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2. 존재하기 위하여; 귀환
2.1. 소설의 맹점
소설가 구보씨는 ‘돌아오기 위해’ 외출한다.
2.2. 존재하는 구보씨
고백하자면, 구보씨에게 내 심장 속 단칸방을 세내어주기 시작하며 다시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재차 고백하자면, 소설가 구보씨는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고현학. 재차 읽어보니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고현학의 백미白眉이다. 유난히 특별할 것 없는 누군가의 세밀한 하루는 다시, 그 시대의 하루이다. 시대라는 쌀밥을 짓기 위한 백미白米로서 다시 구보씨의 일일은 특별해진다.
이는 소설이 기록하는 존재인 까닭이다. 박태원은 구보씨의 하루를 기록한다. 기록 :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 또는 그런 글. 구보씨는 분명 존재했던 이나 다름없다. 구보씨의 일상성은 생생하다. 정교한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구보씨는 끊임없이 걷고, 전차에 오르고, 끽다방에서 친우를 기다리고, 가배차를 위한 동전을 튕긴다. 고현학은 회색 지대에 존재한다.
그래서 고백하자면, 소설가 구보씨의 몰개성―그는 당시의 보편적 예술적 고독과 고통을 지님으로서―은 아는 만큼 보인다. 개인적으로 그의 일상성에 가졌던 유감을 무마하고 싶다. 구보씨가 걷는 곳을 명도로 칭하며, 그제서야 구보씨가 생생한 존재로 다가왔다. 나는 식민지 시대를 무엇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식민지 시대에 대한 사후적 편견이야말로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구보씨의 존재를 느닷없이 내 안에서 발견한 것도 그의 회색성을 인지하고부터였다.
구보씨는 길 위에서 행복을 찾아보고자 대문 밖으로 나선다. 서운한 어머니를 집 안에 두고 구보는 걸음을 뗀다. 그는 한때 고독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위안이었음을 상기하며, 구보는 전차에 오른다.
구보는 동전을 세며, 돈은 행복이 될 수 없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우연히 전차 안에서 일전의 ‘색시’를 알아보며 그녀가 내 마지막 행복이었나,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벗의 누나를 좋아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결혼은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섭의 번거로움.” 구보는 그리 생각한다.
황금광 시대. 황금광을 쫓는 것이 거리를 떠도는 것보다 나은가? 구보는 괜히 열등생 벗의 여인이 황금을 쫓아 그를 선택했으리라 무례한 짐작을 하며 애써 고민에서 벗어난다.
그렇다면 벗들이 기쁨을 주는가? 오래도록 편지도 받지 못한 사이들을 떠올리며, 구보는 자신의 방에서 몇 장이고 친우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을 생각한다. 어느 단편소설의 비속하지는 않을 결말로 나쁘지 않으리라 짐작하며, 다시 구보는 걸어간다.
구보는 못내 방황하다시피 들어간 카페에서 술에 취한다. 밤의 즐거움은 한편으로 늙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구보는 퍼뜩, 정신을 차린다. 집으로 돌아가자. 집에서 창작하리라. 벗은 작별인사를 한다. “좋은 소설을 쓰시오.”
구보씨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못난 부분도 가감없이 드러내며, 그는 행복을 질문한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행복은 손쉽게 떠오르는 대답이다. 어쩌면 행복은 우리를 존재하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존재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구보씨는 원초적으로 돌아간다. 회귀 :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거나 돌아감. 회귀의 형식을 띄는 이 소설의 처음과 끝에서 구보는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를 존재하게 하는 것은 떠나온 것에 있다. 연금술을 꿈꾸는 양치기 산티아고처럼. 구보씨의 예술가로서의 고민과 존재하기 위한 고민은 모두 그의 안에 있다. 그는 존재하기 위해 멀리 떠나 귀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