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abomber: In His Own Word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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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유나바머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었다. 어디선가 이 다큐를 추천해서 메모해놨었고, 근데 그 메모조차 오래전이라 무엇을 보고 왜 메모해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유나바머에 대해 따로 찾아본 것도 아니었다. 그냥 모르는 채로 살다가 문득 생각나서 재생을 시작했다.
일단 다큐멘터리 자체는 잘 만들었다. 50분 정도 분량의 총 4회. 짧지 않지만 긴 영상을 보기 힘들어하는 나의 입장에서 질리지 않고 머뭇거리지 않고, 중간에 공백기도 생기지 않고 잘 보았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나에게도 많은 것을 알려주었고, 배치를 다양하게 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가 완전히 끝날 즈음에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부분이 있었다.
논조도 적당했다. 범죄자의 이면을 알다 보면, 말마따나 가해자에게 서사를 주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늘 적당한 선을 찾는 것이 어렵다. 어디까지 어떤 식으로 드러내야 존재했던 사실도 드러내면서, 또 엄청난 피해자가 존재하는 가해자에게 연민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도 잘 만든 다큐멘터리였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다큐멘터리 내에서 나온 내용만을 바탕으로 나의 생각을 곁들여가며 서술한다.
/유나바머의 본명은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Theodore John Kaczynski)이나, 이 글에서는 다큐에서 언급되는 이름 '테드 카진스키'로 지칭한다.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대체로 생략하려고 한다. 어차피 나의 글보다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면 사진들이 곁들여 있어 그 피해 정도를 더 절실히 느낄 수 있고, 그 피해에 대해 내가 감히 얹을 수 있는 말은 없으므로.
/유나바머의 범행에 대한 디테일이나 과정에 대한 얘기보다는, 그 외의 이야기에 대한 나의 생각과 느낀점들이 주가 된다.
유나바머(Unabomber: 테러의 표적이 주로 대학(University), 공항(Airport) 또는 항공사라는 점에 착안해서 FBI 수사관들이 붙인 별명)
1978년부터 미국에서 우편 폭탄 테러가 일어난다. 처음엔 위력은 크지 않고, 불발된 경우도 있었지만 대학교, 공항, 컴퓨터 공학과 유전공학 등 주로 엘리트 등을 노리는 것 같다. 범인은 직접 만든 수제 폭탄을 이용했고 초반엔 조잡했으나 점점 정교해지는 것이 보인다.
그는 중간에 몇 년쯤 공백기를 가졌다가 다시 엄청난 테러와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의도한 대상을 테러하는 데에 성공하기도, 엉뚱한 사람이 피해를 입기도 한다. 피해자는 늘어나고 수사에도 총력을 다하지만 유나바머는 단서를 남기지 않는다. 치밀하고 강박적인 사람임이 느껴진다.
○ 그의 똑똑함을 알아본 교사가 월반을 권유했고, 그 권유에 테드는 그걸 불행이라고 느꼈다. 나이 많은 인간들은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으니까. 월반한 어린애를 대등하게 호의적으로 대해주는 사람은 (특히 그때 그 시절에는) 적은 편이고, 테드는 그걸 알고 있을 만큼이나 똑똑했다.
○ 그는 어린 나이에 하버드에 갈 만큼 똑똑했고, 교수직도 제의받고 거절한다. 그 거절에 학교 측에서는 당황할 정도였다.
○ 그가 오두막에서 은둔생활을 할 때, 이웃의 목재업자는 그가 수에 밝은 것을 보고 그가 공부를 하던 사람일 거라고 짐작했다.
▷즉, 누가 봐도 똑똑한 사람이었다.
이 두 가지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건 그의 폭력성이기도 하지만 공통적으로 그가 소음에 민감하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똑똑한 사람은 소음에 민감한 것인지... 모 영화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데 정말 과학적 증거가 있는 것인지-
○ 이웃 모녀에게 총을 겨누는 일도 있었다. 쏘지는 않았는데, 그곳이 테드의 오두막과 가까워서 잡힐 위험이 커서 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그 모녀는 말했다.
▷내 생각엔 이 모녀를 향한 뜬금없는 분노와 총을 겨누는 일조차도 소음과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모녀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평범하게 사이가 좋은 모녀라면(특히 아이가 어리다면) 당연히 즐겁게 대화하며 웃으며 다니게 되니까. 소리가 나니까. 그리고 온갖 소음에 민감한 테드에게 그 소리가 거슬리지 않았을 거 같지 않다.
