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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생 Oct 03. 2020

이사를 준비하며 1

하노이 이사의 역사

 하노이에서 두 번째 이사를 했다. 지금은 하노이에서 집을 구할 때 어떤 곳을 참고해야 할지 잘 알고 어느 정도 이 곳의 룰에 익숙해진 후라 집을 보러 다니는 것도 이사 준비를 하는 것도 모두 남편의 도움 없이 잘 해낼 수 있지만 그래도 역시 이사는 힘든 일이다. 


 처음 살던 집은 남편이 내가 오기 전 미리 구해둔 신혼집이었다. 그는 내가 하노이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하며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었는데, 첫 번째는 조금 오래되었지만 한인촌 중심에 있는 아파트의 원룸(1층에 스타벅스가 있고 지하에는 대형마트가 있음), 두 번째는 한인촌과는 차로 10분 정도 거리의 신축 아파트 투룸이었다. 한국에서 내가 검색으로 알아보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차로 10분이면 먼 거리도 아닌데 이왕이면 깨끗한 아파트에 화장실도 두 개인 집에 살겠다고 결론 내리고 집을 구하기로 했다. 대략적인 위치를 정한 후의 고민은 에어컨을 제외한 기타 가전 및 가구는 없는 노옵션으로 구할지 모든 가전 가구가 집주인의 취향대로 인테리어 되어있는 풀옵션 집을 구할지였다. 노옵션 집과 풀옵션 집은 노옵션 집이 월세가 보통 100불 정도 더 저렴한 편이다.  평소 취향이 확고하고 까탈스런 면이 있는 나를 아는 남편이 풀옵션 집 중에는 내 취향에 맞는 집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하고(특히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아니라 남편이 혼자 집을 찾아야 했으므로 더 어려웠을 것이다) 노옵션 집을 구하고 가전과 가구를 우리가 직접 구입하기로 했다. 


 나의 신혼집에 대한 첫인상은 침대뿐인 썰렁한 방에 서라운드로 울려 퍼지던 남편의 코골이로 남아있다. 신혼여행을 갔다가 한국로 가지 않고 바로 하노이로 들어오는 일정이라 침대, 냉장고, 세탁기만 미리 구입해 두었다. 미리 몇몇 짐을 정리해 배편으로 하노이에 보내 놓은 상자에 전기포트와 당장 덮고 잘 이불은 있었기에 컵라면을 끓여먹고 누웠는데 먼저 잠든 남편의 코골이가 빈 방을 가득 채워 나는 잠을 설쳤던 것이 첫 기억이며 다음으로는 입주청소를 했다고 하는데 닦아도 닦아도 새까맸던 바닥이 두 번째 기억이다. 다시 한국인이 관리하는 업체를 불러 방역과 대청소를 끝내고 각종 가구 및 가전을 들이고 집다운 모습이 되기까지는 한 달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이케아(있긴 있다 아주 작은)나 마켓비 같은 가성비가 좋고 적당히 예쁜 가구를 파는 곳을 찾지 못해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하고 꾸민 집이었지만 내 손으로 하나하나 채워 넣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던 첫 집이다. 




 이 집의 장점은 남편의 출퇴근이 편리하다는 점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8시 30분까지 출근인데 8시에 출발하면 교통체증을 감안해도 15분이면 도착하는 곳에 회사가 있었다. 퇴근길은 워낙 헬인 곳이라 시간이 더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남편이 길에서 버리는 시간은 꽤 절약할 수 있었다. 나도 그랩(개인이 운영하는 일종의 콜택시 개념)을 부르거나 아파트 1층에 대기 중인 택시들을 타면 돼서 외출할 때 큰 불편함 없이 잘 지냈다.


  다만, 가장 큰 단점은 하노이에 거주 중인 한인들 사이에 인지도가 전혀 없는 아파트였다는 점이다. 한국에서야 뭐 처음 만나서 '어느 아파트 사세요?'라고 묻는 일은 흔치 않고, 그렇게 물어본다 해도 'XX동'살아요 하면 끝나는 대화 주제지만 하노이에서 처음 만나는 사이에 거주지에 대한 질문은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속한다. 거주지가 가까우면 그만큼 자주 만날 수 있다는 뜻이고 누구나 타지 생활인 이 곳에서 가까운 곳에 친한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은 큰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각 아파트마다 존재하는 단톡에서 정보교류도 원활해서(정전이 된다거나, 단수가 된다거나 하는 안내문이 모두 베트남어로 되어있기 때문에 까막눈인 사람들은 아파트 단톡에서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다)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 사는 것은 이점이 많다. 이런 이유에서 남편이 첫 번째로 제안했던 게  한인 중심지에 있는 아파트 원룸이었던 것이다(꼭 원룸이어야 했다. 투룸은 월세가 그때 당시 우리가 쓸 수 있는 예산을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탈락) 만약, 그때 남편 제안대로 하노이 라이프를 미딩(한인타운)에서 시작했다면 지금의 삶이 다른 모습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첫 번째 집에서 보이던 전경

