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자대학교 '현대소설강독' 수업의 중간 과제였던 글
1. 서문
우리가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스로를 존재시킬 수 있다면 단장도, 포장도, 구걸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존재라는 것은, 상기시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증명되지 않고서는, 누군가의 존재를 빌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존재의 어려움은, 심지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누군가와의 관계, 누군가의 인정에 대한 갈망은 우리 안의 심장으로부터 출국한다. 얕은 감정에도 쉽게 흔들리는 값싼 비행기를 타고, 타인의 심장에 당도하는가 싶다가도 쉽게 잊혀지며, 어느 순간에는 그대로 불시착하여 벗어나지 못하는 때도 있다. 이렇듯 존재에 대한 고민은 근본적이다.
우리는 소설을 쓴다. 그래서 소설은 존재에 대해 고민한다. 소설은 사색하기 좋은 고독한 방이다. 소설읽기는 그러한 고독한 방을 제공받는 것이다. 우리에게 공간이 얼마나 각박한 시대인가? 이러한 시대에 마음껏 고독할 수 있는 방은 사색의 아량을 베푼다.
소설 속 인물과 서사는 마음껏 고독하다. 그들을 존재하게 만드는 것은 모두 다르면서도 하나로 종결된다. 그들은 고독을 사랑하는 체한다. 하지만 역시, 오늘도, 존재라는 것은 상기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을 상기시키는 과정을 괴롭게 공감하며 지켜본다. 다행히, 소설 속 그들은 소설이니만큼 자유롭게 누군가의 마음에 불시착하여 오래도록 처박혀있다 먼지를 털고 일어나기도 하고, 끝끝내 먼지를 안 털어내어 회색 인간이 되기도 한다.
불가결한 실패. 존재는 관계를 실패하는 것의 반복이다. 완벽한 관계도, 완벽한 존재도 없다. 이번 학기 감사하게도 책을 참 많이 읽었다. 엉성한 관계들을 많이도 읽어 내렸다. 엉성하고 꿋꿋한 존재들을 만나며 나는 나를 수치스러워할 때도 있었고, 나를 당연시 여기게 된 적도 있었다.
고독한 방에서는 누구나 솔직하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는 적어도 그러하다. 괴로울 때까지 존재를 사색하다 눈물을 흘려도 그 눈물은 정당하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것은 아마 감정 덕분일 것이다. 소설로부터 얻는 감정은 나로부터 표출되는 외침이다. 우리는 마음껏 스스로를 고민하고, 고독해한다. 그래서 우리는 존재한다.
우리가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질문에서 우리는 고독한 방으로 수그려 들어간다. 그 안에서 마음껏 고독하다 밖으로 나올 때 몸을 편다. 그래,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 단장도, 포장도, 구걸도 없이 눈물의 무게를 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어느 한 번이라도 누군가의 심장에 당도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자신이 없다. 그저 스스로 완벽하지 않은 존재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오늘도 고독한 방으로 몸을 수그려 들어갈 뿐이다. 방 안에서 존재에 관한 책들을 종종 만난다. 어떤 이는 돌아오기 위한 외출을 하고, 어떤 이는 다시 고독해지기 위한 관계를 맺고, 어떤 이는 외로움에 상처를 내어 빛을 회상한다. 우리는 이들 모두에게 우리 심장의 단칸방을 내어주고 있다. 그들은 우리 심장 속에서 출발한다. 얕은 감정에도 쉽게 흔들리는 값싼 비행기를 타고, 타인의 심장에 당도하는가 싶다가도 쉽게 잊혀지며, 어느 순간에는 그대로 불시착하여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그렇게 무던히도 살아가다 느닷없이 마음속에서 발견하는 당신들로 인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