○ 그는 사람들을 피해서 외진 길로 다녔다. 얼굴을 감추고, 총도 들고. 그러다가 멀리서 걸어오는 대학생 같은 남자들을 보고, 테드는 자기를 수상하고 이상한 존재로 볼까 봐 얼굴을 내놓고 인사까지 먼저 건넨다.
○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이웃 여자와 맞닥뜨렸을 때-즉, 그가 ‘수상하지 않은 존재’로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았을 때- 여자가 순간 엄청난 공포심을 느끼고-아무 일도 없었음에도- 도망쳤다고 한다.
○ 이웃의 개방된 창고, 온갖 것들이 있는 곳에 이웃이 외출한 사이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공구 등을 만지다가 택배기사가 왔고-테드가 예상하지도 준비하지도 못한, 숨을 곳도 없는 순간- 그는 아연실색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집주인(크리스)은 지금 없다고만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크리스가 나중에 택배 기사를 통해 들은 이야기이다).
▷그가 멀쩡해 보이는 부분은 그가 숨어있고, 준비하고, 준비한 채로 가장하며 외출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본다. 결국 그의 통제로 이루어진 것들이고 통제하지 못한 상황이 펼쳐졌을 때 그는 힘들어했다. 테드만 힘들어한 게 아니라 또 그의 혼란이 상대에게까지 느껴지기도 한 거 같다.
○ 그의 일기를 보면 그는 여자들에게 거절당하고 성전환을 원하기도-즉 여자가 되고 싶기도- 했다고 한다.
그 고민에 대해 털어놓으려고 했지만 말하지 못했고, 자신이 털어놨어야 할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에 대한 분노가 커져서 살인에 대한 욕구가 커졌음을 알 수 있는 일기도 있었다.
▷스스로는 누군가에게 상담하고 도움을 받지 ‘않고’, 그랬기에 분노를 ‘하고’, ‘살인’ 충동을 느낀 건데 이 과정에서 그는 능동적인 사람이 됐다고 느낀 거 같다. 수동적인 상담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방법을 찾았으니까. 이것이 옳다는 게 아니고, 그의 입장에서는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느꼈던 거 같다.
물론 애초에 그가 고립되지 않았다면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해결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요즘 같은 경우엔...
“내 목표는 과학자, 거물 사업가, 정부 관리 등을 죽이는 것이다”
각종 기술의 발전, 시스템의 발전으로 인해 세상이 망가지고 있다고 그는 생각하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최신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유전 공학, 컴퓨터 공학 등 그리고 그와 관련된 대학이나 공항 등을 노렸다.
그러나... 나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초반부터 그가 말이 많다고 느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구나. 그의 음성만 들어도 말이 많은 편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고 매니페스토도 그러니까 그런 미친 분량으로 썼을 테고. 스스로 고립됐기에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었기에 더욱더 나빠지는 악순환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의 생각이 옳든 아니든 간에 그가 그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면 그는 그렇게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세상에는 이미 그와 생각의 결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목소리를 내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모아 출판물로 만들기도 했고. 테드조차도 그것들을 접하고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신기해했다고 한다.
그는 검거가 되며 오히려 세상에 나온 셈이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감옥에 갇혔지만. 어쨌든 세상과 소통을 시작했고. 세상 속에서 처음으로 그와 비슷한 다른 의견들도 듣고 의견을 편지로 나누고 글도 쓰고... 그 와중에 자기와 뜻이 비슷한 그들이 자기가 이루지 못한 테러 등을 통해 움직여주면 어떨까 기대도 한다는 위험한 발언도 했다. 그러니까, 그는 위험한 존재가 맞다. 동시에 완전히 고립되어 있던 것도 맞다.
유나바머는 선언문에서 자신의 이 글을, 주장을 전하기 위해서는 폭탄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고. 사실 이 말이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냥 말을 했으면 됐다. 다른 방법이야 많았으니까. 당신은 똑똑하고 글도 잘 쓰잖아. 무엇보다 하고 싶은 말이 정확하고 명확하게 있었잖아.
