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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독한 사차원 Feb 02. 2024

귀찮고 불편한 것들이 그리운 날들.

과테말라의 작은 오두막.

자연 속에 살다 도시로 돌아오니 귀찮고 불편한 것들을 자주 그리워했다.


와이파이가 안 터져 세상이 단절되었던 날,

매일 같이 찬 물에 샤워를 후다닥 끝내고 침낭 안으로 들어가 파묻혀 있던 순간들,

새벽에 화장실을 털레털레 내려가다가 마주친 손바닥보다 큰 벌레들을 보고는 '정말 과거에는 공룡이 있었겠다'라고 생각했던 기억들,

전기가 자주 나가 촛불 하나로 하루 이틀을 버티다 불이 들어오면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을 기억한다.


가끔은 집 밑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다 돌아오니 칫솔을 내려놓았던 공간이 개미들의 길이였는지 아랑곳 하지 않고 칫솔모 사이로 줄지어 내 칫솔을 헤집었던 개미들을 목격하고도 

새로운 칫솔을 사려면 비포장길을 40분이나 달려 산 밑으로 내려가야 하기에 애써 개미들을 털어내며 눈 질끈 감고 양치를 하던 날들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서


결국 2년 만에 다시 과테말라 산속에 있는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내가 사랑하는 곳에 있으려면 무서워하는 벌레들과 친해져야 한다는 나와의 싸움이 현재로선 최대의 숙제다.


형상 없는 구름에 하염없이 쌓여 자욱해진 공기와 맞닿아 스쳐지는 나의 존재는 비로소 이곳에서 완성이 되어가고 있을까 스며 사라지고 있을까.


숲 사잇길을 지나는 모든 곳에서 들리는 새소리에 역시나 도시에서 매일 귀에 처박혀있던 에어팟을 한동안 찾지 않게 된다.


들이쉴 때는 푸르렀다가 내쉴 때면 숨이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산속의 향은 각기 다른 색으로 여전히 자리한다.


자연에서 난 음식을 직접 요리하면서 채식을 하는 친구에게 배우는 색다른 관점들과 , 오늘은 무엇을 요리해먹고 싶은지 나에게 물어보며, 곰곰이 나와 우리를 위해 고민하는 시간들이 참 소중해진다.


날 좋은 날, 맨발로 벌레를 꾹- 밟을까 봐 요리조리 피해 흙길을 걸을 예정인 나와 우리의 계획은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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