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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생 Sep 22. 2020

남은 게 하나라도 있는 서른을 위한 글

2020년 9월

 세상에. 어느새 2020년이 끝나간다. 곧 있으면 추석이고, 추석이 지나면 크리스마스가 올 테고 그다음은 나의 서른이 끝나겠지. 서른이 되면 많은 것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사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우선 2020년은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세상이 정지된 느낌이라, 무엇을 이루었는지 가늠할 수 없는 한 해로 흘러가고 있다. 


 예전이었으면 3개월에 한 번 정도는 한국을 가서 병원을 간다던가, 친구의 결혼식을 축하하러 간다던가, 첫 조카의 돌잔치를 간다던가, 여름휴가로 유럽을 간다던가, 틈틈이 주말에 짬을 내어 방콕, 캄보디아, 라오스 등 근교 국가 여행을 한다던가 등의 많은 계획들로 채워져 있었을 텐데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했으며 그저 하루하루 감염되지 않고 건강하게 넘어가길 바라는 날들이 오늘까지 이어져 왔을 뿐이다.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두고, 해낸 것들을 생각해봐도 크게 특별한 것은 없는 듯한 서른이라 슬퍼진다. 예상치 못하게 백수가 되었으나 학자금 대출은 모두 상환했으며(빚쟁이 탈출!) 남편과 맞벌이를 지속한다는 전제하에 야심 찬 계획으로 우리의 생애 첫 집이 될 아파트를 계약하였다. 이 계획은 내가 백수가 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는데 난항이 예상되지만 아직까지는 버틸만하다. 운동의 즐거움을 아주 조금은 알게 되어 작심삼일을 반복하는 홈트족이 되었으며 약 4킬로가량 감량에 성공했다(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비록 아침에 눈 뜬 후 다시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줄지 않았지만 아침 6시 30분 기상과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습관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매달 한 권 이상의 책은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독후감 쓰기는 번번이 실패하지만 마음속에 해야 할 일로는 남아있으니 습관이 되도록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 새로운 인스타 계정을 시작했으며, 팔로우 1000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유튜브는 재미 삼아 시작했으나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가 끝나 멈춘 상태이다. 멈췄다는 것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니 아직 포기하진 않은 걸로.


 늘어놓고 보면 하나도 남는 게 없는 서른은 아닌데 어딘가 하나씩 만족스럽지 못하다. 목표한 지점에 도달한 것이 딱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이직을 하고 싶지만, 아직도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중이라 어디에 이력서를 들이밀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만족스러운 게 없는 서른이라서, '나'를 찾는 여정에 도움이 될만한 어떤 것 하나라도 해내고 싶어서, 하노이에서 살아가는 이 시간들과 내가 살아온 날들 중 어떤 날들을 기록하고 싶어서, 다가오는 연말에 '그래도 2020년에 서른 살이 끝나기 전에 나 이거 하나는 정말 잘했다 '라는 칭찬을 해주고 싶어서, 꾸준하게 해내는 습관 하나에 글쓰기를 추가하고 싶어서. 그래서 도전하는 브런치 작가이다. 남는 게 하나라도 있는 서른 살을 위해, 앞으로 만날 30대를 조금 더 풍요롭게 채우기 위해.




 세상에 2. 어제, 저녁 준비를 하러 가기 전 이 글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는데 오늘 '축하합니다! 브런치 작가가 되셨습니다!' 메일을 받았다.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다가 된통 고생한 오전 시간을 보상받은 듯 기뻤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열어본 메일함 첫 번째에 브런치에서 온 메일이라니. 동네방네 소문내다 보니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오늘로 말할 것 같으면, 이틀 뒤 이사를 앞두고 새로운 냉장고가 배달 오는 날이었으며 계획대로라면 청소 언니(평소에 주 2회 우리 집 청소를 도와주는 언니)와 함께 같이 입주청소 느낌의 청소를(언니에게 화장실 청소를 부탁하고, 나는 싱크대 및 옷장을 닦을 생각이었다)하고 10시 즈음 오기로 한 에어컨 청소가 끝난 후에는 절친과 자장면에 탕수육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그러나, 늘 울리는 알람 시간에 눈을 떠 언니와 새 집 앞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을 맞추려 준비를 하려는데 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이가 아파 오늘은 일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언니가 일하러 다니는 다음 집들에도 이 소식을 전달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아쉽지만 청소는 해야 했기에 청소기와 스팀청소기 및 여러 장비가 들어있는 30인치 캐리어를 끌고 혼자 이사할 집으로 향했다. 


  에어컨 청소가 되어있지 않아 차마 에어컨을 켤 수 없었고, 바람이 불겠지 하며 베란다 문을 열어두고 청소를 시작한 지 10분도 안되어 내 생각은 경기도 오산이었음을 깨달았다. 싱크대 상부장 하나 닦았을 뿐인데 땀이 비 오듯 흘러 하필 왜 회색 티를 입었는지 모르겠지만 회색 티는 점점 진회색으로. 아마 검은색 티를 입었다면 하얗게 소금기가 올라왔을 것 같다. 그래도 냉장고 들어갈 자리만이라도 닦아두자 해서 바닥을 닦는데 왜 닦아도 닦아도 먼지가 나오는 것인지! 청소를 시작한 지 30분 만에 완전히 땀으로 샤워를 하고 무엇을 위한 노동인가 하는 생각만 들었다. 오기로 1시간을 채우고는 도저히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입주청소를 불러야겠다 라고 마음먹은 후 냉장고 배달이 왔고 곧이어 에어컨 청소가 왔다. 

 

 에어컨 청소 업체에서 입주청소도 해주고 커튼 세탁도 해준다길래 약간의 흥정과 함께 내일 다시 입주청소를 와주기로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에어컨 청소가 끝나길 기다렸다. 애초에 입주청소를 혼자, 아무리 작은 집이라 해도, 혼자 하는 것은 정말 무리였던 것이다. 역시 또 한 번 경험을 통해 배우는 인생이라며, '입주청소는 반드시 업체를 부른다'라는 교훈을 얻었다. 

 

  이렇게 고단했던 오전을 보내고, (냉장고가 들어오고 에어컨 청소를 하는 동안 녹초가 된 나와 함께 있어준 절친과 분식집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치즈라면과 계란말이 김밥을 먹은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확인한 메일함 첫 번째에 있던 소식이라 더 반갑게 느껴졌다. 오늘의 고생 말고도 최근 연이어 들려온 불합격 소식에 스스로 작아지는 느낌이 들어 미루지 말고 도전해보자 했던 건데 첫 신청에 바로 브런치 작가를 시켜주다니!(개이득! 이건 마음의 소리) 몇몇 지인들이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가 통과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세 번째쯤 돼야 되려나 했는데. 기쁘다. 


 주절주절 내용이 길어졌지만 어쨌든 작가가 되어 기쁘다는 마음을 담은 이 글을 발행하려고 보니 커버 이미지가 휑하여 아이패드에 끄적여 보았는데 이것도 내 눈엔 만족이다. 청소는 실패했지만 그림도, 글도 만족인 오늘이니까 영 힘들었던 날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작은 것들에서 얻는 성취감이 마음속 어딘가를 간질간질하게 하는 것처럼 글쓰기 습관이 앞으로 만날 내 삶의 한 구석을 더 간지럼 태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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