 주로 미딩 또는 흔히 시내라고 생각하는 호안끼엠이나 호떠이는 어차피 모두 차를 타고 가는 어딘가에서 만나니까 인지도가 낮다 해도 평상시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문제는 내가 하노이에서 써먹으려(?) 배운 캔들 클래스를 집에서 열고자 했을 때 수면 위로 올라왔다(상가를 임대하는 것은 비용 측면에서 리스크가 커서 일단 집에서 시작하기로 했었다). 한인을 대상으로 생각했고 평소 한국에서의 삶을 생각하면 '차로 10분 거리'라는 것이 걸림돌이 될지는 몰랐기 때문에 호기롭게 시작해 홍보용 블로그를 만들고,  커뮤니티 카페에 글을 올렸다. 대박 날까 봐 우려했던 것과 달리 (꿈이 컸던 걸로) 문의가 와도 위치를 설명하면 다들 연락이 없었다. 내가 타깃으로 생각한 소비자층은 인지도 낮은 아파트와 동네는 비록 차로 10분 거리여도 멀다고 느꼈던 것이다. 집 외에 미딩에 있던 다른 장소에서 협업했을 때는 그래도 수강생이 모여서 수업을 진행했지만, 집으로는 용기 내어 찾아주는 분들 외에는 크게 수강생이 모이진 않았다. 그렇게 점점 캔들 클래스에 대한 열정이 식어갈 무렵(초반에 쏟아붓고 피드백이 없으면 금방 지치는 스타일) 참여한 플리마켓에서 아주 크게 한 방 맞고 완전히 애정이 식어버렸다. 어떤 분이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진 않지만 그분이 하신 한 마디가 크게 상처로 남았는데, 이 날 이후로 굳이 내가 사는 아파트에 대해 설명하려 하지 않고 그냥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동네 근처라고만 말하고 마는 계기가 되었다.


 플리마켓에 구경 오셨던 분이 내가 판매하려고 진열해둔 캔들을 보더니 '아, 이거 커뮤니티 카페에서 홍보글 봤어. 클래스도 있었는데?'라고 하시니 친구분이 '나도 봤는데, 여기 근처가 아니었어.' 대략 이런 대화였는데, 이것이 왜 상처로 남았냐면 그게 내가 듣는 바로 앞에서 한 대화였기 때문이다. 우리 집이 한인타운에서 멀지 않음을 설명하려 무던히 애썼던 것과는 달리 구글맵도 한 번 찍어보지 않으시고 인지도 없는 아파트라고 '멀다'라고 단정 짓는 게 굉장히 속상했다. 애당초 타겟팅한 소비자가 생각하는 심리적 접근성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지만 그래도 별 의미 없이 했을 그 한마디가 어찌나 크게 느껴지던지. 그 후, 운 좋게 프리랜서가 아닌 출퇴근 하는 직장인이 되어 점점 더 캔들에 대한 애정은 사라져 괜찮지만, 그때 그 한마디를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다.  




 하노이에서 집을 렌트할 때는 주로 1년 단위로 계약을 진행하고, 6개월 단위로 렌트비를 납부한다. 이 중 집주인이 부동산에 중개료로 주는 것은 통상 1개월치의 렌트비라고 알고 있다. 계약이 끝나는 시점 30일 전부터 계약을 연장할지 혹은 이사를 갈지 결정하고 집주인과 부동산에 고지하는데 우리는 2018년 4월부터 이 집과 계약이 된 상태였다. 2019년 설이 지나고 기존 다니던 곳이 폐업하게 되어 새로 구직활동을 했다. 또 운 좋게 3월부터 출근하게 된 회사가 중화라는 동네(구한인타운)의 중심에 위치했고 때마침 집 계약 연장 시점과 일치하여 첫 번째 이사를 추진해보려 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지도 있는 아파트로 이사하면, 평일엔 출근하고 주말에는 캔들 클래스를 운영해볼까라는 생각이 남아있었다. 회사에서 도보로 출퇴근이 가능한 아파트에 집을 여럿 봤었고, 마음에 드는 집도 찾았으나 문제는 렌트비였다. 마음에 들었던 집이 둘이 살기에는 꽤 큰집이기도 했고 첫 집에 비해 2배가 넘는 렌트비였기에 아무리 맞벌이를 한다 해도 매몰비용인 렌트비의 비중이 커지면 부담스럽긴 했다. 거듭되는 부부 회의 끝에 결국 이사는 미루고 계약을 연장하여 6개월을 더 첫 집에서 살았다. 


