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소화불량
문체의 아름다움이 작품성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사회성을 기반으로 한 도덕성이 잡힌 이후의 독서는 달라졌다.
아름다운 문체가 감히 부도덕한 내용을 포장해도 되는 것인가.
한 번 내용에 대한 거부감이 들자, 아름다운 문체는 뒷전이 되었다. 아니, 오히려 아름다운 문체조차 얄팍한 포장지로 보였다.
물론 이런 경우는 대개 고전 문학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시대착오적 발상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전이 시대착오적인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고전은 당연히 시대착오적이다.
그럼에도, 굳이 고전을 읽어야 할까,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전문학의 문체를 넘어 급습하는 시대착오적 오류에서 멀미를 한다.
과연 우리는 고전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아름다운 문체?
실제로 나는 역겨운 내용 속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문장을 다수 발견하곤 하였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극찬하시는 작품. 하지만 그들은 죽은 이의 것이며 나는 살아 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현재에게 고전이란 무엇인가.
물론 추악한 인간 내면의 나열은 인간의 복잡함을 설명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당연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흔하게 등장하는 고전의 불륜 소재...
인간의 복잡함과 양면성을 설명하는 수단이 오직 불륜 뿐인가?
심지어 불륜을 수단을 넘어 사랑으로 재단하고, 발전시키는 내용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 문제는 아마 문학의 도덕성에 관한 문제와 밀접할 것이며, 문학에 대한 도덕성의 요구는 보통 예술성과 충돌하고, 더 나아가 검열에 대한 요구로 나아갈 수 있는 민감한 문제이다. 나 또한 문학은 예술임을 인정한다. 그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오히려 요즘은 젊은 작가 시리즈를 즐겨 본다. 그것들이야말로 내 마음을 편하게 한다. (그 이유; 과거, 소설의 저자는 대부분 남성이었으며, 남성이 주목받았다. 그리고 당시의 시대 배경 속에서 남성의 불륜에 대한 개방성 또한 상대적으로 대단하였다. 따라서, 남성 작가의 글이 고전의 대부분이며 남성 작가의 글은 그 당시의 남성을 담아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작가들은 살인마가 된 재수생,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청년 등, 전혀 다른 주인공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독자가 아는 그대로의 현재-현실-이다.)
물론 독서가 편한 것은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고전의 시대에 불륜이 흔했다고 해서 불편한 독서를 할 필요도 없다고, 자유인은 생각한다.
책벌레나 다름 없던 어린 시절, 아름다운 문체만을 쫓아 역겨운 내용도 참아가며 읽던 스스로에게 아이러니를 느낀다. 문학적 성장에 있어 불필요한 과정은 아니었지만, 무지한 흡수에 있어 나의 도덕성은 분명히 영향을 받았음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나의 시대를 살련다. 나의 시대를 읽어 보련다.
그들도 언젠가 고전이 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