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류

2. 그믐의 간조

by 꿈꾸는오월

사랑하는 우리 딸,

항상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운 우리 큰딸이었는데 이번 수능 너무나 큰 실망으로 엄마아빠는 허탈하고 배신감까지 느끼게 되는구나.

이런 일이 오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불신, 부모와의 먼 거리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사소한 일도 부모와 의논하고 대화를 해야 이렇게 큰 사태는 오지 않는 법이란다.


혼자서 공부하면서 힘들고 도움이 필요했을 텐데, 그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던 모습이 부족했던 것 같구나.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네가 도와달라 했으면 엄마는 도와줄 수 있었는데 이제 오니 아쉽구나. 그래도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니.

지난 일에 얽매이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무슨 직업을 갖고 어떤 사회인으로 살아갈지 깊이 생각해 보아라. 항상 자신감 있고 당당한 너의 모습을 보고 싶구나. 어떤 일을 해도, 어떤 자리에 있어도, 항상 당당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엄마와의 갈등은 생명의 법칙처럼 자연스레 찾아왔다. 사춘기를 겪고, 점점 머리가 크면서 사소한 것부터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엄마는 언제나 안정을 최우선으로 말하곤 했다. 안정된 직업, 직장, 결혼, 삶. 그 안정의 도식이 엄마의 세계를 구성하는 유일한 지도였던 것 같다.


엄마의 시선에서 안정적이고 안전한 길은 그때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엄마는 내가 잘되길 바랐지만, 그 ‘잘’ 이란 기준이 나와 달랐다. 남들 앞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무언가. 내가 원하는 길은 엄마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 차이는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벽 하나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열여덟, 진로 결정의 순간은 그 절정의 부싯돌이 되었다. 교육 당국에서 나눈 문과와 이과가 엄마와 딸을 나누리란 것은 몰랐을 것이다. 엄마는 문과를 가기를, 나는 이과를 고집했다.


엄마는 안정의 지도에 따라 문과를 선택해서 더 좋은 대학, 직업을 가지는 분명한 순서가 있다고도 믿었다. 그 지도에서 벗어나려는 내가 못마땅할 뿐이었다. 안정적으로 잘 될 수 있는 길을 두고 부딪혀야 한다는 그 비상식적인 일도. 엄마는 나의 가능성을 믿기보다, 세상의 냉혹함을 확신했다. 우리는 지난한 다툼을 했다.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는 그 어떤 이해의 틈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오래된 말을 벗어날 순 없었다. 고집대로, 안정의 지도를 벗어나 내가 만든 엉성한 트랙에 올라탔다. 서로가 원하는 출발점부터 달랐던 것이, 세월이 흐를수록 그 차이를 벌릴 것이란 것은 복선에 불과했다.

그때부터였다.

나에게 ‘증명’이란 강박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쓴 진로 선택의 온전한 책임은 나에게 있었다. 누구에게도 지지받지 못하는 선택에 대한 확신을 주어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들쑥날쑥한 성적표의 숫자들은 때로, 아니 자주, 엄마의 말이 맞았음을 증명할 뿐이었다. 그때마다 접점 하나 없는 대화의 끝은 늘 날카로웠다.

그리고, 보란 듯이 대입에 실패했다.

대입의 실패는 결국, 내 선택이 틀렸음을 방증할 뿐이었고, 엄마와 나의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었다. 대입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로 치환되기까진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엄마의 소화되지 못한 걱정과 정제되지 못한 불안은 해일이 되어 나의 섬을 깎아내렸다. 모래를 뒤엎고, 바위를 내치고, 집채만한 파도로 잠식시켰다. 해송 하나 없는 모래장의 어린 나는 방파제조차 없이 그 걱정과 불안을 마주해야 했다.


그즈음 엄마는 외출이 싫다고, 남들을 만나는 것은 더더욱 부끄럽다고도 했다. 남의 자식의 안부를 기꺼이 묻는 사람들 때문이었을까. 확실한 건 나 때문이었다. 집에서 나의 존재는 그저 거추장스러운 벌레 같았다. 자주, 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르를 떠올렸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불신, 깊은 회의까지 더해져 어디든 갈 곳 없는, 바다 위 표류하는 부표가 되었다. 누구 하나 거둬 줄 수 없는 망가진 부표를 엄마는 받아주길 바랐다. 세상이 모두 돌아서도 엄마만 나를 받아줬으면 됐는데, 필요한 순간 엄마는 없었다. 어쩌면 나의 실패를 못 받아들인 것은 엄마도 마찬가지였던 걸까. 엄마도 여유가 없었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그렇게 우리는 어긋나고, 또 실망하고, 상처 주면서 서로를 부정했다. 딸은 엄마에게 제대로 된, 혹은 자립할 수 있는 파도가 아니었고, 엄마는 딸에게 돌아갈 집이 될 수 없는, 격랑의 바다였을 뿐이었다. 반복되는 갈등은 깊어지기만 할 뿐, 그 어떤 때도 나아진 적이 없었다.

더 이상 이해 받을 수도, 요구할 수도 없을 만큼 트랙을 벗어나 탈주해 버린 나는 섣부르게 이 갈등의 결론을 냈다. 집과 바다를 스스로 무너뜨리면서.

어쩌면 그때의 우리는 서로 이해하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이해의 틈 하나 만들지 못한 채, 와류 속에서 간조의 시간은 속절없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