 첫 집의 또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단지가 작은 아파트라 산책로가 짧다는 것이다. 저녁을 먹은 후 주로 함께 산책하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었던 우리 부부는 다음 집은 꼭 단지가 큰 아파트로 가자고 산책할 때마다 얘기하곤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구조도 중요했다(다행히 첫 집은 구조는 괜찮았다). 사실 나는 집을 볼 때 구조를 엄청 따진다. 한국 집들은 주로 3 bay, 4 bay 구조라 해서 창문이 없는 방이 잘 없지만 하노이는 아직 그런 구조의 집들이 많다. 나는 창문이 없는 방을 선호하지 않아서 꼭 모든 방이 창문이 있길 바랬고, 동과 동이 마주 봐서 사생활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집은 제외하고 현관문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는 구조도 허다했는데 이런 경우도 제외시켰다. 작은 집은 18평, 19평에 화장실을 굳이 두 개 넣어서 방 크기가 작고 거실이 답답한 집들이 대부분이고 대체로 현관문을 열면 바로 주방이 보여서 공간 분리가 잘 안 되는 구조가 많았다. 따질 것은 따지고 타협할 것은 타협하여 엄선한(?) 몇몇 라인으로 한정하여 집을 보기로 했다. 이런 나를 보고 주변에서 부동산보다 더 잘 아는 것 같다며, 이렇게 구조 따지는 애는 처음 본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ㅎㅎ).


 2019년 9월 말 이사를 앞두고 내가 집을 보러 다닐 때만 해도 '다음 집은 여기다!' 했던 아파트가 신규 입주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렌트비가 너무 비쌌다. 같은 방 2개에 첫 집과 구조는 같아도 실제 집 크기는 작아지는데, 렌트비가 1.8배 정도 되어 그런 비효율적인(?) 선택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차선책으로 남편과 합의한 다른 아파트의 방 2개인 집은 렌트비는 합리적이지만 이 역시 집이 너무 작아져서(맥시멀 리스트인 나는 살림살이가 꽤 많다) 결국 방 3개인 집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방이 3개라고 해도 23평 정도 되었던 첫 집과 큰 차이 없는 24.5평 정도였고 렌트비는 1.6배 정도였다.(하노이에서는 평형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주로 square 단위로 표현한다. 첫 집은 75.6 square정도였고, 두 번째 집은 80.7 sqaure였다). 



 우리의 두 번째 집은 장점이 많았다. 이사를 준비하던 시점에 남편의 회사는 저 멀리 구석 동네로 본사를 이전하여 남편의 출퇴근 편리성은 고려사항이 될 수 없었고, 나의 도보 출퇴근을 목적으로 집을 구하려 했으나 차선책 아파트로 결정하면서 나도 결국은 차량을 이용해야 했지만, 첫 집에 비하면 도로가 바로 뚫려있어 출근은 7분, 퇴근은 15분 정도로 편안해졌다. 첫 집 1층에 있던 편의점 수준의 한인 슈퍼는 두 번째 집에선 동네 슈퍼마켓 정도로 커지고 다른 슈퍼들도 있어서 장보기도 수월했다. 아파트 3개 동과 빌라단지가 붙어 있어 전체적으로 큰 프로젝트에 해당하는 아파트였고, 입주민만 입장할 수 있는 꽤 큰 호수공원이 단지 내에 있어서 산책하기에도 너무 좋은 환경이었다. 구조도 거실 - 작은방1 - 작은방2 - 안방으로 연결되고 모든 방에 통창이 있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뷰가 좋았다! 하노이에서 랜드마크라고 볼 수 있는 롯데 건물과 경남 빌딩이 모두 보였으며, JW 메리어트 호텔,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NCC라고 불리는 국립 컨벤션 센터의 전경도 내려다 보였다. 친하게 지내던 언니도 같은 층의 반대편 쪽 집으로 이사해 가까운 동네 친구가 생긴 점도 좋았다. 자주 가진 않았지만 무료로 이용 가능한 4계절 실내 수영장과 헬스장이 있었고, 도보 10분 정도 거리에 시장도 있어 날이 선선할 때는 아침에 산책 삼아 시장 한 바퀴 돌고 반미(베트남식 샌드위치)와 쏘이(베트남식 찰밥)를 사 먹을 수도 있었다. 


두 번째 집에서 보이던 야경


 이사를 한 번 해보니 정리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체력 소모도 커서 웬만하면 이사를 하지 않고 계속 살고 싶었다. 8월에 비가 엄청 많이 왔을 때 아파트 외벽의 문제인지 창틀의 실리콘 문제인지 창틀 아래 벽에 물이 세서 집주인에게 전달을 했고, 관리실에서 고치러 올 때 집주인도 같이 방문했다. 9월 초에는 계약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해서 겸사겸사 렌트비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경제상황과 계속 늘어나는 아파트 공급으로 하노이의 렌트비가 전반적으로 많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입주 때부터 깐깐해 보였던 집주인이 렌트비를 깎아줄 마음이 없으며, 이 뷰에 이 정도 렌트비는 저렴한 편이라며 벌써부터 입주를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자존심을 세웠다(그러나 우리가 이사를 나올 때 까지도 다음 세입자는 결정되지 않았다). 우리가 살면서 만족도가 높은 집이었기에 집주인의 완강한 태도에도 계약을 연장할지 고민하다가  부부 회의를 거쳐 다시 방을 2개로 줄이고 렌트비도 줄이면 좋겠다고 합의하고 이사를 결정했다. 그래서 우리는 하노이에서 벌써 세 번째 집에 입주하게 되었다. 세 번째 집을 결정하기까지의 이야기는 이사를 준비하며 2에서 남기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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