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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이 옳다는 확신을 내려놔야 한다.

by 황금지기

내 생각이 옳다는 확신과 내 생각 그 자체를 중시하는 마음, 이걸 내려놔야 한다. 한번이 천 번이 되고, 만 번이 되면서 그렇게 인생이 되기에 너무 좋아할 것도, 너무 싫어할 것도 없다. 모든 건 평균에 수렴하고 결국 내려놓을 수 있는 자기 그릇의 크기에 수렴한다. 매번 같은 확률 선상에 설 수밖에 없기에 내어줄 수 있는 자가 현명한 투자자다. 내어놓지 못하는 게 자만과 독선이고, 내려놓아야 이겨놓고 치면서 기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게 장기투자와 같고 유일한 길이다.




방하착(放下着). 내 생각이 옳다는 확신, 이걸 내려놔야 한다. 먼저 내 마음을 내려놓고 단지 흐름에 온전히 맡기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복리의 토대가 되는) 반복하는 마음이 싹을 틔우고 우람한 거목으로 자라게 된다. 멋지게 따라가겠다는 시도는 시장에 맡기는 여유롭고 덤덤한 이타적 마음이 만든 누적의 토대 위에서 나중에 판단할 일이다. 투자 대가는 좌뇌의 폐허 위에서 태어나고, 투자 대가에게 주관은 바쳐야 할 제물이며, 객관화로의 개종은 기본 항목이다. ‘손실 회피와 보전 효과 편향’이 인간이 본성이고, 이것은 시장의 절대 규칙 ‘손실은 짧게, 이익은 길게’와 정확하게 어긋나고 죽을 때까지 인간이기 때문이다.

① 주관적 개입의 결과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겠지만 주관적 개입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그 불편함은 심리적 흔들림으로 이어져 반복을 어렵게 한다. 웬만한 상수가 아니고서는 수시로 변하는 감정을 온전히 극복하면서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 어렵고, 전체 파동을 먹고자 하는 그 마음은 결국에는 시간과 돈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소음에 불과하다.

② 선인들의 선례에서 투자의 성공 공식은 복리를 이해한 장기투자이고, 인간의 본성을 극복하면서 그렇게 투자하는 방법이 매매 횟수와 평가 주기를 줄이는 것이다. 데이트레이딩도 영원회귀의 원칙을 세워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반복한다면 장기투자와 같다.

③ 잦은 개입으로 챙기고 자르면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이기심과 이길 수 없는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자만으로 끊임없이 오판한다면 소중한 하루하루 복리의 나날들이 허망하게 사라질 뿐이다.




방하착(放下着). 내 생각 그 자체를 중시하는 마음, 이걸 내려놔야 한다. 투자자는 자의식을 해체하고, 정체성을 새로이 만들고 유전자 오작동을 극복하기 위해 ’근거 있는 진입과 받아들이면서 반복하는 마음‘인 자신의 몫 이외에 모든 걸 시장에 맡겨야 한다. 자의식이라는 주관을 버릴 때 비로소 채울 수 있고, 너무나도 쉽게 글로 표현하지만, ’시장에 맡기는 마음과 반복하는 마음‘은 지금의 자의식이 진보에서 보수로 바뀌고 있는 것보다 몇 배로 힘든 일이다. 태생적 종교적 신념을 깨뜨리는 주관에서 객관으로의 개종과도 같은 것이기에 그렇게 시간이 더해지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또 다른 세계에서 또 따른 누군가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에 내려쳤던 아픈 세월을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면서 애태웠나 보다. 노란 꽃잎이 피려고 그토록 오랜 세월 무서리가 내렸고, 그렇게 나이가 들었고,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한번이 천 번이 되고, 만 번이 되면서 그렇게 인생이 된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면 천일, 만일이 온전해진다. 갈지 안 갈지, 멈출지는 시장 마음, 오직 하나 원칙을 반복하겠다는 마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음이다. ‘반복하는 마음’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올바름을 반복하면 하루하루가 복리의 나날들이다. 주식에서의 장기투자와 마찬가지로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데이트레이딩 관점에서의 장기투자 외에는 답이 없다. 그렇게 자식한테도 물려줄 수 있을 만큼의 장기투자 관점을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100년은 살 나무의 씨앗을 심어 물려주는 것이다. 주식투자의 비결이 좋은 주식을 골라서 장기투자 하는 것이라는 단순한 공식처럼 말이다.




사람은 기대치가 커지게 되면 나쁜 사람이 되거나 어리석은 사람이 될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그래서 기대치를 버려야 행복을 가까이 두게 되고 성공할 확률도 버리는 만큼 오히려 높아지게 된다. 투자에서도 기대치를 버려야 챙기게 되고, 한방과 기도, 뇌동과 추격이란 멍청한 행위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지게 된다. 무언가를 이룬다는 건 절대 쉽지 않고, 과정들이 다 좋을 수는 없는 법이다. 너무 좋아할 것도, 너무 싫어할 것도 없다. 모든 건 평균에 수렴하고, 결국 자기 그릇의 크기에 수렴한다. 평균을 높이기 위해 실력을 쌓아야 하고, 그릇을 키우기 위해 소양을 쌓아야 한다.




