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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금지기 Jul 17. 2024

투자 심리 해부학 71 ~ 80

돈과 심리에 관한 독백 (경험적 통찰)



71.

깨달음은 갑자기 온다. 어느 순간, 그동안 지니고 있던 생각을 버리고 전혀 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바람직한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깨달음을 얻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갈릴레이 갈릴레오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확신에 찬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 믿음은 생각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혼이 담긴 노력과 반복에 지치지 않은 시간이 만들어주는 자기 확신이다. ‘자연의 법칙’ ‘신이 만든 인간의 법칙’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 근데 시장은 잔인하게도 버려야 할 대상으로 자기 자신을 요구한다. 희생의 대가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절대다수 보통의 인간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곳이 시장이다. 설령 지금 실패하고 있더라도, 그 실패가 너무 아프고 시리더라도 최소한 당연히 거칠 수밖에 없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버려야 성공한다. 그럼 성공하는 자신은 누구인가?’ ‘성공했을 때 자신은 분명 지금껏 알아 왔던 익숙한 자신이 아닐 것이다.          

 




72.

나는 예언하거나 예측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주식시장이 내게 보여주는 행동에 반응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주식시장은 항상 그다음에 올 단서를 제공하는데 그 단서의 퍼즐을 풀어나가면서 공포와 탐욕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하게 분석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인내심을 잃어버리고 추세 전환점을 기다리지 못하고 손쉬운 수익의 유혹에 넘어갈 때마다 나는 항상 돈을 잃는다. 분석이 무조건 돈을 벌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 그것이 돈을 벌게 해 준다. <어느 투자자의 회상 – 제시 리버모어>          




73.

바둑에서는 ‘축을 길러 죽이지 마라.’ ‘장문 걸린 돌을 키우지 마라.’ 한다. 손실을 짧게 자르지 못함을 더해서 이미 파동이 변한 자리에서 버티거나 물타기로 곳간을 비우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방법이 없다. 또한 무리는 무리를 부르는 법이기에 완급을 조절하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 위기에 봉착하면 버려야 한다. 죽은 돌을 절대 키워서는 안 된다. 죽은 자식 불안 만지기식으로 버티지 말고, 파동이 변하면 과감하게 짧게 끊어야 한다. 반드시 챙길 것은 챙기고 줄 것은 주어야 한다. 아닐 때는 과감하게 돌을 벌릴 줄 알아야 상수이고, 선치중 후행마(先置中後行馬)이고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먼저 사활을 확실히 해 두어야 한다.      

    



74.

가만히 보면 주가가 멀리 갈 때는 대부분 범죄자의 심리처럼 한 파동 이후 강한 눌림이나 반등을 주는 경우가 많다. 출발한 자리 근처까지 따라 붙인 이후에 강하게 제 갈 길을 간다는 말이다. 이것이 한 파동 이후 눌림과 반등을 기다려서 진입하는 이유이자 투자를 기다림의 미학으로 논하는 이유다. 선물과 같은 양방향 게임을 한다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고, 파탄과 파멸의 위험을 늘 안고 있다는 것이고, 그 파편에만 맞아도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으니, 어찌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겠는가! 아파야 투자고 힘들어야 투자다. 성공의 토양인 소중한 원칙을 부여잡고 이겨내야 하고, 흐름대로 기준을 부여잡고 시세에 흔들리지 말고 시세에 길을 물어야 한다.          




75.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 항상 배우고 익히면서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누구나 삶에 녹이 슨다.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은 삶의 종착역에 이를 때까지 자신을 묶어두지 말고 거듭거듭 일깨워야 한다. 삶 그 자체가 되면 불행과 행복의 분별이 사라진다. 삶 자체가 되어 살아가는 일 그것이 불행과 행복을 피하는 일이다. 번뇌 밖에 따라 깨달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 밖 어딘가에 천국이 있다고 우리는 흔히 말하고 있지만, 천국은 바로 이 현실 세계에서 이를 수 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 아니라 새로운 날이다. 강물처럼 흐르는 에너지가 있다. 정신은 또렷하고 아무 번뇌도 망상도 없는 그 침묵 속에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다고 해서 혼돈 상태가 아니다. 강물처럼 끝없이 흐르는 에너지가 있다.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다. 내가 없는 그 무한한 공간 속에 무아의 경지에 든다. 어딘가에 순수하게 집중하고 몰입할 때 커다란 침묵과 하나가 될 때 내가 사라진다. <법정 스님 인생 응원가 중에서>           




76.

