더없이 좋은 느낌으로 기억될 것 같다. 첫날보다 조금 더 익숙해진 공간을 탐험하는 안도감이 도시의 질감과 곡선을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싱가포르의 새로운 명소가 된 '가든스 바이 더 베이' Gardens By The Bay에 가보자. 그리고 슈퍼트리(Rain Tree로 추정) 조형물 사이를 궁중에서 걸어볼 수 있는 'OCBC 스카이웨이'를 놓치지 말았으면 한다. 뭐가 다를까 싶겠지만, 뭔가 특별히 다르다는 걸 꼭 걸어봐야 알게 된다.
Marina Bay Sands Expo & Convention Centre를 나와서 왼쪽으로 돌면, '가든스 바이 더 베이'로 가는 연결통로로 안내하는 리프트를 만나게 된다. 지금부터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자.
주위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디자인된 벽면의 전기 배선이 인상적이다. 더운 날씨의 나라에서 쉽게 느끼는 느슨함은 이곳에선 없다. 싱가포르는 섬세하고 부지런하다.
석양이 물들면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는 '가든 랩소디' Garden Rhapsody가 펼쳐진다. 음악과 조명의 어우러짐이다. 홍콩의 그것과도 비교되는 이벤트지만 너무 기대하면 아쉬울 수 있다. 가든 랩소디를 'OCBC 스카이웨이'에서 볼 생각으로 한 시간째 쏟아지는 빗줄기를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덕분에 고된 다리는 푹 쉴 수 있었다.
석양이 서쪽 인도양 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하면, 시계는 오후 7시 15분을 가리킨다. 적도에 위치한 나라에서 일출과 일몰 시간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이제 곧 시작하겠지? 슈퍼트리 위를 걸어볼 수 있을까?
낮에 올라 보면 어떤 느낌일까? 오후 일찍 이곳에 도착했지만, '가든 랩소디'를 보고 싶은 마음에 슈퍼트리 오르는 걸 아껴두었다.
내부 공사로 '플라워 돔' Flower Dome은 볼 수 없었다. 물론 아쉬웠지만 다음에 다시 올 이유를 하나 만들었다고 애써 달래며 '클라우드 포레스트' Cloud Forest로 입장.
습하고 더운 유리 온실을 생각했지만 이곳은 마치 차가운 동굴 같았다.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서면 시원한 물줄기에서 부서져 나온 물방울이 얼굴을 시원하게 적신다. 정신이 번쩍 들도록 상쾌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물론 엄청난 크기의 유리온실 같은 구조물이지만, 이 안에서 이렇게 많고 다양한 경험과 느낌을 갖고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용자의 동선과 경험을 고려한 세심한 배려가 담겨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밖으로 나오니 굵은 빗줄기가 열대지방의 우기임을 확인시켜준다. 덕분에 미세먼지 걱정은 전혀 없겠지.(해당일 한국의 미세먼지는 최악이었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 Gardens By The Bay에 들어가려면,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Marina Bay Sands Hotel로 이어지는 구름다리를 지나, 호텔 안을 통과해야 비로소 그곳에 다다를 수 있다. '52도의 기적'이라고도 불리며 싱가포르에서 수여하는 많은 상을 받은 이 건축물은 우리나라 쌍용건설이 시공했다.
싱가포르에 또 오고 싶은 또 다른 이유는 이 호텔에서 바라보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가 궁금하기도 하고, 이곳을 아침마다 달리는 호사를 누리고 싶어서다.
조금은 우습지만, 센토사 Santosa의 첫 느낌은 위트 넘치는 화장실 표지판에서 시작되었다. 센토사 익스프레스(모노레일)의 마지막 역인 '비치 스테이션' Beach Station에서 나오면 제일 먼저 만나는 곳, 실로소 비치 Siloso Beach와 센토사 모노레일 첫 역인 '워터 프런트'에서 하차하면 만나는 S.E.A 아쿠아리움 화장실 표지판이다.
나만의 시그니처 요가 아사나 '물구나무서기 자세' Sirshasana 인증숏도 팔라완 비치 Palawan Beach에서 찍었다. 술 먹고 요가하지 말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어기고 음주 요가를 수행했으니...
S.E.A. 아쿠아리움에서 해파리 Jellyfish의 움직임에 감탄하고...
딸아이 짚라인 타는 것도 구경하면서 대리 스릴을 만끽...
싱가포르에서의 시간은 빨리 흐른다. 적도지방이라서 그런 걸까? 새벽 2시 3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오후 3시에 창이공항에 빨라도 너무 빨리 도착했지만, 공항 안에서의 시간도 금세 지나갔다.
넉넉할 거라고 짐작했던 4박 6일의 싱가포르 여행은 시간과 체력의 아쉬움을 남기고 마무리되었다. 귀국 비행기 안에서 가슴 벅차 했던 구름 위 일출 영상으로 이번 싱가포르 포토에세이를 마무리한다.
- 주말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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