현재의 시점으로 본다면, 그가 그렇게 거부한 그 기술의 발달로 지금 이 정도로 이룩한 이 기술들을 그가 그때 그 시절에 누릴 수 있었다면... 행복했을 것이다.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으나, 그처럼 똑똑한 글이 아니라 그냥 배설에 가까운 주장을 하는 글들을 보면서 차라리 어떤 계몽의 욕구를 갖는다면 교육계로 돌아갔을 수도 있겠지. 그가 거부한 것들... 시스템과 기술의 발달과 교육계에 몸담는 것이 그에게 오히려 필요했다는 게.
특히 하버드에서 테드와 친했던 친구는 테드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다양한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토론을 했다고. 그리고 그런 성격이었기에 테드는 문제의 실험에 참여했던 것이다.
학창시절 테드에게 친구가 없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테드의 동생 데이비드가 엄마에게 물어보고 엄마가 해준 이야기.
테드가 아기일 때 아팠고, 병원에 데려갔고, 진단을 위해 일주일 입원, 아직 어린 아기인데 일주일 동안 부모와 격리시킴. 그런 조치를 취하는 그때 그 시절의 병원이 친부모 이상의 케어를 아기에게 해줬을 리가 없겠지. 퇴원 후 웃지도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는 아이가 되었고 테드가 다시 부모를 신뢰하게 만들기까지 몇 주가 걸렸다고 한다. 어린아이에게 엄청난 상처가 됐을 것이다. 당연히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고... 이 얘기를 해주며 엄마가 말한다. “데이비드, 형을 절대 버리지 말라"라고 당부했다고.
데이비드는 똑똑한 형을 좋아했으므로 자신이 형을 버릴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자기 손으로 형을 FBI에 신고하게 될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테드 카진스키는 하버드 재학 시절 한 심리 실험에 참가하게 된다. 토론이라는 명목으로 테드가 참여한 실험은 극한의 스트레스를 주고 그에 따른 반응을 보는 것이었다. 이 자체도 문제이지만 테드는 월반을 했기 때문에 대학에 입학할 때 16살이었고... 그는 아직 10대였다. 청소년 학대나 다름없는 일이 무려 3년의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헨리 머레이Henry Murray는 지금까지도 유명한 심리학자. CIA의 전신에서도 일했고 신문訊問 방법을 개발하는 연구를 했다.
CIA에서 일했던 사람도 말했다. 자신이 알카에다 등을 취조했고 사실상 그건 고문이었다고. 그런데 그 고문 방식이 바로 테드가 실험 대상이 되었던 그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방식이라고. 즉, 테드는 고문의 실험체가 되었음을 말한다.
테드는 똑똑하고 자긍심이 강했기에 그만두면 자신이 지는 것 같아서 그 긴 시간을 버텼다고 한다.
그것을 알게 된 데이비드가 말한다. "무너지는 것이 무정해지는 것보다 나은 거 같다 maybe sometimes it’s better to be broken than to be hardened."라고.
테드가 애초에 실험에 참여한 것도 토론을 좋아했으니까. 그러나 그건 대등한 토론이 아니라 똑똑한 이들이 테드를 계획적으로 괴롭히고 공격한 것이지만. 테드는 그들이 똑똑하니까 자신이 밀린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그들보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을 무너뜨릴 만큼 강하고 폭력적이 되어야 한다고 느꼈겠지.
학문적 자세에 있어서 폭력성을 체화했다고 느꼈다.
이것은 데이비드에게 한 말에서도 드러난다.
다큐멘터리 가장 초반에 데이비드가 이런 말을 한다. 형이 대학에 진학하고 방학이나 이럴 때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자기(데이비드)는 이제 머리가 좀 컸다고 느껴져서 똑똑한 형이랑 이런저런 학문적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그런데 형(테드)은 자신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며 이런 말을 했다. “진짜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뭔가 가학적인 구석이 있어. 대부분 그렇지.”라는 말.
테드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개무시 당했던 경험을, 어쩌면 인생 전체에서 유일하게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데이비드에게 행한 것이었다.
그 실험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헨리 머레이를 두둔하는 의견이 나온다. 그래 그 사람 말마따나 그 실험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폭탄 테러리스트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떳떳하다면 왜 지금은 그런 실험을 하지 않는가? 그리고 테드가 그때 10대였음을 생각하면, 어린 시절에 겪는 폭력은 뇌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는 이제 차고 넘치지 않는가? 그럼에도 그 실험을 감싸는 건 비겁자들이다.