보통 어떤 일이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게 되는 이유가 뭔가를 잘못해서 실패하는 것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데 그런 잘못에 의한 실패보다는 지루함이 문제다.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보통 이렇게 지루함이 찾아오는데 사람들은 이 지루함을 지루함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다른 걸로 좀 핑계를 댄다. 반드시 필연적으로 그 안에는 지루함이나 지겨움, 했던 걸 또 해야 하는 그런 짜증스러움 이런 감정들을 느끼게 되고, 그 감정을 느낄 때가 오히려 안전하게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성공의 가장 큰 위협은 실패가 아니라 지루함이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




두 개를 주고 두 개 이상을 바라면 그는 나쁜 사람이거나 멍청한 사람이다. 두 개를 주고 한 개를 바라면 그럴 수도 있고 (이미 내 손을 떠났으니까) 주고 잊어버릴 수 있는 그가, 기대치를 버릴 줄 아는 그가 현자다. take에만 좋은 사람이기 힘들고, give & take 하는 사람은 그저 그런 사람이다. give에 치우친 사람 중에 현자가 많다. 시장에서는 매번 같은 확률 선상에 설 수밖에 없기에 아니면 줄 수 있는 자가 현명한 투자자다. 인간은 ‘민감도 체감성’으로 인해 같은 금액이 늘어나도 재산이 작을 때는 손익 민감도가 크지만, 재산이 많을 때는 손익 민감도가 떨어진다. 그러기에 멀리 보면서 작은 것들을 내어줄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대부분 투자자가 적은 돈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투자를 극적으로 망가뜨리는 건 너무나도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꿈을 위해 작은 것들을 시간과 함께 내어줄 수 있어야 돈이 되지 않는, 망가지기 쉬운 시간을 버틸 수 있다. 인간이기에 여유롭고 덤덤한 마음은 누적 수익에서 나오지만, 대부분 투자자는 종잣돈이 적어서 돈에 너무나도 민감하기에 제대로 다루기 위해 큰 노력이 들어가지만, 일정 단계를 넘어가게 되면 민감도가 떨어져서 저절로 돈이 돈을 불러들이는 선순환 구조를 쉽게 만들 수 있게 된다.




박해영의 「나의 해방일지」라는 작품에서 대략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지구상의 인구를 1원짜리 동전으로 치환하면 77억 개고, 5천 톤 정도라고 한다. 그 정도면 우리가 고개를 돌리면 흔히 볼 수 있는 산만하다. 1원짜리에 불과한 내가 죽기 살기로 기를 쓰고 살고 있지만, 저렇게 쌓여 있는 1원짜리 산에서 1원짜리인 나를 찾을 수나 있겠는가? 1원짜리가 참 요란하게도 산다.’

뇌동에 빠지는 건 산을 바라보면서 1원짜리에 불과한 존재를 성찰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더 큰 문제는 그 부족함조차도 모르기 때문에 자만과 독선에 빠진다는 것이다.




거인의 어깨 위에 서면 돈의 길이 보인다. 몇 년간의 고생 끝에, 돈과 시간을 낭비한 끝에 깨달은 결론이 이미 경제학자들의 책에 나온 몇 줄 조언에 불과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면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바보짓을 했는지 깨닫고 후회하지 않겠는가? 원리도 모른 채 열심히만 하면 빨리 망할 뿐이다.

<부의 인문학 – 브라운스톤>

선인들의 선례를 제대로 배우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 상태의 인문학적 소양이 너무나도 부족했던 1원짜리 인간일 뿐이었던 그때는 자신과 거대한 숲인 시장의 관계 즉 지피지기(知彼知己)의 관점으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시장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장기 투자해야 한다는 시장의 기본 원리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실력이 부족함을 몰랐을뿐더러 자만과 독선이 더해져 결코 이길 수 없는 시장을 이기고자 했기에 (마치 신기루를 찾듯이) 인생을 그렇게도 지독하게 낭비했다. 그 어떤 비법도 존재할 수 없으며 이겨놓고 치면서(근거 있는 진입과 ’손실은 짧게, 이익은 길게‘ 반복하는 것), 기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유일한데도 말이다. 그 외에 모든 것들은 선인들의 선례에 비추어 시간 낭비다. “원래 하나만 아는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제일 무섭다”라는 말을 경험으로 새길 수밖에 없었고, 「부의 인문학」이라는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으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기 쉽고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기 쉽다. 우리의 본능적 직관에 따르면 그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라는 표현에 고개를 숙였다.




케인스는 인간의 본성은 근시안적이라고 보았다. 케인스는 인간은 멀리 있는 이득일수록 더 높은 비율로 할인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 때문에 단기투자보다 장기투자가 유리하다고 케인스는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상당량의 주식을 비가 올 때나 안 올 때나 몇 년 동안 꾸준히 보유할 수 있어야 투자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부의 인문학>

데이트레이딩을 선택한 투자자는 검증된 원칙이란 틀 안에서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게 장기투자와 같고 (그래도 어렵기는 매한가지겠지만) 그나마 유일한 길이다.




투자를 망치는 2가지 편향은 바로 과도한 자신감과 낙관론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세일러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투자자들의 최대 실수는 과도한 자신감이다.” 빠른 생각은 미래를 알 수 있다는 잘못된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미래를 잘 전망할 수 있다고 과신한다. 미래는 알 수 없다는 생각은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과거 때문에 약해지기 때문이다. 빠른 생각은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서 믿으려 하는 편향이 있기에 정확한 미래 예측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오늘 생각했을 때 이해되는 일 때문에 어제가 예측할 수 있었다는 강력한 직관을 거부하기 힘들다. 사후 해석을 잘한다고 해서 미래 예측을 잘할 수 있는 건 아닌데도 미래 예측을 잘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쉽다. 또 빠른 생각은 과도한 낙관적 편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과도한 낙관론을 가지고 태어난다. 낙관적인 편향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게 하고, 면역 기능을 더 강하게 하여, 건강하게 장수할 확률을 높여 주고,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쉽게 만든다. 낙관론 편향은 삶에 대체로 유익하지만, 투자자를 실패로 유도하기도 한다.

<부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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