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글쓰기 챌린지 Day 22 서툰
‘서툴다’라는 말은 어딘가 투박하게, 혹은 무디게 들린다.
어설프고, 무언가 부족한 느낌.
예전의 나는 나의 서툰 모습이 참 싫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한참 뒤처져 있거나, 혹은 부족한 면들. 무언가 부족한 것이 불완전해 보였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고 되뇌곤 했지만, 뛰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이제야 걸음마를 뗀 아이 같은 나의 한발 한 발은 매번 부끄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나의 서툰 모습
나의 서툰 모습을 좋아한다는 것은, 마치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처럼 공존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서툰 모습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을까. 무언가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좋아하기란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소심한, 쓸데없는 완벽주의,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과대평가와 같은 것들이 만든 어둠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못하는 것들, 완전한 '왕초보'가 되는 것들에 도전하면서부터, 그 어둠은 하나씩 걷히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느 날, 괜히 무서워하는, 혹은 두려워하는 것들에 도전해 보자는 마음을 먹었고, 못하는 것들부터 배우자는 생각을 했다.
수영을 26살에 처음 배웠다. 물에 대한 무서움도 있어 왕초보 사이에서도 따로 빠져서 배우는 3명 안에 내가 있었다.
자전거는 28살에 타게 됐다. 그때 언덕길에서 무리하게 타서 까진 무릎의 상처는 지금도 흉터로 남아있다. 32살에는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다. 여전히 뚱땅거리지만.
그리고 올해, 요가를 시작했다. 안 되는 자세들은 여전하다. 숙련된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낑낑거리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선생님이 요주의 인물로 나를 항상 주시하고 있는 것도 때로 동기부여(?)가 된다.)
시간이 지난 지금의 나는 물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바람을 가르면서 자전거도 탈 수 있다.
인간이 바퀴를 발명하고, 또 탈 것이란 것을 만들었을 때의 카타르시스도 나도 드디어 알게 됐다.
20대 후반에서부터, 왕초보로 돌아가면서, 그 서툰 한 걸음 한걸음이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지 알게 됐다. 심지어 요즘은 그런 내 모습이 귀여울 때도 있다.
그러다 천천히 늘어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어제와 오늘은 다른 게 없더라도, 지난달, 1년 전과 비교하면 꽤나 성장한 내가 보였다.
최근 읽은 김영하 작가의 책 <단 한 번의 삶>에서, 유독 마음에 남는 구절이 있었다.
사공 없는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 보면 도달하게 되는 어딘가. 그게 미래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
미래를 묻지 않고 그냥 하기. 그리고 하루하루 서툴게 무언가 하다 보면 가 닿는 미래. 돌이켜 봤을 때 그 시작은 참 작고 귀엽지 않을까? 어설프고 불안한 지금의 시작도 기억하고 싶어졌다.
또 다른 '서툰 나'를 찾아다니는 사람이고 싶다. 그 끝이 반드시 능숙함이 아닐지라도. 언제나 '왕초보'로 돌아가,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는 용기. 그 안에 서툰 내 모습도 이제는 좋다.
오늘도 서툰, 그리고 내일은 조금 서투를 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