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세계에 발을 들여 조그만 깊이만 더해봐도 뼈저리게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투자의 가장 무서운 적은 시장도 세력도 아닌, 바로 내 안의 성급한 인간 본성이라는 점이다. 파동은 늘 고만고만하다. 고로 절대 쉽지 않다(It’s not easy). 만약 살아가는 동안 투자를 성급함을 극복하기 위한 수련의 도구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매매는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람이란 나무와 같아요. 당신도, 버찌가 열리지 않는다고 무화과나무와 싸우지는 않겠지요?” 그렇다. 오늘 어떤 성격의 파동을 만나든, 그것과 싸우려 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쉬운 파동은 제각각이다. 고로 다 좋을 수는 없다(It can't be all good). 터무니없는 확신을 극복하는 도구로서 투자를 대한다면 마음은 한층 더 고요해질 것이다. 복잡계인 시장의 파동은 본질적으로 어렵기 마련이며, 이를 대하는 투자자의 마음 또한 제각각이다. 일순간의 기분에서 태어나 뇌동을 부추기는 확신, 그리고 주가를 따라다니게 만드는 진화론적 생존본능인 성급함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그 자체로 삶의 커다란 결실이다.
시장은 싸움터가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수련장이다. 무화과나무에서 버찌를 찾지 않듯, 어려운 파동에서 억지로 수익을 짜내려 들지 말아야 한다. 조급하게 만드는 것은 파동을 바라보는 마음이다.
“삶은 어떻게 보면, 포커판과 같다. 무척 좋은 패를 쥐고도 판을 접을 줄 알아야 한다. 실수, 그리고 확률을 바꾸는 새로운 사실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찰리는 언제 패를 쥐어야 하고, 언제 패를 버려야 하는지, 또 언제 물러서야 하는지 아는 사람입니다.”
<데이비드 클라크, 찰리 멍거의 말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듯,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익사하는 법이다. 수영을 못하는 이는 깊은 물을 멀리하지만, 설익은 기술을 믿는 이는 제어할 수 없는 물살에 몸을 던지기 때문이다. 정제되지 못한 날것의 지식은 늘 화를 부른다. 무엇을 모르는지 솔직히 인정하는 것은 소를 잃기 전 미리 외양간을 고치는 지혜이며, 이는 동시에 외양간을 더 넓게 확장하는 배움의 토대가 된다. 조금씩 현명해질수록 우리는 역설적으로 자신이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깨닫게 된다. 그 겸허한 인식이 비로소 독선과 아집, 그리고 지독한 자만이라는 맹수로부터 외양간의 소중한 소들을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된다.
물러서는 행위는 전부를 지키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기법(패)을 가졌어도 시장의 상황(확률)이 변했다면 미련 없이 던질 줄 알아야 한다. 상수는 좋은 패를 쥐는 법보다 위험한 패를 버리는 법을 먼저 배운다.
“최고의 투자 전략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이 매도할 때 오히려 매수하는 역발상 투자입니다. 그리고 서두르지 않는 건 서두르는 사람, 즉 거의 모든 세상 사람 반대로 행동하는 겁니다. 찰리는 투자 기회를 찾는 게 아니라 올바른 장기투자 기회가 적절한 가격에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겁니다. 찰리가 보통의 투자자와 비교해 가진 이점이 바로 기다림입니다.”
<데이비드 클라크, 찰리 멍거의 말들>
진정한 지혜는 자신의 무지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순간의 여명에서 밝아온다. 시장 앞에 오만했던 자아를 내려놓을 때 확률을 바꾸는 새로운 사실들을 투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투자의 본질은 시장이 실수하여 ‘가격이 잘못 매겨진 도박’을 끈질기게 찾아내는 일이다. 본질이 부패한 대상에 아무리 달콤한 수식어를 섞어본들, ‘똥에 건포도를 섞어도 결국 똥’일 뿐이라는 냉혹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큰 베팅의 순간은 인생에서 그리 자주 오지 않는다. 실수를 감당할 능력을 평소에 갖추어 두는 것이 삶과 투자의 비결이며, 그렇게 힘을 비축하다가 이길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순간이 왔을 때 베팅하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기다림이라는 이점을 가진 자만이 시장의 실수를 가장 큰 수익으로 바꿀 수 있다.
세상 만물은 각자만의 고유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현명한 투자자는 시장의 방향과 속도를 억지로 맞추려 애쓰는 대신, 시장의 에너지와 자신의 에너지를 일치시키는 데 집중한다. 몸이 건강할수록, 부유할수록, 그리고 마음이 행복할수록 투자자의 에너지는 정화되고 커지며, 시장 에너지와의 간극이 좁혀진다. 수많은 경험이 켜켜이 쌓이고 내공이 깊어지며 통찰의 눈이 열려야만, 에너지는 시장의 파장에 가장 근접하게 맞닿는다.
