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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생 Oct 18. 2020

라면볶이를 보면 네가 떠올라

 하노이에 한국 제품을 파는 새로운 슈퍼마켓들이 등장하고 있다. 올해 초 까지만 해도 K 브랜드가 하노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새로 지어진 아파트들이 입주를 시작하면서 호찌민에서 유명하다던 S슈퍼도 하노이로 사업을 확장하며 등장했고, 최근에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슈퍼마켓도 여럿 생겼다. 지난 주말 저녁 부부동반 모임이 있어 미딩에 나갔다가 새로 생긴 마트에 갔는데 우리 아파트 단지에만 해도 2개 지점이 있고, 평소에 야채나 우유 같은 신선식품을 구입하는 K에는 없는 상품들이 꽤 있었다. 특히 오뚜기의 제품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라면볶이'가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라면볶이만 보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추억이 있다. 딱 이맘때의 계절이었던 것 같다. 바람이 쌀쌀하지만 아직 춥지는 않은 가을. 그 친구와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안면이 있었고 중학교 2학년 때는 같은 반을 하며 가까워졌다.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1학년 때는 옆반, 2학년 때는 같은 반이 되어 수학여행에서도 함께 다니며 추억을 쌓았다. 고등학생 시절 가장 중요했던 건 급식이었다. 식단표를 받으면 그 날의 메인 메뉴에 형광펜을 칠하는 것이 중요한 숙제였고, 메인 메뉴가 별로인 날은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거나 매점 음식으로 한 끼를 때우기도 했다. 그때 매점에서 팔던 컵라면은 종류가 여럿이었는데 우리는 라면볶이를 좋아했다. 


 그 날 점심 식단이 별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8교시가 끝날 무렵 허기가 졌던 우리는 쉬는 시간 10분을 활용해 라면볶이 하나를 해치우기로 했다. 당시 우리 교실에서 매점까지는 재빨리 뛰어가면 1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던 것 같은데,  쉬는 시간 10분 동안 뛰어가서 컵라면을 사고, 면이 익기를 기다리고, 먹고 치우는 것 까지 모두 해결해야 하니 사실상 촉박한 먹방 계획이었다. 그래도 먹고자 하면 먹어야 하는 고등학생 아니던가. 우리는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자마자 매점으로 달려 라면볶이를 구입했고, 교실로 달려와 복도에 있던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은 후 면이 익기만을 기다렸다. 면이 익자마자 소스를 넣어 비비고 나 한 번, 너 한 번, 나 한 번, 너 한 번. 딱 네 입만에 라면볶이 하나를 끝내니 쉬는 시간이 끝남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그렇게 먹방을 끝낸 우리는 서로를 보며 깔깔대며 웃었던 것 같다. 여학생 두 명이 컵라면 하나를 네 입만에 다 먹어치우다니!! 그것도 10분 만에 사고, 끓이고, 먹는 것 까지 다 하다니! 의지의 고등학생이라며, 우리가 해냈다며. 그리고 한 시간의 수업 뒤 저녁시간이었는데 저녁도 맛있게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와 라면볶이에 대한 추억을 나눠가진 그 친구는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했고, 나는 부산의 대학으로 진학했다. 그래도 종종 통화하고, 서울에 놀러 가서 만나기도 하고 친구가 부산에 돌아오면 만나기도 하며 잘 지냈다. 서로의 연애에도 꽤 도움을 주었는데 우리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서울-부산이었으나 서로의 부모님께 이름을 말하면 아는 사이였기에 종종 친구의 이름을 빌려주고 외박의 타당한 이유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랬던 우리가 지금은 둘 다 결혼을 했고, 친구는 어느새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친구가 지금 남편과 연애를 시작할 때 내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어벤저스 1이 갓 개봉했을 쯔음이었던 것 같다. 당시 다음 학기에 교환학생을 계획 중이었던 친구는 학교에서 알게 된 선배와 썸 비스무리한 감정이 생겨나고 있었다. 연애를 시작한다 해도 바로 장거리 커플이 되는 것을 걱정하던 친구에게 사서 걱정할 필요 없다며, 일단 어벤저스도 보고 밥도 먹고 데이트도 해보고 판단해보자고 조언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날의 데이트를 통해 둘은 연인이 되었고 친구는 대만으로, 남자 친구는 캐나다로 각자의 학업을 위해 떠났던 1차 장거리 연애도 잘 넘기고, 2차로 한국에서의 서울-부산(친구가 졸업 후에 부모님 집에서 생활했다) 장거리 연애 기간도 잘 넘겨 마침내 2019년 1월에 부부가 되었다. 친구의 결혼 일정은 내가 하노이로 온 이후에 잡힌 거라 참석 가능 여부가 불투명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친구의 결혼식 날짜가 우리 부모님 생일과 겹쳐 겸사겸사 한국에 다녀오면서 무사히 축하를 건넬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누군가와 함께 나눌 추억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많이 깨닫는다. 슈퍼에서 만난 라면볶이 하나로 순식간에 나는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 친구와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또 다른 추억들도 생각나 슬금슬금 웃음이 났다. 생각난 김에 육아로 고생하고 있을 친구에게도 그 시절의 우리를 보내는 연락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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