손실을 자르지 못하는 건 의사결정을 뒤로 미루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작위에 의한 후회를 하기 싫은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자리에서 대응하지 못하면 이후에는 증가하는 고통의 양으로 코마 상태에 빠지게 되므로 첫 번째 끊지 않으면 가격의 노예가 된다. 대응해야만 하는 자리에서는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하고 잘라야 한다. 확정 짓고 인정해야 다음번에는 좀 더 쉬워지면서 게임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 낚시할 때 찌가 들어가거나, 손에 감각적으로 느낌이 오는 것처럼 파동도 일정한 자리에서 손이 먼저 나가는 감각이 키워져야 한다. 이 감각이 없이는 확률 게임은 어려움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다림은 강태공 같아야 하고, 대응은 여포의 방천화극 같아야 한다. 흐름이 변하면 단칼에 잘라야 하고, 첫 번째 단칼에 자르지 못하면 심리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투자자는 은퇴하는 날까지 읍참마속의 군율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 아무리 잘하다가도 한순간의 태풍처럼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곳이 이곳이다. 지금의 아픔과 시림은 항상 염려하라는 신의 자상한 배려이고, 뼈에 새기라는 친절한 가르침이다.           




77.

누적 수익을 담을 항아리가 밑 빠진 독이어서는 안 된다. 투자에서 누적 수익을 담는 항아리는 8할 이상이 심리로 만들어지게 된다. ‘뇌동과 추격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익은 항아리 안에서 쌓이지 않는다. 항아리의 뚜껑은 생각의 찌꺼기로 되어 있다. ‘생각과 욕심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스스로 항아리를 막아버리기 일쑤이기에 수익은 쌓이지 않는다. 생각과 욕심으로 뚜껑이 닫히면, 항아리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뇌동과 심리 붕괴로 쌓이는 게 아니라 원래 들어 있었던 원금마저 금세 빠져나가게 된다. 가장 중요한 수익을 담아 항아리에 붓는 그릇은 바로 용기로 되어 있다. 원칙으로 정한 자리를 기다려서 확인 매매하는 ‘용기와 확신의 단계’로 접어들면 항아리에는 누적 수익이 쌓여가고, 작은 항아리를 가득히 채우면, 자신감은 조금씩 큰 항아리를 가득히 채워나가게 되는 ’온전한 객관화의 단계‘ 선순환의 구조를 이루게 된다.   

       



78.

파동에서 숱한 꼬리를 보라! 챙겨야만 한다는 것이고, 무식하게 들고 있으면 실패할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추세도 겹치면서 가고, 흔들리면서 간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추세도 겹치는 자리에서 내공이 아니고서는 견디지 못할 흔들림이 많다. 당연한 흔들림에 흔들리지 않는 익숙함이 내공으로 쌓이기 전에는 성공은 거의 불가능하고, 내공은 시간이 만든다. 그래서 투자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상승으로 가더라도 저점을 높이면서 간다. 흔들면서, 따라붙게 만들면서, 떨구면서 겹치면서 간다. 절대 쉽게 가지 않는다. 지치고 따라가지 못할 심리 상태가 되었을 때 쉬운 파동이 나온다. 그렇게 거의 모두가 실패하게 만든다.          




79.

노력과 반복 그리고 시간이 만든 참된 배움이 내 안의 다짐들을 지켜지게 하고, 그것들이 내 안에서의 투쟁의 대상이 아닌 일상이 되어버렸을 때 인생은 변하게 되고 참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이것은 당연히 아프고 힘든 과정들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받게 되는 인간의 성장에 대한 보상이다. 스스로 어찌어찌하겠다는 건 작은 의지의 삶이고, 객관적 시선으로 현상들에 침묵하면서 받아들이는 건 커다란 삶이다. 투자자들은 실력만큼 각자의 곳간을 시장에 보여지는 현상들로 채워나가면 된다.           




80.

보이면 진입하고 바뀌면 대응하면 그뿐! 수익과 손실 여부는 시장이 결정하고 투자자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면 된다. 상승추세가 이어지다가 매수의 환경이 매도로 변하면 그렇게 따라가면 되고 다시 지지가 되면 매수하면 된다. 추세가 달나라를 가든지, 지금 꼬꾸라지든지 상관이 없어야 한다는 건 보이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지금 보이는 현상이 전부라는 의미다. 내가 이러이러해서 진입했으니까 ‘go’가 아니다. 항상 어떠한 진입도 확률로 보고 ‘may go(갈 수도 있다)’라는 대응이란 예술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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