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태현 Sep 03. 2024

남집사와 고양이

남자친구와 결혼을 전제로 합가를 하게 되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다름아닌 로즈였다. 물론 남자친구는 내 방에 놀러올 때마다 로즈를 살뜰히 귀여워해주었지만, “여자친구의 고양이”와 “우리집 고양이”는 하늘과 땅 차이란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방심할 수 없었다. 여자친구의 고양이는 마냥 귀엽기만 하지만, 우리집 고양이는 커튼, 이불, 소파를 뜯어놓기도 하고, 새벽 다섯 시에 밥 달라고 울어제끼기도 하고, 숨 쉴 때마다 털을 뿜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매일 화장실을 치우는 것은 기본이고 가끔은 토해놓은 것도 치워야 하고, 하루만 청소기를 돌리지 않아도 발바닥에 털과 모래가 밟히는 것이 냥집사의 삶인데, 이런 생활을 남자친구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 정말로 걱정스러웠다.


천만다행으로 나의 걱정은 괜한 걱정으로 끝났다. 예민한 완벽주의자라 때로 별것 아닌 일에도 난리법석을 떨곤 하는 나와 달리 남자친구는 오히려 더 너그럽고 관대하게 로즈를 품어준다. 로즈가 말썽을 부리거나 사고를 쳐서 내가 속상해하고 있을 때도 “동물들이란 그러기 마련이야”라면서 평온하게 상황을 해결한다. 한 번은 로즈가 중성화 수술을 받고 이틀 후, 아물어가던 환부에서 피가 나는 걸 보고 내가 패닉에 빠져 울기 시작하자 “엄마가 울어서 놀랐지?”라면서 로즈를 토닥여주고, 나한테도 “병원에 가야 알 일이니까 지금 우리가 울 필요는 없어”라며 다독여주었던 적이 있다. 그 때 이 사람은 분명 좋은 집사이자 좋은 아빠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 확신은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오고 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우리집 남집사는 간간이 로즈의 모습도 그렸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을 알고 “이거 번역해서 올려도 돼!”라고 하기에, 그렇지 않아도 올리고 싶어서 눈독 들이고 있던 나는 그 제안을 냉큼 수락하였다. 아래의 그림들이 바로 내가 탐내고 있던 그 그림들이다.

1. 중성화 수술을 한 고양이

(환묘복을 입고 있다)

로즈: 인간… 용서 못해…

남자친구: 머리 엄청 크다

2. 이틀 째 화장실에 가지 않고 있다

남자친구: 변비일까… 진짜 안 싸고 있는 걸까

3. (하지만 화장실 뚜껑을 열자)

남자친구: 앗

로즈: 휘융

4.

남자친구: 건강이 최고야

로즈: (볼일 보시는 중)

남자친구: (응가) 냄새나


로즈가 중성화 수술을 했을 때 환묘복을 입혔는데, 딱 달라붙는 옷 탓에 몸통의 털이 얼굴과 다리로 쏠려서 굉장히 뚠뚠한 실루엣이 완성되었다… 이때 남자친구가 로즈 얼굴이 엄청나게 커졌다며 놀라워했는데, 그때의 로즈를 캐릭터화 시킨 것.

이 얼굴이 바로 위 만화에 나온 “인간… 용서하지 않겠다…”의 표정이다.

이랬던 일도 벌써 팔 개월 전. 보다 최근의 그림은 다음과 같다.


고롱 => 배를 만짐 => 짜증…

バッタ(메뚜기)와 대치 중.

가끔 발이 없어짐.

(대체로 평범한 식빵 자세를 취하는 로즈지만, 가끔씩 앞발을 숨기고 앉을 때가 있다)

문질문질.

로즈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발을 좋아한다. 냄새가 날 수록 좋은 건지, 비 오는 날 젖은 양말로 집에 들어가면 아주 캣닙에 버금가는 반응을 보여준다… 가끔은 손으로 쓰다듬는 것보다 발로 쓰다듬어주는 걸 더 좋아한다. 이래도 되나 싶지만 반응이 열광적이니… 좋으신 대로 해드려야한다.

식빵에서 => 늘어남… “규루에”

규루에가 뭐냐고 물어보니 고양이가 내는 그 꾸루룩 소리라고.

탐스러운 엉덩이.

탐스러운 엉덩이 실사.

남집사의 엉덩이도 좋아합니다.


삶을 살다보면 종종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존재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아서 괴로울 때가 있다. 만약 남자친구와 로즈의 사이가 나빴다면 나는 정말 이도 저도 못하고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가끔 내가 질투할 정도로 사이가 좋은 둘을 보며 나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런 행복과 평화가 오래 가기를 그저 바라고 또 바란다.



(본 글에 올라온 모든 그림과 만화는 바바 코타의 트위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twitter.com/Postbhabha) ​)

이전 06화 주말 동안 라이프치히에 다녀왔습니다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