내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실험을 행한 이들은 자신들이 테드 카진스키라는 유능한 학생의 입을 틀어막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토론을 하고 대화를 시도하면 돌아오는 그런 반응 앞에서 대화로 무언가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시켰다는 것을.
그랬다고 한들, 다른 방식으로 폭탄테러를 택한 것은 테드 카진스키의 폭력성이고 위험성이지만,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아놓고 그가 미치는(insanity) 데에 기여하지 않았다고 뻔뻔하게 말할 수 있는가?
형 테드 카진스키를 너무나 사랑한 동생 데이비드 카진스키, 그리고 그의 아내 린다는 유나바머 검거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테드가 여자를 만나는 데에 실패하고 성전환까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데이비드는 린다를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한다. 지금까지도 린다와 테드는 만난 적도 전화 통화를 한 적도 없으나 테드는 린다라는 존재를 싫어했다. 싫어하고 결혼을 말리고, 결혼식에도 안 오고 린다를 저주하는 편지를 데이비드에게 보내기까지. 테드는 결국 데이비드와도 어머니와도 연락을 끊었다.
-테드를 향한 데이비드의 애정은 여러 가지로 드러났지만 데이비드를 향한 테드의 애정은 별로 알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그가 이런저런 이유로 망가져서 표현을 안 했을 뿐 사실은 동생을 많이 사랑했던 것일까? 그랬기에 동생을 린다에게 빼앗기는 거 같아서 분노했던 것일까?
이런 상황 속에서 데이비드의 어머니와 데이비드는 린다 앞에서 테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편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통해 린다는 테드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게 되고 그 사실을 데이비드에게 전한다.
데이비드는 처음엔 당연히 부정한다. 사실 그때까지 그런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테두리 바깥의 시선의 중요성을 느꼈다.
동시에 데이비드에겐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인연이 린다라는 생각을 내내 했다.
그러나 테드에겐 너무나 저주스러운 인물(동생과의 인연을 끊게 만들고, 자신을 잡히게 만들고...)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테드가 린다를 싫어한 것도, 형이 그렇게까지 싫어함에도 데이비드는 린다와의 결혼을 택한 것도 어쩌면 둘 다 맞는 판단이었는지도 모르지...
유나바머의 테러가 몇 번 발생한 후에도 (신문이나 TV 정도로만 알 수 있는 그때 그 시절에는) 린다와 데이비드는 유나바머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테러가 계속되고 유나바머에 대한 세상의 관심 증대, 기사 대서특필, 유나바머의 주장을 분석하고 토론하는 과정도 있었을 거고. 그걸 통해 조금 늦게 유나바머의 주장을 읽은 린다는... 문득 유나바머가 테드인 거 같다고 생각을 했다.
그 즈음하여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기고 지내던 유나바머는 자신을 조금씩 드러내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다(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게 맞다) . 자신이 쓴 35,000글자의 선언문을 다섯 곳의 매체에 보내 신문에 실어 달라고, 실어주면 범행을 멈추겠다고 한다.
FBI 입장에서의 딜레마. 굴복하는 거 아닌가? 그가 약속을 지킬 것인가? 범죄자에게 너무나 큰 스피커를 쥐여주는 것 아닌가?
실어주면 안 되는 것이 맞는 결정이라고 결론. 그러나 싣기로 했다. 그 정도 분량의 글을 싣고, 많은 이들이 읽으면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도 있기에.
엄청난 화제가 된 매니페스토가 실린 신문들은 미친 듯이 팔려나갔고.
린다는 그걸 읽고 싶어 했고 데이비드는 그 신문을 구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다. 결국 대학 도서관의 인터넷을 통해(아이러니-유나바머가 저주한 최신 기술을 통해) 선언문을 읽는다. 그들은 유나바머가 테드라고 느꼈고, 린다의 지인인 사설탐정을 통해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뢰한다.
데이비드가 자기 손으로 신고하기는 고통스러웠을 것이므로... 그들이 맞다고 결론을 내려줬음에도 데이비드가 아닌, 린다 지인이 FBI에 신고했다. 그러나 해당 선언문을 보고 자기가 아는 사람인 거 같다고들 하는 신고가 2천 건이 넘게 들어온 상태라 처리가 되지 않고, 아무런 연락도 없이 시간이 흘러간다.