조금만 기다리면 교차로의 신호가 바뀌듯 자리는 자연스레 만들어지고, 원칙대로 대응하면 물레방아가 돌듯 다음 자리가 형성된다. 투자의 본질은 시장이 어디로 갈지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가는 방향을 겸허히 뒤따르는 것이다. 억지로 맞추려 들지 않고, 흐름 속에서 파동이 그려지는 대로 오직 실력의 크기만큼만 취하겠다는 마음이 핵심이다. 원칙을 반복하며 잃지 않는 매매를 이어가는 것은 칠흑 같은 밤바다에서 끊임없이 등대를 응시하며 항해하는 것과 같다.
지켜낸 원칙은 감각을 키워내는 최고의 양분이다. 맞추려 하지 말고 감각이 깃들도록 흐름에 스며 들어가야 한다. 당신의 에너지가 시장의 파장과 하나 된 수익은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축복이다.
박스권의 흐름은 유리함과 불리함이 뒤섞여 고만고만하기에 어렵고, 강하게 치고 나가는 쉬운 파동은 또 저마다의 성질이 제각각이라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이처럼 고만고만한 파동들에 적응해 나가는 시간이 곧 투자의 공부이며, 선순환의 경험을 통해 유리한 방향의 확률을 찾아가는 과정이 진정한 배움이다. 투자자에게는 두 번의 결정적 해방이 필요하다. 뇌동과 추격의 사슬을 끊어내는 것이 그 첫 번째 해방이요, 그 너머에서 시장의 등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유롭게 대응하는 것이 두 번째 해방, 즉 진정한 자유다. 이 치열한 사투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기록이 바로 투자자의 해방일지다.
세상은 똑똑함을 칭송하지만, 투자의 세계에서는 똑똑함은 수십 가지의 핑계와 이유를 만들어 낼 뿐이다. 결과를 수십 배로 만드는 것은 오직 꾸준함이다. 똑똑함은 인간의 치명적 불치병인 ‘자만’이 자라기 가장 좋은 토양이기 때문이다. 그 비옥한 오만의 토양 위에서 진화론적 성급함과 욕심, 그리고 터무니없는 확신은 독버섯처럼 피어난다. 결국 투자는 내 안의 본능을 꾸준함으로 이겨내는 인격의 단련이다.
똑똑함은 변명을 낳지만, 꾸준함은 압도적인 결과를 낳는다. 투자는 뇌동의 사슬을 끊고 시장의 등락을 수용하는 '해방'의 과정이다. 자신만의 해방일지는 똑똑함이 아니라 꾸준함이 쓰는 것이다.
“성공적인 투자는 상황 대처 능력과 인내심이라는 말도 안 되는 조합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기회가 나타나면 곧바로 거머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기회는 그리 오래 남아 있지 않기 마련이니까.”
<데이비드 클라크, 찰리 멍거의 말들>
시장에서 성공하기란 이토록 어렵다. 원칙을 세우고 끝까지 버티는 인내심과 더불어, 감각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만족과 멈춤’으로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대응력이 동시에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입 밖으로 튀어 나가려는 말을 혀끝으로 삼키는 횟수만큼 현명해진다. 지혜는 내뱉는 말보다 삼키는 침묵 속에 깃들기 때문이다. 원칙 밖의 자리에서 사고팔고 싶은 치명적인 욕구를 손끝에서 멈추는 횟수만큼 그는 성장하며 성공의 궤도에 진입한다.
진정한 실력은 마우스 버튼을 클릭하는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본능의 소용돌이를 억제하는 ‘멈춤’에서 완성된다. 투자자는 무분별한 실행보다는 절제를 통해 단단하게 성숙해진다. 손끝에서 멈춰 세운 무의미한 매매는 하수의 늪에서 건져 올려 상수의 길로 인도하는 빛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절제는 가장 적극적인 투자 행위다. 무분별한 매매를 멈추고 내면의 에너지를 응축할 때, 찰리 멍거가 말한 '찰나의 기회'를 단칼에 베어낼 수 있는 진정한 힘이 생겨날 것이다.
“실수 없이 좋은 삶을 사는 건 불가능하다. 삶의 비결 중 하나는 실수를 감당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현실 부정을 고치지 못하면 망가지기 쉽다.”
<데이비드 클라크, 찰리 멍거의 말들>
투자에서 실수를 감당하는 능력이란, 언제든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오답을 확인한 순간 즉시 손실을 짧게 확정 짓는 태도를 의미한다. 열 번 중 여섯 번만 맞혀도 훌륭한 투자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음에도, 대중은 현실을 부정하며 버티고 기도한다. 그 끝에 찾아오는 뇌동과 한방에 대한 유혹은 결국 계좌를 망가뜨린다.
