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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생 Feb 13. 2023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

공동체의 무게

 바야흐로 백수 13일 차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겪으며 일을 너무너무 하고 싶던 때도 있었고, 어렵게 구한 일이 너무너무 힘들어서 그냥 모든 걸 다 그만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팬데믹 상황에 어쩔 수없이 일을 그만두게 된 나를, 전 직장 동료가 예쁘게 봐준 덕에 새로운 일자리 정보가 있으면 내게 소개해주곤 했다. 그 결과 얼떨결에 시작하게 된 일에서 온갖 질리는 사건들은 다 겪고야 마는데.. 오죽 사람에게 질렸으면,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더 이상 사람과 하는 일이 아닌 컴퓨터, 기계랑 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당장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 나름의 디데이를 설정하고 버티고 있던 나날이었다. 회사가 직면한 여러 가지 위기가 있었지만 가장 큰 위기로는 투자자와의 의견마찰 및 현재 갖고 있는 주 비즈니스 모델의 수익성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이유 등으로 내가 맡고 있던 부분이 축소될 것이 분명한 상황이 되었다. 이에 그간 함께 고생해 온 베트남 직원들도 자의가 아닌 타의로 그만두게 되고, 더불어 나의 직무도 1년 뒤의 내 모습이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 직무로 변경되게 되어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 오래 일한 건 아니지만,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인생의 쓴맛이라는 쓴맛은 다 압축해서 느낀 날들이었는데 특히 그만두기로 한 마지막 한 달은 온갖 저주가 모인 것처럼 힘든 일만 가득했다. 요즘은 대부분 카카오톡으로 문의하고 처리되는 업무가 많다 보니 대부분의 문의사항 및 불만사항이 카카오톡으로 접수된다. 이런 채널의 특성상 대면하지 않는다는 장단점이 공존하는데,  장점은 싫은 소리 들을 때 얼굴이나 목소리를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고, 단점 또한 그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상대를 특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나를 대면하고는 할 수 없을 어투나 단어들로 어쩜 그렇게 사람을 아프게 하는지. 서비스업이라면 나름 적성에 잘 맞다고 생각한 나였는데, 지난 1년 동안 겪은 CS업무는 그 강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아무튼 예상치 못한 시점에 생각보다 빨리 일을 그만두게 되어 후련하기도 하고 좋기도 한데, 막상 백수가 되고 보니 회사 다니는 동안 '그만두면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을 그만두면 '전문'적인 부분의 역량을 키우고 싶었다. 개발자 교육이나 웹디자인 툴을 더 익힌다던가, 혹은 정말 아예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자격증 공부를 한다던가. 이런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내가 더 깊이 알고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기간 동안은 다른 수익을 내는 활동을 하기가 힘들어지는 것, 물론 요즘은 여러 가지 방향으로 수익 파이프 라인을 다양화할 수 있지만 지금 우리는 월급 외의 다른 파이프라인이 없는 관계로 나의 월급 또는 남편의 월급이 우리 수입의 전부다. 고로 내가 자기 계발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남편의 경제적 책임이 커진다. 


 그동안 이런 상황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베트남으로 이주하면서 남편의 외벌이로 사는 것이 기본 조건(?)이었기에 내가 가진 경제공동체로써의 부담감은 덜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게 그동안 고생한 남편이 새로운 회사로 이직을 생각하고 있고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문제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남편이 부담 없이 좋은 회사를 찾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내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좋을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래서인지 퇴사 후의 날들이 마냥 즐겁거나 새로운 것을 한다기보다는 매일같이 구직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어디 지원할만한 곳이 없나 눈에 불을 켜고 보고 있다. 


 퇴사를 결심하고 말할 때는 경력에 대한 고민도 있어 그만둔다고 했는데, 결국 지금의 나는 경력이나 연결되는 직무와는 관계없이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는 곳을 찾고 있으니, 이렇게 찾게 되는 일자리가 내게 경력이 되고 지속할 수 있는 직무일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의 방향과 결이 달라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 상태에 접어들었다. 결국 공부든 창업이든 다른 파이프라인을 마련하기 위해 뭘 하든 다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또 공동체적 책임에 대한 무게도 느끼고 있으니 어떤 한 가지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것. 

 

 이런 문제가 일차적인 고민이라면 더 깊이 들어가 앞으로 어떤 '업'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 이런 고민이 덜 해질까 싶었는데 어째 날이 갈수록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어쩌면 삶의 무게란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 중에 더 우선인 것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을 좀 미루는 것에서 오는 게 아닐까. 그전에 우선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는 게 더 문제다. 그래서 이 글의 방향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하하. 


 뭘 해야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인테리어에 대한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인고의 시간이나 2월 안에 마무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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