그 사이에 데이비드는 어머니의 병환으로 어머니의 집에 가서 병간호를 하며 지내게 된다. 어머니의 집에는 형과 관련된 것들이 많이 있었고, 어머니는 테드가 보낸 편지도 다 보관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구경하던 중 선언문의 초안이나 다름없는 테드가 보낸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더 이상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조차 할 수 없게 된 데이비드는 곧바로 자신이 직접 FBI에 신고한다.
데이비드의 신고를 통해 테드가 검거된다. 데이비드의 고민과 고통, 검거 전에 미리 알려주기로 했던 것 등은 다 사라지고. 가족들의 ‘밀고’를 통해 검거했다는 보도. 데이비드의 고통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보도 방식. 그때까지 살아있던 어머니와 데이비드-린다 부부는 엄청난 플래시 세례를 받기도 한다.
유나바머를 체포하고 FBI가 그의 오두막을 둘러보던 중 발송 준비를 마친 완성된 폭탄들을 발견한다. 결국 선언문을 실어주면 공격을 멈추겠다는 건 역시 거짓이었던 셈이다.
동생 데이비드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손으로 형을 신고했다는 고통이... 그래도 헛된 결정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검거된 테드가 변호사에게 자길 어떻게 찾아냈냐고 물었으며 변호사는 기록을 보니 당신 동생이 신고했다고 되어 있다니까 "그럴 리가 없다"라고 했다고 한다.
-데이비드 스스로도 인정하고 테드도 느낄 만큼, 형을 항한 데이비드의 사랑은 컸던 것. 그만큼 힘들었던 데이비드의 결정. 그리고 테드의 입장에서는 다시 한번 세상에, 사람에, 가족에게 배신을 당하는 경험을 하게된 셈이다. 유나바머가 외롭고 생각이 많기 때문에 했던 모든 결정과 언행들이 그를 더욱더 외롭고 고립되게 하게 되는 악순환임을 느꼈다.
데이비드는 형이 사형만은 당하지 않기를 바랐으나, 유일한 방법은 테드가 정신병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변호인들과 정신감정단이 느끼기에 테드는 본인이 한 일의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재판을 받을 능력은 있었기에 망상증으로 인한 조현병 진단이 내려진다. 그러면 사형은 면할 수 있을 것이기도 하고.
그러나 테드는 본인이 정신이상자로 판명 나면, 자신이 한 짓이 모두 미쳐서 한 짓이 되므로 그것만은 원치 않는다. 그러나 사형을 피하는 방법은 그것뿐이므로. 재판에서 정신이상 여부를 테드가 거부하고, 거부하는 것을 거부당하고 insanity를 받아들이라고 한 그날 밤 테드는 자살기도를 한다. 그게 자신에겐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유죄 인정협상을 통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유나바머가 딱히 반성을 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는 감옥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고 책을 쓰기도 하며 오히려 자신이 못다 이룬(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이루어주길 바라는 아주 위험한 인물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언급해 준다.
재판 모습을 그림으로 대체한 것도 좋았고, 특히 게리 라이트의 인터뷰를 마지막에 배치한 것도 좋았다. 게리 라이트는 유나바머 폭탄 테러의 피해자이지만, 본인은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로 불리길 원한다.
그는 재판에서 테드를 마주하고 테드에게 나는 당신을 용서했다고 말했고 이 말을 들은 테드는 펜을 떨어뜨렸다고 한다. 게리 라이트는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짐을 테드에게 턴을 넘긴 기분이었다고. 그래서 홀가분해졌다고.
이후 데이비드와 아내는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편지를 쓰고 연락을 했다. 게리 라이트는 그 연락을 받고 데이비드와 대화를 했다고. 사실 데이비드의 입장에서도 당연히 고통스럽겠지만 그건 당신이 짊어질 짐이 아니라며 오히려 데이비드를 위로하고... 게리와 데이비드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게리 라이트 같은 사람이 있기에 데이비드와 린다 같은 사람이 있기에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느꼈고, 그런 이야기로 다큐멘터리를 마무리한 것이 좋았다. (끝).
다큐에 나오지 않은 것:
검거에 결정적인 신고자가 된 데이비드는 테드 카진스키에게 걸려있던 현상금을 받았고 대부분은 희생자들과 유가족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유나바머, 테드 카진스키는 2023년(다큐 방영 이후)에 옥중에서 자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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