여름날 날씨가 흐릴 때 우산을 챙기는 준비성도 중요하지만, 정작 예상치 못한 비를 만났을 때 더 중요한 것은 우산을 챙기지 못한 자신의 실수를 즉각 인정하는 것이다. 비를 맞으며 뛰기보다 잠시 멈춰 서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서두르지 말되 멈추지 말라"라는 격언이 투자자에게 실현되려면, 손실 상태에서 반드시 실수를 인정하고 매매를 멈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멈추어야 할 때 멈출 줄 아는 자가 끝까지 완주할 수 있다. 실수는 인정하면 자산이 된다.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함이 손실을 키우고, 그 커진 손실이 다시 뇌동을 부르는 것은 인간의 생리다. 투자의 성패는 실수를 얼마나 완벽히 피하느냐가 아니라, 발생한 실수를 얼마나 정직하게 인정하고 감당하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지금껏 끊임없이 독서하지 않는 현명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단 한 명도, 워런이 얼마나 책을 읽는지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내가 얼마나 읽는지 알아도 마찬가지고, 우리 아들은 나를 발이 달린 책이라고 놀린다.”
<데이비드 클라크, 찰리 멍거의 말들>
찰리 멍거의 이 서슬 퍼런 단언은 투자의 성패가 어디에서 갈리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몸에 때가 끼듯, 마음에도 불쑥불쑥 솟아나는 터무니없는 확신이나 순식간에 영혼을 움켜쥐는 자만심 같은 안개가 수시로 피어오른다. 육체를 위해 매일 아침 세수하듯, 투자자의 머릿속 또한 매일 씻어주어야 한다. 주기적으로 목욕탕을 찾아 몸을 닦듯, 우리에게는 깊이 있는 사색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냥 걷는 것이 육체 건강을 위한 최고의 사색이라면, 그냥 책을 읽는 것은 머릿속의 오염된 생각들을 씻어내는 최고의 방법이다. “지혜를 원한다면 책상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라”라는 멍거의 가르침은 단순한 근면을 넘어, 지혜가 머무를 수 있는 깨끗한 마음에 집중하라는 엄중한 명령이다. 독서는 새로운 지식을 채우는 행위이기에 앞서, 탐욕의 찌꺼기와 오만의 안개를 닦아내는 성스러운 의식과도 같다.
마음은 파동을 왜곡 없이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 멍거가 평생 '발 달린 책'으로 살았던 이유는 지혜를 뽐내기 위함이 아니라, 매 순간 찾아오는 인간 본성의 오류로부터 자신을 깨끗이 지키기 위함이었다.
원초적인 도박적 사고에서 냉철한 확률적 사고로 진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 이것이 바로 한 투자자의 성패를 결정짓는 결정적 임계점이다. 인간은 본래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삶의 참된 의미는 정답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닌 것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며 오답을 줄여가는 과정에 있다. 평범한 일상에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고요함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대개 나쁜 일을 겪고 나서야 뒤늦게 깨닫곤 한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깨칠 수 없고, 아픈 경험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변화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 짊어진 숙명이다.
그러나 모든 경험이 성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직 올바른 경험의 토대 위에서만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투자자는 초보 운전자 시절에 갖게 되는 어설픈 자신감, 즉 시장을 다 알았다는 착각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공든 탑은 외부의 충격이 아니라, 내면의 자만심 앞에서 너무나 허망하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경험은 시간과 등식을 이루고, 시간은 익어갈수록 고개를 숙이라 명한다. 겸손할 수 있을 때 더 빨리, 그리고 더 현명하게 시장의 진실을 경험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겸손은 경험을 부드럽게 숙성시킨다. 어설픈 자신감은 눈을 가리지만, 겸손은 보이지 않던 파동의 결조차 보이게 할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원칙의 하루"에 감사하라. 그것이 바로 가장 높은 수준의 수익이 잉태되는 평온한 평상심이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항상 쉽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직감이라는 강력한 충동을 이겨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다. 석기시대 이후 바뀐 게 없는 우리 두뇌는 신체적 위험에 대한 대응에는 소질이 있을지 모르지만, 형편없는 투자 매니저 역할을 하는 여러분의 투자 직감을 통제하는 것도 똑같은 그 뇌라는 사실을. 우리는 누구나 쉽게 탐욕과 공포, 후회와 과신, 그리고 석기시대 두뇌에 굴복하기 때문이다.”
<켄 피셔, 투자의 배신>
시장의 급등락이 시작되면 뇌는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불안해하며, 절묘한 개입이라는 ‘묘수’를 찾아 끊임없이 유혹한다. 하지만 그 유혹에 빠져 개입하면 심리적 타격은 물론 미래의 수익마저 갉아먹는 참사가 자주 벌어지곤 한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적극적인 전략이다. 뇌동과 추격의 사슬에 갇혔던 ‘서정적 태도’라는 첫 번째 알을 깨고, 상황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던 ‘이기적 태도’라는 두 번째 알까지 깨야만 한다. 두 겹의 껍질을 부수고 나올 때, 석기시대 두뇌의 명령에 ‘No’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할 때가 생각보다 많다. 뇌가 속삭이는 "지금 안 하면 늦어"라는 말은 석기시대 맹수를 피해 달아나라는 생존 신호일 뿐이다. 묘수를 찾으려 애쓰지 말고, 원칙이라는 요새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